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원(태종 이방원)/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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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주인공 이방원의 인간관계를 다룬 문서.


2. 목록[편집]



2.1. 이성계[편집]


존경하는 아버지. 동북면의 위대한 왕으로서 어린 이방원에게 왕의 꿈을 안겨준 우상 그 자체이기도 하다. 용맹한 무장인 아버지를 우러러 보며 아버지의 일을 돕고 싶어하나, 정작 이성계는 아끼는 아들인 이방원이 험한 일을 당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만류한다. 이성계도 티는 안내지만 이방원은 집안에서 처음으로 과거에 급제하여[1], 가문의 명예를 드높여준 아들인지라 위의 네 형들보다 더 각별히 신경 써준다. 넷째 이방간은 이걸 편애로 여기며 불평하기도 한다. 그나마 이방원 본인은 자신에게 자상한 아버지이기 때문에 불만은 없지만, 다른 형제들과 달리 자신만 대업에서 동 떨어진 것 같아 못내 섭섭해 한다. 정몽주를 격살하기 이전까지는 굉장히 훈훈한 부자지간인데, 사실 이런 관계가 실제 역사와 비슷하다.[2]

그러나 정몽주 격살을 기점으로 두 사람은 서로 척을 져버렸다. 이방원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하나, 아버지가 여전히 거절하는 통에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양녕대군 이전에 태어난 자신의 아들들이 모두 병으로 요절했는데도 이성계가 위로 한마디 해주지 않고, 신덕왕후의 진짜 이면과 정도전의 변절로 멘탈이 깨지면서 이를 모두 묵과한 부왕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품게 된다. 이후 강씨가 이방원에게 누그러진 태도를 보여달라고 요청해서 이성계도 마지못해 이방원을 어느정도 챙겨주려는 듯 했으나, 명에 사신으로 파견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떠봤을 때에도 자신을 아들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더 이상 자신도 이성계를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관계는 더 악화되었다. 결정적으로 신덕왕후의 죽음 이후 이성계가 편집증에 가까운 수준으로 자신을 의심하고 매도하며 심지어 모욕까지 주자, 아버지마저 완전히 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결국 1차 왕자의 난으로 그간의 설움을 모조리 되갚아준다.[3]

이후 이성계는 방원을 향한 마지막 저항으로 조사의의 난을 일으키지만 실패한다. 이성계를 데려 온 이방원은 당신과 만나는 것이 괴로워도 뵈는 것이 내게 주어진 벌이니 오래 사시라며 삶의 목표를 주는 한편, 아내 앞에서는 자기의 우상이었던 아버지를 두 번이나 짓밟았고 지금 아버지는 원한에 사무쳐 울고 계시다며 울부짖고 만다. 결국 자신의 아들 양녕이 자꾸 엇나가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게 되고, 태상전에서 엎드려 용서를 빌게 되고 태조도 그런 방원을 용서하고 국왕으로 인정하면서 말년에 극적으로 화해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성계가 승하하면서 장례에서 아버지라 부르며 슬퍼한다.

아버지로서는 이렇지만 왕으로서는 반면교사로 이방원은 철저하게 이성계의 행보의 반대를 선택한다.
* 한 번 실망을 준 자에게 다시는 기회가 없다. ↔ 누구든 한 번의 기회만은 더 준다.
* 왕이란 무릇 수많은 인물들과 어우러져 그들을 카리스마로 다스리는 자 ↔ 왕이란 무릇 왕좌에 홀로 앉아 피도 눈물도 없이 다스리는 자
* 반려자의 정치 참여를 허용 ↔ 반려자가 정치에 뜻을 보이자 본인은 물론 가문까지 철저히 탄압
* 적장자 계승 원칙을 무시하고 막내를 세자로 책봉 ↔ 적장자 계승 원칙에 따라 맏아들을 세자로 책봉
* 야심과 재능을 보이는 다섯째를 억압 ↔ 야심과 재능을 보이는 셋째에게 기회를 줌
* 아들을 보호하되 직접 가르치지는 않음 ↔ 아들과 대립하되 직접 가르침
*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고 에게 맡김 ↔ 직접 손을 더럽히더라도 자식의 손을 더럽히지 않음


2.2. 원경왕후 민씨[편집]


