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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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근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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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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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 1991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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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 1991


대한민국의 축구감독

파일:이기근.jpg

이름
이기근
李基根 | Lee Ki-Keun
출생
1965년 8월 13일 (58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포항제철 아톰즈 (1987~1992)
대우 로얄즈 (1993~1994)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1997)
지도자
횡성 FC[1] (2008~??)
가톨릭관동대학교 (2019~2021)
국가대표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경기 (대한민국 / 1991)

1. 개요
2. 선수 시절
2.1. 클럽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3. 지도자 생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 및 지도자이다.

1983년 FIFA U-20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한국 프로축구 사상 최초로 득점왕을 두번이나 수상한 사나이

2. 선수 시절[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파일:포철이기근.jpg
현역시절

1987년 포항제철 아톰즈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하였다. 이듬해인 1988년 12골을 성공시켜 득점왕을 차지했고 포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MVP 최유력 후보였으나 정작 MVP로는 반시즌 밖에 뛰질 못 한 박경훈이 뽑혔다. 박경훈은 수상을 거부했으나 결국 MVP는 박경훈에게 전달되었다. 3년 뒤에 다시 한번 득점왕을 차지해 통산 두번의 득점왕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프로축구 사상 첫번째 득점왕 타이틀 2회 기록이다.

이후로 윤상철, 김도훈, 데얀 다미아노비치, 주민규 등이 그를 뒤따랐다.

K리그 통산 264경기 70골 19도움을 기록했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화려했던 선수 경력에 비해 국가대표 기록은 다소 초라하다. 1983년 4강 신화 멤버들이 대부분 곧바로 성인 대표팀으로 올라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표팀과는 연이 없다가 1991년에서야 처음 성인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1991년 여름 열린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 참가했고 조별리그 인도네시아전을 소화했다. 대회 종료 후 열린 일본과의 한일 정기전을 끝으로 A매치 2경기의 출전 기록을 남긴 채 국가대표 경력은 끝나버렸다.

3. 지도자 생활[편집]


은퇴하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하였으며, 2008년부터 횡성의 갑천중고교에서 횡성 FC를 창단하여 총감독으로 지도하였다가, 2014년 12월 부천 이기근 FC를 창단하여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이후 FC 안양 감독으로 부임한 김형열의 뒤를 이어 가톨릭관동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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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횡성군에 있는 갑천중고교 산하 축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