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덕(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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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오항선의 남편이다.

2. 생애[편집]


유창덕은 1902년 9월 20일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태어났다. 1925년 북만주 영안현에서 조직된 신민부에 가입하여 김좌진을 보필했으며, 1927년 오항선과 결혼하고 아들 유관철을 낳았다. 1928년 12월 신민부와 참의부(參議府)가 중심이 되어 민족유일당을 추진하려던 혁신의회(革新議會)가 1929년 5월 해체되자, 김좌진과 같이 북만주로 돌아가 1929년 7월 신민부의 후신격으로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를 조직하여 본부를 영안현 산시역(寧安縣山市驛)에 두고 이 회의 주석인 김좌진을 측근에서 적극적으로 보좌하며 항일운동에 진력하였다.

1930년 1월 26일 김좌진이 공산주의자인 박상실(朴相實)의 저격을 받고 피살되자, 그는 장례 및 사후 처리를 도맡았으며, 동요하는 단원들을 재결속하여 한족자치연합회(韓族自治聯合會)로 재편하였다. 그해 1930년 10월 초에는 국민부(國民府)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석두하자(石頭河子)에서 하얼빈 일본영사관원의 습격을 받고 한족연합회(韓族聯合會)의 정일우(鄭一隅)와 함께 체포되었다.

이후 길림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1년 3월 20일 탈옥했으나 피살되었다. 그가 일본군에게 피살되었다는 설과 공산단원의 저격으로 살해되었다는 설이 제기되나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불확실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유창덕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