사랑하는 아내이자 정치적 동반자. 시아버지의 회군으로 인해 분위기가 뒤숭숭해져 노비들이 다 도망가는 상황에도 차분하게 집을 지키며,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남편 이방원에게 칼을 갖춘 말을 타고 가라고 할만큼 주도면밀하다. 친정에 피신한 와중에 병사들이 찾아오자, 자신도 이씨 집안 사람이니 잡아가라고 할만큼 소속력과 결단력도 담대하다. 하지만 이방원의 즉위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면, 결국 남편과 길고 긴 애증의 관계로 돌변할 듯하다. 결국 이방원이 세자가 되면서 민씨도 함께 세자빈에 책봉되면서 꿈을 이루지만, 민씨 가문의 환호 속에서 홀로 남겨진 이방원은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경계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사병 혁파를 두고 민씨의 남동생들이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본인들에 대한 이방원의 태도에 민씨가 가문의 공로를 내세우며 압박을 넣으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이후 민씨가 중전이 되면서 그녀의 영향력을 깍아내리기 위해 매일밤 침소에 다른 여인을 들이는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갈등이 본격화된다. 결국 민씨의 형제들인 민무구와 민무질을 유배보내 사사시키면서 이성을 잃은 민씨가 중전으로서의 체면마저 내팽개치고 편전 앞에 꿇어앉아 이방원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고, 남은 형제들인 민무휼과 민무회마저 효빈 김씨의 일과 세자의 참소를 근거로 유배보내 자결을 강요하자 전부 자기가 한 짓이니 자신을 벌해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관계는 파탄에 이른다.

그러나 자신의 보위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했고 즉위하기 전까지만 해도, 애틋한 부부 사이였던 민씨에 대한 죄의식만큼은 큰 듯하다. 1화에서 세자가 된 충녕에게 자신이 저지른 죄를 열거하며 스스로를 책망하는 말에서도 민씨에게 지옥을 선사한 것을 후회하며 대성통곡을 할 정도였고, 최후반부의 전개에서도 친정의 연이은 숙청으로 민씨가 잘못을 빌며 고통스러워할 때 용서를 포기했다는 듯 자신은 국왕일뿐이라며 결국 뜻을 꺾지는 않지만 괴로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이방원의 권력욕과 비정함에 완전히 질려버리면서, 아예 그의 곁을 떠나 사가로 출궁한다. 마지막회에서 상왕으로 물러나 사돈인 심온 일가마저 숙청하여 모든 것을 정리한 뒤 늦게나마 민씨를 찾아가 그녀에 대한 사랑만은 늘 변함이 없었다며 용서를 빌지만, 민씨는 이방원을 남편으로서 진심으로 사랑했던 마음만은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죽는 그 순간까지 이방원을 용서하지도 않고 화해하지도 않은 채로 사망한다. 이방원은 민씨의 죽음을 듣자마자 충격을 받아 이성도 체면도 내팽겨치고 절규했으며, 본인도 2년 뒤에 승하하면서 이 애증어린 부부는 무덤에 나란히 안장되어 죽어서나마 함께하게 된다.


2.3. 이방우[편집]


제일 큰 형. 당연히 나이차가 제일 큰 만큼(13살 연상) 전쟁터를 누비는 둘째 형과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신을 아버지처럼 돌봐줬던 소중한 가족이지만, 위화도 회군 이후로 혁명쪽으로 마음이 돌아가기 시작한 다른 가족들과 달리 유일하게 고려 왕조에 충성하고 있는 사람인지라 충돌하다 칼싸움까지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생을 저지할 수도 죽일 수도 없는 형의 슬픈 마음을 이해하고 화해했다. 그리고 이후에 강씨의 계략에 의해 개경에 들어가지 못하고 폐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이방원에게 보여주면서, 의도치 않았지만 이방원이 신덕왕후 일가의 씨를 말리고자 하는 복수심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


2.4. 이방과[편집]


가장 든든한 형. 이방과와는 고려 왕실에 충성심이 없고 아버지를 지극히 존경하는 행동파라는 공통점이 있어 의견이 일치할 때가 많고, 이방과 역시 이방원이 가족의 안위를 위해 고군분투한 점을 높이 사며 이성계가 이방원을 챙기는 걸 전혀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기 때문에[4], 이방과가 혈기왕성한 이방원을 다독이거나 잘못을 충고해주는 장면도 가끔 나온다. 하지만 제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에게 크게 실망하여 두들겨 팰 정도로 사이가 험악해졌다. 그래도 동복형에게만큼은 진심이었기에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방석이 죽고, 공석이 된 세자 자리에 형님이 앉아야 한다고 냉정하게 말해 이방과의 기를 꺾어버린다. 그러나 이방과가 효심 때문에 자신 대신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기로 다짐하고 왕위를 지키겠다고 하면서 양자의 관계에도 더 큰 긴장감이 조성된다. 하지만 왕위에 눈이 멀어 난을 일으킨 방간의 군사를 제압하고 담판을 지으러 찾아간 방과가 당당하게 자신도 베라고 하자, 한참을 망설이다 끝내 둘째 형까지 베려고 하지만 오히려 손쉽게 제압당하며[5] 겨우 이성을 차린다. 방과도 왕위에 눈이 먼 동생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저 용상이 우리 가문을 찢어놓았다고 한탄아닌 한탄을 하면서, 저 용상은 괴물이며 너라면 능히 견뎌낼 수 있을 테니 네가 저 자리를 맡으라며 사실상 다음 왕위를 예약받는다. 이후 실제 역사대로 방원을 세자로 삼고[6] 수순대로 양위하면서 상왕으로 물러난다. 오히려 상왕으로 물러난 뒤에는 부담감이 사라졌는지 이전의 사이좋은 형제 사이를 회복하며, 사병 혁파와 외척 견제로 민씨를 홀대하는 방원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기도 한다.[7]


