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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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평가



1. 개요[편집]


고려의 인물.


2. 생애[편집]


전주향리 출신이다. 고려의 여진 정벌에 녹사로 종군해 최홍정, 김부필예종 2년(1107) 12월 병신일[1] 이위동(伊位洞) 전투에서 공적을 세웠다. 예종 재위 후반인 1120년경 죽은 친구 함덕후(咸德侯)의 아들 함유일을 거둬들여 집에서 돌봤다.

인종 때 추밀원부사를 거쳐 동지추밀원사로 승진했고, 또 참지정사에 임명됐다. 인종 10년(1132) 윤4월 평장사 문공인과 함께 대동강에 파견됐다. 대동강물이 오색으로 빛나고 있다기에 인종이 두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한 것인데, 승려 묘청과 백수한은 신룡이 침을 토해 강이 오색으로 빛나니 이는 상서로운 일이며, 백관은 표문을 올려 왕에게 하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은 기름을 넣은 을 강에 가라앉히고는 강물에 뜬 기름이 빛나는 것을 두고 사기를 친 것이었다.

같은 해에 상서좌복야에 임명됐던 이준양은 이듬해 중서시랑평장사로 승진했다. 간관 최유청이 전임자였던 최홍재를 탄핵해 최홍재는 좌천되고 이준양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인종 24년(1146) 9월에 죽었다.


3. 평가[편집]


이준양은 원래 전주의 향리로 청렴결백함으로 널리 드러났다.[2]

고려사절요』 권10, 인종 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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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력으로는 1108년 1월 29일.[2] 俊陽本全州吏, 以淸白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