임창용/논란 및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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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
2. 목록
2.1. 2003년 간통죄 피소 및 이혼사건
2.2. 2005년 삼성과 FA 계약 후 계약 파기 요청 논란
2.4. 오재원을 향한 2루 견제 논란
2.5. 고액 세금 체납
2.6. 사기 혐의 피소
2.7. 상습도박 혐의 집행유예



1. 개요[편집]


전(前)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카고 컵스, KIA 타이거즈에서 전천후 투수로 활약한 임창용의 사건사고에 대해 정리한 문서다.


2. 목록[편집]



2.1. 2003년 간통죄 피소 및 이혼사건[편집]


인터넷 상에서 임창용의 멸칭, 즉 비하용 별명이 "임간통"인게 이 사건 때문이다.

간통이 형사처벌이 될 수 있는 죄목으로 남아있었던 2003년 5월, 임창용은 외도행각이 발각되어 당시 부인이었던 이씨에게 피소당하게 된다.#

사건 당시는 좀 골때리는 상황이었다. 우선 임창용은 당시 부인 이씨와 2002년 초 결혼식을 하지 않고 혼인신고를 한 후 혼인관계를 유지해 오다가, 11월경 별거와 동시에 이혼소송 중인 상태였다.[1] 비슷한 시기 임창용과 내연관계를 맺고 있었던 사람(이하 A)은 사실 임창용이 유부남인지도 모르고 사귀고 있었으며, 그의 직업도 정확히 몰랐다. 임창용은 A에게 자신을 테니스 선수라 소개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A가 임창용에 대해 검색을 해보자 직업도 야구선수인데다 유부남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번 더 통수였던 건, 임창용에게는 또다른 제 3의 내연녀 B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제 3의 내연녀 B는 임창용이 부인과 결혼하기 전부터 내연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한다. 생각도 못한 제 3의 내연녀 B의 존재를 알고 난 제2 내연녀 A가 자신과 부인 모두 임창용에게 속은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임창용은 이에 대해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A는 결국 부인인 이씨에게 임창용의 외도 사실을 직접 알리고, 이에 이씨는 임창용을 대구 북부경찰서에 간통죄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결국 임창용은 간통 혐의로 피소당했고, 이에 삼성 구단의 중재 끝에 부인과 협의이혼으로 마무리된다. 다만 이 사건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사건이 발생했던 2003년 당시는 프로야구가 한창 인기가 없던 시절이었던 데다 매스컴이 그렇게 발달하지 않았다 보니 2010년대 이후 야구팬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또 비슷한 시기 간통을 저지른 김동주에 비해서도 묻히는 편인데,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닌 프로야구가 다시 중흥하던 2008년 이후 김동주가 국내에서 계속 뛴 반면 임창용은 해외 리그에서 뛰고 있었다 보니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으며, 더군다나 김동주는 전처와 자녀들을 대상으로 각종 언플을 벌인 전적이 있는데다 간통 관련 사실이 일종의 밈화되면서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묻힌 듯 하다.


2.2. 2005년 삼성과 FA 계약 후 계약 파기 요청 논란[편집]


2004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은 뒤 원소속팀 삼성 라이온즈와의 협상을 거부하고 해외 진출 의사를 강력하게 밝혔다. 이에 지바 롯데 마린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등 일본과 미국 몇몇 구단과 계약 직전까지 가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 계약에 실패하는 등[2] 현실은 녹록치 않았고, 그렇다고 삼성을 제외한 국내 타 구단으로 이적하자니 몸값이 너무 높아 엄청난 보상 규모를 감당해야 하는 등 그마저도 쉽지 않아 자칫하면 FA 미아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해가 지나고 FA 계약 마감시한이 다가온 2005년 1월 20일, 가까스로 삼성과 2년 18억+향후 해외진출을 다시 원할 시 허용해 주는 조건이라는 예상보다 헐값에 계약하면서 임창용 관련 이슈는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계약 다음 날인 1월 21일, 임창용의 아버지 측은 돌연 삼성 구단 측에 계약 무효를 주장하고 임창용과의 계약을 취소해 주거나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시켜 달라는 요청을 한다. 당연히 삼성 측이 이를 받아들일 리도 없었고 김응용 사장은 이에 격노하며 그렇게 나오면 임창용을 임의탈퇴시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더군다나 계약 후 2005년~2007년 3년간 부진과 부상 등으로 커리어 로우를 기록하는 등 임창용 본인에게도 흑역사였던 시기다.