2.5. 이방의[편집]


셋째 형. 권력에 별다른 미련도 없어서인지 형제들과의 사이는 매우 원만하다. 1차 왕자의 난에서 방간이 방번을 죽인 일로 방원과 방간 사이에 칼부림이 나기 직전까지 갔으나 방의가 둘을 뜯어 말려 칼부림까지 가지 않았다. 사실 둘 사이가 원만하다기보다는 방의가 방원을 되려 두려워하는 모양새. 방간이 같이 선수를 쳐서 방원을 치자며 약속했지만, 방원이 두려웠던 방의가 결국 발을 빼버리면서 고립된 방간이 결국 방원과의 싸움에서 패하게 된다.


2.6. 이방간[편집]


넷째 형. 바로 손윗형으로 나이대가 가장 가까운(3살 차) 형제이지만, 공홈의 소개에 의하면 늘 이방원과 비교당하며 동생을 질투했다고 한다. 이방우나 이방과를 비롯한 다른 형들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이방원을 웬만해선 좋게 타이르지만, 이방간은 다짜고짜 네놈이 뭘 아냐는 식으로 이방원에게 성질을 부리기도 한다.[8] 다만 그와는 별개로 이방간도 무인으로서의 감은 상당하다. 이방원이 본격적으로 난을 준비하면서 이전과는 태도가 확연히 변하자, 방원이는 지금 피 맛을 보는 순간 주체하지 못하는 괴물이 될 거라며 훗날을 예상한다. 예상대로 이방원 역시 이방간에게 예전처럼 뒤로 물러서는 대신 대놓고 맞서기 시작하기 시작한다. 다만 이는 이방간이 이방원에 대한 열등감과 세자가 되기 위한 탐욕에 눈이 멀어, 1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이 살려두려 했던 이방번을 죽인 것이 원인이다. 이방번의 죽음을 계기로 유일하게 대놓고 자신이 형님을 죽일 수도 있다고 말할만큼 적대하는 관계로 치닫게 된다. 그래도 정사를 생각하면 그나마 형제라서 살려줄 것으로 보이나, 관계는 사실상 파탄난 것이나 다름없다. 거기에 더해 방간의 폭주로 무고한 백성들이 죽어나가고 이를 자기합리화로 밀어붙이자 크게 경멸하고 분노해서 죽이려 했을 정도. 그러나 방과의 설득으로 제정신을 차리고선 박포를 처형하고 방간을 살려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자 방간이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면서 화해하는 것으로 끝난다.


2.7. 신덕왕후 강씨[편집]


계모. 위화도 회군 당시 조정군을 피해 도망치던 중에 자기 목숨을 구해주기도 하는 등, 점차 가족의 정이 생기게 되지만 훗날을 생각하면 그런 행복한 모습은 아주 짧은 기간으로 끝나게 될 듯 하다. 하지만 정몽주를 죽인 이후 강씨가 자신도 정몽주 척살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쏙 빼놓고 서서히 자신의 자식들을 부각시키고, 결국 자초지종을 알게 된 이방원이 배신감에 사무쳐서 맹비난을 퍼부으면서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고 말았다. 이후 강씨는 중전에 책봉된 뒤 본인의 친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세우면서 이방원을 더욱 경계하게 되고 그를 제거하기 위해 악을 쓰지만, 오히려 이방원은 아내인 민씨의 조언을 듣고 점차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면서 강씨 앞에서 구밀복검하는 태도를 보인다. 결국 강씨의 경계심은 더욱 극한으로 치솟아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화해하지 못했고, 그녀의 사후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방석을 폐위시키고 죽여버리면서 그간의 원한을 모두 되갚는다.[9]사후에 이방원에 의해 270년 넘게 후궁의 예로 제사가 치뤄진다....


