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스(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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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요아스 Joash
출생
기원전 843년경
예루살렘
사망
기원전 796년경
밀로
소속
유다 지파 소속
재위년도
기원전 835년~기원전 796년
약 40년
국적
남유다 왕국
조모
아달리야
자녀
아마샤
이전 국왕
아달리야
다음 국왕
아마샤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편집]


남유다 왕국의 제8대 국왕.


2. 생애[편집]


아달리야(아달야)의 왕족 대학살에서 공주 여호세바가 숨겨주면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뒤,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보호를 받다가 6살 때 여호야다가 아달랴를 폐위시키며 왕위를 되찾았다.[1]

즉위할 때 나이는 7세였기 때문에 여호야다가 섭정을 맡았으며, 즉위 23년째에는 헌금을 모아 아달랴 때 훼손된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했다.[2]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살아있을 때는 하느님을 잘 섬겼지만, 여호야다 사후에는 대신들의 영향을 받아 우상 숭배로 기울었다. 역대하에서는 아람의 침공 직전에 여호야다의 아들인 즈카르야[3]가 요아스의 우상숭배를 비판하자 요아스가 스가랴를 처형하여 은혜를 웬수로 갚는데, 즈카르야는 처형 직전에 하느님에게 자신의 죽음을 보시고 갚아 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이후 아람의 침략을 받자 요아스는 군사를 이끌고 막으러 갔으나, 대패하고 전투에서 심한 상처를 입었다. 이때 예루살렘이 약탈당한 뒤[4] 반란군에게 살해당했다.

사후 다윗 성에 묻혔고,[5] 그의 아들 아마샤(아마츠야)가 왕위를 물려받았다.[6]


3. 기타[편집]


  • 어린 나이에 즉위해서 그런지 재위기간이 매우 길다. 재위기간이 40년으로 남유다의 왕들 중에서 그보다 더 오래 왕위에 있었던 왕은 아사랴(52년), 므낫세(55년) 뿐이다. 그나마도 살해당해서 40년이다.

  • 열왕기하에서는 하느님을 섬겼으나 산당을 없애진 않은 평범한 남왕국 군주 취급[7]이지만, 역대하에서는 은인인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를 처형하면서 암군으로 타락한 모습을 보여준다.[8]
[1] 다만 요아스는 다름아닌 아달리야의 친손자기 때문에 과연 아달리야가 정말로 요아스까지 죽이려 했는지는 후대 학자들에게 상당 부분 의문시되고 있다. 요아스를 빼돌린 건 아달리야 사후를 기약하려는 여호야다의 어떤 계획이었을 개연성도 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북이스라엘에서는 완전히 혈통이 끊겨버린 오므리-아합 왕가 및 이세벨의 혈통은 이 요아스를 통해 이어지게 된다.[2] 열왕기와 역대기 모두 헌금을 모았으나 사제들이 태업하여 요아스가 개입하고 나서야 수리가 진행되었다고 전한다.[3] 개역개정판은 스가랴, 공동번역은 즈가리야, 가톨릭에선 즈카르야로 번역. 가톨릭판 표기가 보다 원음에 가깝다.[4] 열왕기 하권에서는 아람군이 유다를 노리고 방향을 틀자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바친 것으로 나온다.[5] 열왕기 하권과 역대기 하권의 기록이 다르다. 열왕기에는 다윗 성에 묻혔다고만 적혔고, 역대기에는 다윗 성에 묻혔으나 왕실 묘역에 묻히진 않았다고 한다.[6] 아이러니하게도 아들 아마샤 역시 반역자들에게 살해당했다.[7]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임금의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하느님을 올바르게 섬겼는지+세속적인 오점이 적었는가 여부인데, 아예 산당을 없앤 왕인 아사, 히즈키야, 요시야는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평가가 좋고 그 중에서도 요시야를 높게 쳐준다. 그렇지만 요아스도 산당을 없애지 않은걸 지적하면서도 옳은 일을 했다고 하는걸 보면 꽤 좋은 평가다.[8] 일부 견해에서는 마태복음 23:35절에 나온 즈카르야가 요아스에게 죽임당한 제사장 즈카르야와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질타했던 대상은 바알의 숭배자들이 아닌 파리새인들이며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가 주장한 즈카르야가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였다면 파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비웃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요아스 왕은 말년에 우상숭배자로 아예 전향을 하였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질타한 파리새인들과 같은 케이스라고 보는 것에 무리가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같이 언급한 아벨은 죽인 카인은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이 아니었고, 심지어 제사장 자카랴스의 아들의 순교가 성경에 뻔히 기록된 터라 이방종교를 믿는 사람 손에 죽은 인물이 언급되는 것은 뭔가 핀트가 맞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는 구약의 즈카르야서의 저자가 결국에 순교한 것이 아니냐고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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