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오키나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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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오키나와현의 관계.

2. 역사[편집]



2.1. 사쓰마 번의 침입[편집]


1609년 류큐 왕국은 사쓰마 번의 침입을 받았다. 이로 인해 아마미 군도가 일본으로 넘어갔고 류큐 왕국은 독립을 지키기는 했지만 소위 ‘뭐만 하면 사쓰마한테 삥 뜯기는 처지’로 전략하고 만다.

2.2. 일본제국합병과 통치[편집]


일본 제국은 1872년 류큐 왕국을 류큐 번(琉球藩)으로 강등했으며, 1879년에는 류큐처분을 통해 류큐를 완전히 흡수하였다. 일본 제국 시기, 오키나와는 본토로부터 차별받았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본토 일본이나 해외로 이주하였다. 황민화 정책으로 고유한 문화가 탄압을 받았지만, 여러 학자들에 의해 오키나와의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 또한 시작되었다. 1945년, 일본 제국의 광기를 보여준 오키나와 전투의 결과로 주민의 1/4 가량을 잃는 비극이 끝나고 미군이 진주하면서 일본 제국의 통치는 끝이 났다.


2.3. 미국의 통치 이후 일본으로 반환[편집]


일제 시절 받았던 핍박과 미군기지 문제 방치 때문에 오키나와에서는 본토 및 일본 중앙정부에 대한 감정이 영 좋지 못하다.

1975년에 일본 좌파운동이 강했던 시절에는 오키나와를 방문한 일본 황태자(아키히토)를 암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히메유리의 탑 사건.

1989년 쇼와 덴노가 죽었을 때 오키나와는 다른 일본 내 지역과 달리 임시 공휴일로 정하지 않았으며 태평양 전쟁 전범이 죽은 것뿐이라는 지역 언론의 비아냥도 있었다. 당시 동아일보가 오키나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한 승려가 도쿄를 향해 큰절을 하며 쇼와 덴노의 명복을 비는데 사람들은 투명인간처럼 보듯 지나갔으며 지나가던 사람 몇몇은 이걸 보고 침까지 뱉으며 욕을 하고 갔다고 한다.[1]

2013년 4월 28일,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샌프란시스코 조약 61주년을 맞아 이 날을 '주권회복의 날'로 명명하고 천황 등이 참석한 식전행사를 거행하자 오키나와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날이 오히려 일본으로부터 버림받은 '굴욕의 날'이라며 항의 집회를 개최했다. 이는 1952년 4월 28일 상기한 조약의 발효로 일본이 주권을 회복했을 때 일본 정부가 아마미 제도가 포함된 오키나와 열도를 거들떠도 안 보고 미군 지배하에 방치하고 외면했기 때문이다. 기사

2014년 3월 13일, 현내의 야에야마 지구 소속 다케토미초(竹富町)가 일본 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구가 결정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계열의 이쿠호샤 교과서 채택을 거부하고 도쿄서적 교과서를 쓰기로 결정했다. 다케토미초 당국은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에 대한 실태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으나 일본 문부과학성은 직접 시정조치를 명령하여 압박을 강화했다. 참조 4월 9일, 일본 정부가 법률을 개정하면서까지 교과서 채택을 강요하자 다케토미초는 해당 교과서를 채택한 교육구에서 탈퇴해버리고 독립적인 교과서 채택지구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상급 단위인 오키나와현 교육위원회도 이에 지지 의사를 밝혀, 일단 다케토미초의 결정은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

2014년 5월 21일, 오키나와현 교육위원회가 다케토미초의 독자적인 역사교과서 채택을 승인함에 따라 '교과서 내전'에서 일본 정부가 사실상 패배했다. 법률까지 바꿔가며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압력을 가했지만, 개정 법률의 허점을 파고든 다케토미초의 결정에 오히려 일본 정부가 승복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자승자박 관방장관과 문부과학성 모두 다케토미초와 오키나와 교육위원회의 결정을 인정하여 패배를 받아들였다. # 이런 식으로 오키나와는 역사 교육 인식도 본토와 크게 달라 오키나와에서는 지금도 기미가요를 악보도 본 적이 없어서 부를 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실 교육하는 게 오히려 뉴스로 특필될 것이다.