2.8. 신의왕후 한씨[편집]


생모. 한씨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 그렇듯 초반에 퇴장해서 자세한 감정은 알기 힘들지만, 작중에서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 그냥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들이다. 위화도 회군이 일어나면서 최영의 군사들이 한씨를 포함한 이성계의 식솔들을 공격하려 하자, 자신이 직접 가족들을 이끌고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달려갈 정도로 극진한 효심을 보인다. 어릴 때부터 전장을 오고다니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사랑을 품고, 늘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회상하며 울기도 했다. 이방원의 입장에서는 생전에 조선 개국을 보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강씨로부터 왕비 자리까지 빼앗긴 안타까운 어머니이다.[10]


2.9. 정도전[편집]


숙부라고 부르면서 따르고 있는 정치 스승이다. 위화도 회군 이후 중요한 정치적인 사안을 결정할 때마다 조언을 구하면서 믿고 의지한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이후로는 정도전이 이방원을 부르는 호칭이 '왕자님'으로 바뀐다. 그러다 정도전이 이방석의 세자 책봉을 지지하면서 자신과 거리를 두려고 하자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이후, 완전히 신덕왕후의 수하로 변절해 자신을 적대하며 뒤에서 밀어주는 뒷배인 이성계의 비호를 받으며 자신의 뜻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실세가 되려하자 자신을 배신한 변절자가 되어버린 정도전에게 크게 실망하고 분노하며 그 역시 죽여버리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정도전의 계획을 역으로 이용해 난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 이방원의 손에 정도전이 척살당하며 가장 믿음직스러운 가족같은 관계였던 두 사람의 관계가 최악의 결말로 끝나게 된다.


2.10. 정몽주[편집]


기존의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에서 묘사된 이방원과 정몽주의 관계와 비교해보면 상당히 차별화되고 특이한 편이다. 기존의 드라마들이 정몽주와 정도전, 정몽주와 이성계 사이의 우정과 엇갈린 관계에 치중해서 이방원과 정몽주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와 그 감정선은 잘 묘사되지 않거나 피상적으로 묘사되어 살벌한 정적 관계로서의 성격이 더 부각된 반면에, 이 드라마에서 이방원과 정몽주는 정치적으로는 험악한 정적 관계이되 인간적인 관계가 깊고 마음 속에서 사제지간으로서 정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11] 아니, 어떤 면에서 보면 이방원이 숙부로 칭하는 삼봉과의 관계가 더 사제지간 같고, 스승으로 칭하는 포은과의 관계가 오히려 숙부와 조카와의 관계에 가까워 보일 정도다.[12][13] 여태껏 정몽주와 이방원 사이의 인간적인 감정선을 이 정도로 섬세하게 묘사한 경우는 없었다. 과거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방원과 정몽주의 인간적인 관계는 다소 딱딱하고 정몽주와 정도전 사이의 관계는 꽤나 끈적끈적한(?) 관계로 묘사한 것과 달리 이 드라마에서는 정반대의 연출이 나왔다는 점이 꽤나 흥미롭다.


2.11. 하륜[편집]


태종의 오른팔이자 정치적 동지. 정몽주 참살 이후 이방원을 왕재로 주목하고 그를 군왕으로 만들겠다는 킹메이커의 야심을 갖고 이방원에게 접근했던 정도전하륜과 달리, 민제의 주선을 통해 이방원과 만나게 된다. 극중에 묘사되지는 않지만 고려 시절에도 조정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으며 그때 하륜은 이방원의 관상에 대해 귀한 상이라고 평했다. 무인정사 때까지는 민씨와 민제 등 민씨 가문의 역할이 부각되어 하륜은 작계를 짜고 이후 본인 역할에만 충실한 역할로 나왔지만, 이방원이 세자 책봉 이후 본격적으로 정사에 관여하기 시작할 때, 민씨 가문과 사이가 틀어진 이방원의 심중을 잘 헤아리면서 그를 지원하고, 때론 조언과 격려를 주면서 태종의 최측근으로 자리한다.[14] 사실상 태종에게 있어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막역지우가 되어줬고 마지막 등장인 30화에서도 이방원의 심적 부담을 줄여주고자 스스로 사직하는 처세술을 보이며 마지막까지 이방원을 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생이별하는 하륜에게 이방원이 가장 아쉬워하며 떠나보내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할 만큼 상당히 정이 든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2.12. 조영무[편집]


