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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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흠(劉歆, ?~23년)은 중국 전한 말·후한 초의 학자, 사상가이다. 패현(沛縣) 사람으로 자는 자준(子駿)인데, 나중에 이름을 수(秀), 자를 영숙(穎叔)으로 고쳤다. 유향(劉向)의 셋째 아들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젊은 시절부터 학문을 잘했고 예악 관련 직책을 맡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가극을 좋아했다. 일찍부터 벼슬에 나갔고 아버지와 함께 황제의 명으로 여러 가지 서적을 정리하는 일을 맡아 했다. 흔히 서지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사상적 내용으로는 천인감응설, 도참설 등을 신봉하지 않고 비판하였으나 그로 인해 인기를 얻지 못했고 좌천되기도 한다.

왕망에 의해 자식을 잃고 원한을 품어 모반을 꾀했으나 발각되어 자살하여 생을 마쳤다.

칠략, 신론 등을 썼으나 전문이 전해지지 않는다. 칠략은 서지학, 즉 책의 목록을 정리한 책인데 한서 예문지에 상당수 흡수되었다고 하며 신론은 앞서 말한 사상 비판서 같은 것인데 청나라 고증학 시절 남아 있는 글들이 모아진 것이 있다. 그 외에 당시 장안의 생활상을 적은 서경잡기가 전해지기는 하나, 편집자가 갈홍인 것은 대체적으로 확실하나 서경잡기가 정말로 유흠이 쓴 책인지는 반드시 확실하지는 않다. 어쨌든 서경잡기는 한국말 번역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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