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2세(리히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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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리히텐슈타인의 공. 70년 3개월을 즉위해 플래티넘 주빌리를 맞았고, 그의 70년 3개월의 재위기간은 유럽 역사상 루이 14세(72년 3개월), 엘리자베스 2세(70년 7개월)을 이어서 3번째로 길다.
2. 생애[편집]
1840년 알로이스 2세와 그의 아내 프란치스카 킨스키 사이에서 태어났다. 1858년 아버지가 죽자 18세의 나이로 리히텐슈타인 공이 되었는데 나이가 꽤 있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 킨스키가 1860년 11월까지만 섭정을 한 뒤 직접 통치를 했다.
1862년 요한 2세는 첫 번째 리히텐슈타인 헌법을 발표했다. 이 법은 1921년 승인되었다. 요한 2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스위스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 관세 동맹을 맺었고 1924년에는 스위스 프랑을 리히텐슈타인 공식 통화로 지정하기도 했다.
1929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사망했다. 그의 리히텐슈타인 공 직위는 그의 남동생인 프란츠 1세가 물려받았다.
3. 여담[편집]
- 상술했듯이 재위기간이 70년 3개월로 유럽사에선 루이 14세(72년 3개월), 엘리자베스 2세(70년 7개월)를 이어 재위기간이 3번째로 긴 군주고, 전 세계 근현대사에서도 소부자 2세(82년 8개월), 루이 14세, 엘리자베스 2세, 라마 9세(70년 4개월)를 이어 5번째이다.
- 사교적이지 않아서인지 생애동안 사교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 평생동안 결혼을 하거나 자녀를 낳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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