아버지와 함께 전장을 누볐던 가별초의 무장으로 이방원은 어린 시절부터 "영무 아재"라 부를 정도로 그를 친근하게 따랐다. 조영무도 이성계와 이방원 부자에게 헌신적이었으나 조선 건국 후로 잘못된 후계자 선택과 왕씨 몰살 등 갈수록 판단이 흐려져가는 이성계를 옆에서 보면서 환멸을 느끼게되고 이방원은 정변을 앞두고 조영무와 싸우고싶지않다면서 그를 천천히 자신의 편으로 회유했다. 그러한 그의 기대가 틀리지않았다는 듯 조영무는 무인정사에서 군사적 대응을 제대로 못하는 이방석이 아닌 이방원 편으로 돌아서면서 궁문을 열고 투항했으며 그때부터 이방원의 가신으로서 방간의 난 진압에도 함께했다. 사병혁파로 오랫동안 몸담은 가별초마저 삼군부에 넘겨야한다는 괴로움때문에 잠시 유배를 떠났지만 이방원이 마음에 둔 인재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기에 그의 부름을 받고 복직하였고 자신이 고령으로 은퇴할 때까지 태종의 국정에 참여했다. 이방원 입장에서 하륜을 만나기전부터 존경했던 조영무라서 하륜 못지않게 떠나보낼 때 무척 아쉬워하며 마지막까지 정을 놓지않았다. 이때 다시 잠저시절에 불렀던 칭호인 "영무 아재" 라고 부르며 자신이 어릴때부터 함께한 동지를 보내는 정말 아쉬워 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2.13. 이숙번[편집]


하륜의 눈에 띈 것을 계기로 자신의 대업에 동참하려는 인재로 등용되었고 그때부터 이방원이 휘두르는 칼로 앞장서서 무인정사, 방간의 난, 조사의의 난 등 전장에 함께했고 태종의 대사에 빠지지않고 참여함으로서 공신의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탐욕이 있음을 자각하고 스스로 물러난 하륜과 충성심 확고한 조영무가 고령으로 스스로 물러나 평안한 여생을 보내도록 태종이 배려한 것과 달리 이숙번은 자신을 탄핵하려는 사헌부의 간관들을 처벌하라는 상소를 올림으로서 태종은 아무리 자신의 대업에 함께한 공신이라도 그의 성격을 잘 알고있기에 적절한 타이밍에 그를 탄핵할 결심을 하게된다.[15] 그래도 옛 정을 생각해 정승인 유정현이 직접 유배 교지를 전달하도록 했다. 단지 그 뿐이었으며 이후로 이숙번은 태종 사후에도 두번 다시 조정에 복귀하는 일이 없었다.


2.14. 황희[편집]


황희는 젊은 시절부터 지신사로서 이방원을 가장 가까이 보좌했으며 제1차 양위 파동때도 황희의 청렴결백함을 파악한 태종이 양위 파동의 진의를 다른 누구에게 아닌 황희에게만 귀띔했다. 황희가 태종의 뜻에 유일하게 거스른 적은 적장자의 원칙에 고수하여 폐세자 결정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종은 황희의 능력과 인품을 인정했기에 뒤를 이은 세종이 황희를 복직시킬 수 있었다.


2.15. 이방석[편집]


계모 강씨의 막내 아들이자 이방원의 이복동생. 위화도 회군 당시 위기에 빠진 가족들을 구할 때 제일 어린 이방석은 이방원이 직접 업고 갈만큼 챙기던 막내였다. 이방석도 어머니 강씨가 세자 책봉을 대비해 글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자, 해맑게 "이방원 형님처럼 말이지요?"라고 할 정도로 형님으로서 방원을 매우 따랐던 모양. 하지만 이방석이가 세자에 책봉되자 급속도로 냉각된다.[16] 그리고 1차 왕자의 난 때 기어이 이방석을 폐위시키고 죽여버림으로서 악연을 끝내버린다.


2.16. 이방번[편집]


계모 강씨의 아들이자 이방원의 이복동생. 세자로 책봉된 이방석과는 관계가 냉각되는 묘사가 계속해서 나오지만, 이방번과는 접점이 별로 없어서 별다른 묘사가 나오지 않는다. 무인정사가 터졌을 때 궁으로 가던 중 만난 방번에게 궁은 위험하니 자신과 함께 가자고 하며, 이방석과는 달리 별다른 악감정 없이 형으로서 동생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난을 일으킨 뒤엔 이방번이 이방석에게 말한대로 어디까지나 그를 죽일 생각 없는 선에서 끝내려 했으나, 정작 이방번은 탐욕과 열등감에 눈이 먼 이방간에 의해 살해당한다. 이에 제대로 꼭지가 돌아 이방간과 척을 지는 계기가 된다.


