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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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岸津, Yoo, An-Jin
1941년 10월 1일 ~ (82세)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작가이다. 본관은 전주(全州)[1].

2. 생애[편집]


1941년 10월 1일 경상북도 안동군(現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박실마을에서 아버지 유익희(柳翼熙, 1922. 3. 3 ~ 1993. 5. 30)[2]와 어머니 안동 권씨(1918 ~ 1990. 6. 4)[3] 사이에서 1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외가는 안동군 길안면 용계리에 있었다.

고향 안동군에서 임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할머니의 본가가 있던 충청남도 대전시(現 대전광역시)로 이주했고, 대전여자중학교, 1961년 호수돈여자고등학교, 1965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61학번)를 졸업했다.

1965년 서울대학교 졸업 후 마산제일여자중학교, 마산제일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했고, 같은 해 『현대문학』에 「달」을 출품해 박목월 시인의 첫 번째 추천을 받았다. 이듬해인 1966년 『현대문학』에 「별」을 출품해 박목월 시인의 두 번째 추천을 받았고, 1967년 「위로」를 출품해 박목월 시인의 세 번째 추천을 받으며 마침내 등단했다. 1967년 호수돈여자중학교와 모교인 호수돈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1968년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과에 입학했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심리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1970년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같은 해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유급조교로 채용되었고, 모교인 서울대학교 사범대학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강사로도 출강했다. 또한 동인지 《여류시》에 참여했다. 1972년부터 1979년까지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했고, 또한 1973년 삼수 끝에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생선발되어 1976년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 전공으로 교육학 박사 학위[4]를 취득했다.

귀국 후 1978년 성신여자대학교·단국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사로 출강했다.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단국대학교 조교수를 지냈고, 1980년 동인을 결성해 동인지 《문채》를 발간했다. 1981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아동가족학과 아동학 전공 교수로 재임했다. 또한 1986년 이향자, 신달자 시인과 함께 수필집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펴내 유명해졌다.

2000년 한국시인협회 기획위원장을 지냈다. 2006년부터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아동가족학과 명예교수로 발령되었고,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및 한국시인협회 고문으로 있다.

3. 여담[편집]


  • IVE안유진과 이름만 비슷하다. 둘의 나이 차는 6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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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헌공파(檜軒公派)-안동 수곡파(安東水谷派) 23세 기(基) 항렬이나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 다만 4촌 남동생 류용기(柳龍基, 1946. 5. 8 ~ ), 류호기(柳虎基, 1946. 5. 8 ~ ), 류척기(柳拓基, 1949. 10. 14 ~ 1983. 10. 27) 등은 항렬자를 썼다. 족보명은 유차남(柳次男)이다.[2] 자는 성원(聖元).[3] 권영주(權寧周)의 딸이다.[4] 박사 학위 논문 : Aptitude-treatment interaction in retention of English grammatical rules(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