2.3.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4. 오재원을 향한 2루 견제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임창용/선수 경력/2016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5. 고액 세금 체납[편집]


2020년 12월 6일, 국세청이 2억원 이상의 세금을 1년 이상 체납한 고액·상습체납자 명단을 공개했는데, 임창용이 종합소득세 3억원을 체납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 2021년 12월 16일 공개한 체납자 명단에도 다시 올랐다. 기사


2.6. 사기 혐의 피소[편집]




캡션



지인에게 빌린 돈 1,500만원을 갚지 않아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한 사실이 보도되었다.

2020년 7월, 임창용은 평소에 잘 알고 지내오던 서울 강남 유흥업소 직원인 30대 여성에게 2,500만원을 빌렸으나, 1,000만원을 갚은 후 나머지 1,500만원을 갚지 않은 상태에서 연락을 끊었고, 이에 피해자는 임창용을 사기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고소가 접수된 후 11월 25일 서울 강남경찰서가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사건을 이송받아 수사에 들어갔다. # #

피해자는 "임창용이 사업에 돈이 필요하니 빌려주면 2~3시간 내로 갚겠다고 했지만, 개인 채무변제에 썼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피해자에 따르면 임창용은 돈을 갚기는커녕 500만원부터 1,000만원에 이르는 고액의 내기 골프를 즐겼다고 한다.

강남경찰서는 2020년 12월초 고소인 조사를 마친 뒤 임창용에게 출석 통보를 했지만 임창용은 경찰 소환에 불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1년 4월 27일, 결국 강남경찰서는 임창용을 사기 혐의로 검찰 송치(불구속 기소의견 송치)했다. # # # 결국 6월에 약식 기소로 벌금 100만원이 나왔다. 과거 도박,사기로 구속기소가 되어서 실형을 선고 받아서 전과자로서 상습범이나 누범으로 가중처벌되었다.#


2.7. 상습도박 혐의 집행유예 [편집]


2022년 7월 25일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 이후 7년만에 또 다시 도박을 하다 적발됐다는 소식이 들려와 충격을 주었다. 무려 판돈 1억 5000만원을 걸고 230여 회나 참여하는 바람에 재판에 넘겨졌고, 이에 재판부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벌금 300만원이 선고함과 동시에 추가로 사회봉사 40시간 명령을 내렸다.[3] 집행유예로 다행이 징역살이는 면했지만, 초범이 아닌데다 무려 두 차례나 불법도박을 하다가 적발됐기 때문에 사실상 야구계로 돌아올 길은 영원히 끊겼다고 봐도 될 듯 하다.

기사

이 사건으로 인해 임창용은 KBO 40주년 레전드 40인에 선정되었지만 선정자 40명 중 유일하게 시상식이 열리지않는 선수로 남는 불명예를 안았다.[4]

[1] 다만 이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은 편이다. 우선 임창용의 전처 이씨는 임창용이 간통과 더불어 가정에 소홀히 했다고 주장한 반면, 임창용의 부모 측은 오히려 이씨가 8개월만에 1억을 쓸 정도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종 재판이 석연치 않게 끝난데다 양측 모두 거의 언플질에 가까울 정도로 진흙탕 싸움을 벌인 것, 그리고 임창용의 전처 이씨 측이 지나치게 언플을 활용하다가 모순된 말을 했다는 점 등 의문점이 많다.[2] 임창용 본인에 의하면 당시 해외 진출을 위해 에이전트를 여러 명 선임해두는 바람에 너도나도 자신이 임창용의 에이전트라고 주장하면서 각기 다른 계약 조건을 내밀었고, 이에 질린 구단들이 영입을 포기해 버렸다고 한다.[3] 임창용은 상습범으로 가중처벌 받고 압류 집행 되었다.[4] 물론 백인천타이론 우즈도 시상식은 열리지 않았으나 백인천은 건강 문제, 우즈는 현지 사정으로 인한 것이라 상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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