2.17. 양녕대군[편집]


3명의 아들을 하늘로 보내고 겨우 얻은 맏아들. 덕분에 이방원, 민씨 부부의 애정을 실컷 받는다. 아들들의 존재는 이방원이 괴물이 되고자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되며, 동시에 아들들은 그가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이방원에게는 목적이며 구원이다. 그러나 애꿎게도 양녕은 아무리 충고를 하고 다그쳐도 계속 글공부를 소홀히 하고 향략에 빠져 방탕하게 지내며 이방원을 점점 실망시키고 있다. 양녕이 태종이 내린 벌에 식음을 전폐한 항의에 결국 굴복하며 속이 시꺼멓게 탔는지 술을 엄청 마시고 아버지 이성계를 찾아가 양녕때문에 속상해 미치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원은 세자에게 계속 기회를 주는데 이 작품에서 이방원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자신은 한 번의 기회는 더 주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원칙을 매번 깨뜨리게 한다. 하지만 세자가 자신의 형이자 상왕이였던 이방과를 모시며 그의 첩이나 다름없던 기생 초궁장을 건드리고, 어리를 납치하여 겁탈하는 인륜을 저버리는 행동을 저지르자 궁에서 쫓아낸다. 얼마 후 다시 궁으로 부르지만 더이상의 기대 없이 못 미더워 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양녕이 정사를 돌보게 해달라 하자 기회를 주고, 그 결과가 형편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의지를 보인 것이 기특했는지 손수 술상을 베풀며 위로해주려 한 것을 보면 여전히 부성애가 있긴 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양녕이 또 사고를 치는 모습[17]을 보고 세자를 폐하고, 새로운 세자를 정할 것을 유정현과 황희에게 알린다.


2.18. 효령대군[편집]


둘째 아들. 작중에서 이방원과의 일화는 딱히 없이 문후드리는 모습만 보여진다. 실제 효령대군도 불교에 심취해 있고 권력에는 아예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인물이라 딱히 등장할 일화가 없기도 하다. 그래도 최악의 관계인 양녕대군보다는 나은 사이인 데다가 둘째이기 때문에 세자가 된 충녕에게 양위의 뜻을 전달하라 지시할 만큼 어느 정도 신뢰하는 것으로 보인다.


2.19. 세종[편집]


자신의 후계자. 양녕과 효령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로서 극진히 사랑하고 아끼는 자식이며, 특히 학문에 통달한 충녕을 자식들 중에서도 몹시 기특하게 여긴다.[18] 충녕 또한 아버지 이방원으로 인한 부부싸움이나 외척 숙청에도, 군신간의 법도와 군왕의 도리를 말하며 내심 아버지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떻게 보면 가장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아들이라고 볼 수 있다. 양녕이 이방원과의 나들이 이후 겉으로 보기에는 이방원의 말에 복종하는 것 같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만술로 양녕은 술마시고 여색을 탐하는 것 외엔 관심이 없는 인물이다. 권력 다툼과 정치 싸움에 도가 튼 이방원도 충녕과 세자의 대립을 보며, 단번에 충녕이 세자 자리와 보위에 대한 야심을 품고있다는 사실을 간파한다.[19] 이후 상왕 이방과의 첩이였던 기생 초궁장을 건드린 양녕의 만행에 분노해 세자 교체를 결심하고, 충녕에게 두 가지 조건[20]을 지키는 선에서 세자를 학문과 정치력으로 제압해보라고 하며 그를 장차 다음 국왕으로 점찍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점점 엇나가던 양녕이 기어코 어리를 다시 궁에 들이는 짓을 벌이면서 자신의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리자, 그에 대한 모든 희망을 버리고 세자 자리에서 폐위한 뒤 드디어 충녕을 새로운 세자로 책봉한다. 이후 충녕은 세자의 자리에 오른 지 두 달 만에, 아버지 태종이 양위를 하게 되면서 조선의 4대 왕 세종이 된다.

이방원이 매우 기대하면서도 사랑하고 그에 부응하는 효자이지만, 양녕 이상으로 세종도 그동안 이방원과 대치하던 다른 인물들의 입장들을 보여주며 극후반부 이방원에 대치되는 관계 양상을 보인다. 각혈을 하면서까지 자식에게 군왕의 길을 당부하는 이방원에게 자신을 그림자로 삼으려 하냐고 물으며 용상의 포로가 되셨다, 이제 국왕은 자신이니 내려놓으시라고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세종의 모습은 왕위에 눈이 뒤집혔다며 꾸짖던 이성계와 이제 그만 내려놓을 수는 없냐고 반문하는 정도전을 떠올리게 하고, 왕권을 위해서라며 위협까지 동원하여 처가를 풍비박산내고 마음에 큰 짐을 지워놓자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대항하는 동시에 다른 길을 가겠다며 반발하는 모습은 부인 원경왕후가 연상되는 장면이다. 하루라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편히 사시라며 애절하게 호소하는 모습은 형 이방과가 여러 번 동생을 안타까워하며 타이르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방원이 밀어붙여왔던 그간의 행적에 대해 지극히 사랑하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아들이 양녕 이상으로 자신을 대적하는 상황이기에 부인의 한맺힌 절규에도 그걸 감당할지언정 표정은 숨겨왔던 이방원이 세종 앞에서는 표정이 티날 정도로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그렇기에 최후의 순간 아버지를 용서하고 손을 붙잡은 세종의 선택이 이방원에게 있어서는 그간 괴물이자 군왕이었지만 마지막에는 인간으로, 아버지로 죽을 수 있도록 허락하는 매우 의미깊은 최후를 부여해주기도 한다.


