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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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 魏京生(위경생)

웨이징성은 1950년에 태어난 중국민주화 운동가이다. 아버지는 퇴역 군인이었다. 16세인 1966년에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홍위병으로 참가했다. 이후 1969년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했다. 그는 이후 마오주의 체제 하에서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다. "내가 목격한 환상이 현실에 박살나기 전까지 나는 광적인 마오주의자였습니다." "갑자기 긴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지만 내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1] 1973년에 전역하여 베이징에서 전기 기술자로 근무했다.[2]

1978년 베이징의 봄이 오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중국공산당의 노선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당시 민주벽 운동이라 하여 자유로운 언론 표현을 관청의 벽에 붙이는 운동이 유행이었다. 웨이징성은 이런 민주벽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이었다.

1979년에 체포되어 국가 기밀 누설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받았다. 이후 1993년에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1994년에 다시 체포되어 14년 형을 받았고, 1997년에 질병 보석으로 풀려나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미국에서 활동하였다.


2012년에 강연하는 웨이징성의 모습이다.

2021년 9월에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신이 2019년 10월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관해 미국 정부에 경고하였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베이징의 연락책에게 질병 유행에 대해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2019년 10월에 개최된 월드 밀리터리 게임즈에서 중국이 미리 알고 의도적으로 바이러스가 퍼지게 두었다고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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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www.chicagotribune.com/news/ct-xpm-1997-11-30-9711300247-story.html[2] 비슷한 시기에 군에 입대한 뒤, 전역 후에 기술자로 일하다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쉬원리와 경력이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