2017년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 45주년을 맞아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오키나와 주민은 44%가 ‘일본의 안전을 위해서 오키나와에 미군기지가 있는 것을 용인할 수 있다’고 답했고, ‘용인할 수 없다’고 답한 이는 48% 로 비등한 여론을 보여준 반면 오키나와를 제외한 일본인의 71%는 ‘용인할 수 있다’고 답했고, 20%만이 ‘용인할 수 없다’고 답해 큰 대조를 보였다. #

2023년 6월 9일, 다마키 데니 오키나와현지사가 방위성을 방문해 반격능력용 미사일 배치 반대를 밝혔다.#

3. 독립 운동[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류큐 독립 운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3년 5월 15일, 오키나와가 다시 일본령이 된지 41년이 되는 날에 '류큐 민족독립 종합연구학회'라는 일종의 독립(문제를 논의하는) 단체가 결성되었다. 목표로 '류큐자치연방공화국'의 건설을 내걸었다. 흠좀무. '복귀' 이래 4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일본 정부의 오키나와 차별, 미군기지 강요라는 구도에 대항하기 위한 움직임의 절정인 셈이다.

물론 오키나와가 실제로 독립을 이룰 가능성은 매우 낮다. 2007년만 해도 25%는 되던 독립지지 여론이 2012년에는 고작 1% 정도로 격감한[2] 것도 있고, 일본 정부가 순순히 놓아줄 가능성 또한 없다시피 하다. 미군 기지 문제가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미국 역시 찬성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실제로 오키나와의 독립을 추진하기 보다는 오키나와의 분리-독립 가능성을 공론화하여 오키나와에 강요되고 있는 무수한 미군 기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와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미군 기지 문제에 대해) 오키나와만 분발해 봤자 (일본 정부와 미국의 전향적 자세 없이는) 소용이 없다"는 식으로 확산되고 있는 패배주의 풍조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한편 단체 명칭에 민족독립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는 것도 의미심장한데, 공식적으로는 철폐되었다지만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일본 열도 전체의 주민은 모두 '일본인'이라는 기치 하에 통합된 단일민족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체 명칭에 '민족독립'이라고 명기한 것은 오키나와 주민은 일본인이 아닌 '류큐인'이라는 별개의 민족으로서 자결권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 된다. 즉, 류큐민족(琉球民族)은 야마토민족과는 다르다는 식이다. 다만 지금 공식적으로는 야마토민족의 일부다.

어떤 식으로든 오키나와 주민의 여론이 분리독립 찬성으로 기울게 되면, 일본 정부든 미국 정부든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것은 분명하다.

만약 독립이 성사된다면 태평양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원하는 중국,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대만[3] 등의 국가들이 개입하여 무슨 수를 써서든 오키나와를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두고자 할 것이다. 결국 이러한 내외 문제, 특히 중국의 패권 장악 우려 때문에 오키나와 현지인들 간에 독립운동은 영 호응이 시원치 않은 상태로 주로 지역권익 향상이나 자치운동으로의 전환이 대세가 되는 형국이다.

4. 관련 문서[편집]


[1] 『오키나와의 눈물』(메도루마 슌, 논형, 2013) 33쪽을 보면 저자의 부친이 쇼와 덴노가 어떤 축하연에서 하객들에게 '고맙다'라고 말하는 걸 TV로 보고 '"고맙습니다, 라고 해!"'라고 격노했다는 부분이 있다. 장년층 이상의 오키나와 주민들이 '본토'와 천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러내는 상징적인 부분.[2] 정확히는 중국의 센카쿠 열도 영유권 주장으로 인한 류큐공졍으로 '독립하면 중국한테 먹힐텐데 차라리 일본이 낫다'라는 여론이 늘어난 것. 중국의 위협이 없다고 가정했을때 독립지지 여론은 약 30%에 당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3] 그러나 대만의 냉혹한 현실(중국의 위협, 미승인국가, 미국·일본의 국방력에 의존)을 감안하면 대만이 오키나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은 0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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