2.20. 민제[편집]


장인이자 하륜 이전부터 사위 이방원의 정치적 멘토였다. 이방원이 선죽교 사건 이후 조선 개국 공신에서 빠졌을 때도 유일하게 안타깝게 바라보고 자신의 장래를 걱정해준 사람도 장인 민제였다.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넘기고 왕좌에 가까워졌을 때도 여흥 민씨 가문과 함께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사병혁파 문제로 민씨 가문과 균열이 벌어지게 되고 이때부터 명목상 태종의 신료이지만 불편함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사위에 의해 아들들이 모두 유배형에 처해지게 되면서 민제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이방원의 아버지이자 본인의 사돈 이성계가 승하한지 얼마 안 되어 본인도 곧 세상을 떠나면서 이방원은 장인의 가슴에도 대못을 제대로 박고 말았다.


2.21. 민무구, 민무질[편집]


자신의 대업에 헌신했던 처남들이지만 눈새들이었고 자신들이 어린 시절부터 키웠던 양녕을 보위에 올려 부귀영화를 노릴 욕심을 버리지못해 태종의 무자비한 숙청의 희생양이 되고말았다.


2.22. 심온[편집]


극 후반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나, 알다시피 충녕대군의 장인이라서 사돈 관계에 해당된다. 세종이 즉위 전까지는 그냥 평범한 사돈 관계였지만 세종 즉위 이후 강상인의 사건을 빌미로 태종이 본격적으로 심온을 숙청하기에 이르렀다.


2.23. 박은, 유정현[편집]


박은은 이방원이 보위에 오르기 전부터 그의 대업에 참여했으며 3대 공신인 하륜, 조영무, 이숙번이 모두 떠난 후에도[21]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최후반까지 보좌했다.[22] 유정현도 태상왕 전을 관리하는 승녕부 윤으로 처음 등용된 후에 영의정으로서 태종의 최후까지 지켰다.


2.24. 이화상[편집]


아버지 이성계와 이지란이 그랬듯이 아들인 이방원과 이화상도 의형제 관계였다. 이화상 역시 무인정사에 참여했고 조사의의 난 당시에도 본인이 싸우려했지만 이지란의 상 중이므로 태종이 그를 배제했으며 정국이 안정화되었을때는 벼슬까지 주려는 등 상당히 많이 챙겨주었다.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후에도 원경왕후를 찾으러가는데 함께했으며 태종의 임종때도 누구보다 크게 오열하는 등, 원경왕후와도 화해하지못한채 그녀와 사별했던 이방원에게 있어서 사실상 세종과 함께 마지막 남은 가족이었다.

