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춘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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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중식 1세대의 전설적인 셰프. 중화요리 대가로 꼽히는 여경래, 왕육성 등이 왕춘량의 제자이다.
현재 미국에서 중식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 상세[편집]


1960년대부터 중식 요리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중화요리를 시작했는데, 22세가 되면서 이미 유명한 중식 요리사가 되었다. 왕춘량에게 중식을 배우고 레전드로 불리는 중식 셰프들이 아주 많은데, 대표적으로 여경래, 왕육성 셰프 등.

중식을 공부하다가 일본으로 넘어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후 동부이촌동에 홍보석[1]이라는 중식 레스토랑이 오픈하면서 왕춘량을 데려왔고 절정의 전성기를 누렸다. 왕춘량은 홍보석의 칼판장으로 주방을 진두지휘하면서 당대 최고라고 불렸다. 이때 아직까지 사천식 요리가 한국에 없었는데 홍보석이 직접 사천 요리사[2]를 초청하여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한국 중식 요리에 두반장이 등장했다.

한국의 중식 요리는 일본화된 중국 요리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는 모두 1세대 중식 셰프인 왕춘량의 요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현재 한국의 중식은 대체로 왕춘량의 계보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중식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임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한창 잘 나가던 1982년에 미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대단히 큰 레스토랑에서 연락이 와서 계약을 맺어 넘어갔다.[3] 계속해서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틀림없이 중화요리 대가 중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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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흔히 중화요리 4대 문파로 꼽혔던 곳 중 하나. 사천 중화요리를 처음으로 선보였으며, 요리사들에게 꿈의 식당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남진, 앙드레 김 등 가장 잘 나가던 유명인사들이 자주 가던 아지트였다고.[2] 당시 중국과는 국교를 맺기 이전이므로, 일본이나 대만의 화교 출신 요리사가 아닌가 추측된다.[3] 1980년대에 미국의 레스토랑에서 한국의 요리사에게 중식 요리를 맡기고자 연락했다는 것 자체가 당시엔 어마어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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