[1] 유일하진 않다. 요절한 여섯째 방연도 사마시에 합격해 성균관 박사에 임명되었다.[2] 정몽주와 이성계간의 관계가 용의 눈물 시절부터 클리셰가 되어서 그때부터 멀어지는 걸로 묘사하는 작품이 태반인데, 이방원이 명나라의 사신으로 갈 때 태조가 그를 걱정하는 반응을 보면 두 사람은 1차 왕자의 난 이전까지 정 있는 부자지간이었다.[3] 사실 이때만해도 신덕왕후와 그 일파에 대한 분노가 상당했어도 가족으로서의 선을 지키고자 했기에, 망설일지언정 일단 신덕왕후의 유언 정도는 들어주긴 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난을 일으키는 세력을 모으는 것조차 주저한 이유도 자신이 이 이상 소중한 사람들의 피를 손에 묻히면, 주체할 수 없는 미치광이가 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가족을 죽인 패륜아가 되는 것만큼은 망설였던 것. 하지만 신덕왕후가 죽은 뒤 이성계가 선을 넘는 태도로 자신을 배척하며 학대하자, 결국 분노로 눈이 뒤집히며 마음이 바뀌어버린 것. 사실상 이성계가 자신의 손으로 도화선에 불을 붙여버린 것이나 다름없다.[4] 실제 인물들의 출생년도를 보면 이방과와 이방원은 10살 터울이다.[5] 방원이 아무리 스스로 괴물이 되었다고 하나 개인적인 무력은 아직 방과에게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만큼 방과가 아버지 이성계의 무골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점을 보여주는 장치.[6] 동생이니 세가 아니라 세가 맞는 게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방원은 실제 역사에서나 작중에서나 이방과에게 적자가 없다는 이유로 형의 양자가 되어 세자로 책봉되었다. 작중에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적장자 계승 원칙을 지키고 싶다는 이방원의 뜻으로 묘사된다.[7] 대대적으로 가례색을 설치해 새 중전을 뽑으려는 방원에게 지금 하는 짓은 이성계가 그랬듯이, 이방원의 왕자들에게 두 어머니를 만들어주는 걸 반복하는 것이니 그만두라고 설득한다. 방과와 방원 모두 계모였던 신덕왕후의 욕심에 의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기에 이는 방원에게 매우 주효했다.[8] 이방간이 이방원만큼이나 야망은 크지만 무력을 제외한 다른 능력은 모두 이방원이 우위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러한 행동은 열폭일 가능성이 높다.[9] 신덕왕후의 또다른 친아들 이방번은 이방원이 아니라 이방간이 독단으로 죽였다. 다만 이방번의 경우에는 신덕왕후 소생이기는 해도 어머니의 동생에 대한 편애로 인해 피해를 본 케이스이다. 방번 본인이 말한 대로 방석과는 달리 방원은 방번에게는 원한이나 적대심이 없었기에 살려주었을 가능성이 컸다.과한 욕심때문에 자식들이 목숨을 잃었다[10] 실제 역사에서도 태종은 둘째형 이방과가 왕위에 오른 뒤 한씨에게 신의왕후라는 시호를 올려 왕후로 추존했는데도, 자신이 왕위에 오른 뒤 승인순성신의왕태후(承仁順聖神懿王太后)라는 더 높은 시호로 추존할 정도로 생모에 대한 극진한 효심을 보였다. 신덕왕후의 위패를 종묘에서 치워버리고 제사도 후궁의 예로 지냈으며, 그녀의 무덤마저 헐어버려 거진 평민의 무덤으로 만들어버렸던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11] 창왕 폐위 이후 이성계와 이방원 부자와 대전에서 마주쳤을 때 이성계를 냉담하게 대하는 태도와는 묘하게 온도차가 난다. 이때 정몽주는 이방원에게 '이방원이 네가 많이 변한 것 같다'는 말을 하는데, 이 나무람에는 정적에 대한 공격이라긴 보단 아끼는 어린 제자를 안타까워하는 듯한 느낌이 더 강하다.[12] 일례로 포은이 어머니의 삼년상을 하고 있는 이방원을 손수 찾아와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장면과 뒤이어 이방원이 자고있는 포은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스승의 고결함과 자애로움을 베고 싶지 않다며 통곡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13] 정몽주를 처단하기로 마음먹은 후에는 주변사람들에게 정몽주의 존칭을 쓰지 않고 이름을 그대로 부르며 발빠르게 처리하고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후 정몽주의 시신의 행방을 형제들에게 묻다가 효수된 현장을 보고는 스승을 부르며 오열하는 등, 그 역시 이번 건으로 자신을 혼낸 이성계 못지않게 정몽주를 각별하게 생각해왔음이 드러난다. 이방원의 이런 감정을 아는지 형들도 동생의 질문에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14] 21회에서 하륜이 태종의 심기를 헤아리다가 처음에 사죄하며 물러났을 땐 이방원도 주제 넘으셨다면서 능청스럽게 대꾸하지만, 바로 다음 화에서 즉위한 이방원이 민씨와의 알력 다툼으로 착잡해했을 때 하륜과 독대하면서 하륜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국왕으로서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해 이성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공감해주는 사람이 현재 하륜 밖에 없음을 이방원도 알기 때문이다.[15] 이때 이숙번을 바라보는 태종의 시선은 씁쓸함과 아쉬움이다. 자신이 어떻게든 보호해주고 넘어가려고 했음에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선을 넘으며 오만방자하게 행동하여 쳐내야하는 것이 안타까웠던듯.[16] 이방석 역시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보다 강하고 굳센 형님들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17] 궁에서 내보냈던 어리를 다시 데리고 와 주색잡기를 부렸다.[18] 이 때문에 자주 세자인 양녕에게 충녕을 비교하는 말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19] 양녕과 충녕이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는 이방원의 눈빛이 굉장히 의미심장하고 묘하다.[20] 1. 피를 흘리지 말 것 2. 조정에 분란은 없어야 할 것[21] 하륜과 조영무는 정년퇴직이며 이숙번은 유배형.[22] 실제로 박은은 태종 승하 바로 하루전에 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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