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사와라 미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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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사와라 미츠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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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9



일본의 前 축구 선수


이름
오가사와라 미츠오
小笠原(おがさわら 満男(みつお | Ogasawara Mitsuo

출생
1979년 4월 5일 (45세)
일본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국적
[[일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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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73cm / 체중 72kg
직업
축구 선수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주발
오른발
소속
선수
가시마 앤틀러스 (1998~2018)
ACR 메시나 (2006~2007 / 임대)
국가대표
55경기 7골 (일본 / 2002~2010)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1. 해외 이적설과 비하인드
2.1.1.2. ACR 메시나 (임대)
2.1.2. J리그 복귀 이후
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여담



1. 개요[편집]


일본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딱 한 번의 임대를 제외하고 무려 20년이나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뛴 준원클럽맨이다.[1] 또한 J리그 베스트 XI에 6번이나 포함되며 가시마 선수로는 최다 횟수를 기록했다. 그리고 소가하타 히토시에 이어 가시마 역대 최다 출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이와테현에서 태어난 오가사와라는 1995년에 오후나토 고등학교[2]에 입학했고 일본 유소년 대회에서 활약하며 '도호쿠판타지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1997년에 졸업한 후 1998년에 가시마 앤틀러스에 입단했다.


2.1.1. 가시마 앤틀러스[편집]


1998년에 가시마 앤틀러스에 입단했을 때 모토야마 마사시, 나카타 고지, 소가하타 히토시가 동기였다.[3] 그리고 4월 15일에 열린 감바 오사카전에서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2000년부터 주축으로 활약하며 J1리그, 천황배, J리그컵 그리고 후지필름 슈퍼컵을 우승하며 일본 최초의 도메스틱 트레블을 이뤄내는데 큰 기여를 했다. 리그에서 28경기 3골, 천황배에서 5경기 2골, 리그컵에서 5경기 4골을 기록하며 총합 38경기 9골을 기록하며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특히 천황배 결승에서 시미즈 선수들이 자리를 막 잡고 있는 차에 감각적인 프리킥으로 득점을 만들어내며 팬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리그 베스트 XI에 들지는 못했다.



가시마의 극적인 우승을 확정짓는 오가사와라의 프리킥 골

2001년에는 등번호를 17번에서 8번으로 변경하며 확고한 주전 자리를 가질 것으로 예상했고 실제로도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하지만 5월에 가시와 레이솔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왼쪽 팔꿈치 골절을 당하며 3개월 동안 부상으로 빠지게 되었다. 8월에 복귀하고는 다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팀은 2년 연속 J리그 챔피언십 진출을 이뤄냈다. 그리고 주빌로 이와타전에서 1차전 2:2, 2차전 0:0으로 연장 승부를 펼치게 되었고 연장 전반 10분에 프리킥으로 골든골을 기록하며 팀의 2년 연속 리그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리그에서 24경기 7골을 기록했었는데 그 중 1골이 우승의 판도를 완전히 바꿨다. 그리고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마침내 리그 베스트 XI에 포함되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4-5-6-3위를 기록하며 팀은 암흑기에 빠졌으나 오가사와라 개인의 활약은 매우 화려했기에 앞서 말 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총 5회 연속으로 J리그 베스트 XI에 들었다.


2.1.1.1. 해외 이적설과 비하인드[편집]

리그에서 매우 뛰어난 활약에 2005년 여름에 US 레체가 관심을 드러냈고, 오기사와라는 해외 진출을 열망했으나 구단 측이 막아서 사이가 틀어진 상황이었다.# 그리고 2006년 겨울 이적 시장에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가 진짜로 협상 의지를 드러냈고 가시마와 오기사와라도 이에 동의해 잉글랜드로 가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그러나 테스트 마지막 날 당시 웨스트햄의 감독이었던 앨런 파듀와의 면담에서 입단에 합의를 하지 못하며 결국 이적이 무산되고 말았다.#

그리고 2006년 여름에도 이적설은 여전했으며 ACR 메시나와 링크가 떴고, 8월에 이적 오피셜이 떴다.


2.1.1.2. ACR 메시나 (임대)[편집]

2006년 8월에 입단해서 2007년 6월까지 ACR 메시나에 임대로 합류했다. 직전 시즌 메시나는 17위에 승점 31점으로 16위 라치오와 단 1점 차이가 나면서 아쉽게 강등을 당할 처지였으나 칼초폴리가 터지면서 유벤투스가 강등, 메시나는 극적으로 잔류했다.

그리고 9월 20일에 열린 라이벌 레지나 칼초와의 경기에서 후반 8분에 교체 투입되며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그 후 계속 벤치에만 있기 일쑤였고 결국 6경기 1골만 기록하며 최악의 부진에 빠지게 되었다. 심지어 팀도 꼴지로 강등당하며 해외 진출을 실패로 남게 되었다. 그래도 당시 수비로 유명했던 이탈리아에서 뛰며 수비적인 부분에서 성장한 걸 다행이라고 인터뷰했다.#


2.1.2. J리그 복귀 이후[편집]



J리그 복귀 후에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2009년에는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리그 MVP에 선정되기도 했고, 2018년에는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도 경험했다.

2018년 12월 27일 가시마 앤틀러스는 오가사와라 미츠오가 현역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2002년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로 데뷔했고, 2002년 월드컵 때도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어 출전했다.[4] 2006년 월드컵 때도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어 조별리그 2, 3차전에 출전했다. 2006년 월드컵 이후로는 한동안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지만 2010년 2월에 다시 대표팀에 발탁되어 베네수엘라와의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그러나 2010년 월드컵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2006년 2월 18일 기린 챌린지컵 핀란드와의 경기에서 하프라인 근처에서 슈팅을 때려 원더골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J리그를 대표하는 플레이메이커였다. 경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크랙 기질이 있으며 패스 센스도 뛰어났다. 슛 역시 정확하기로 유명해서 가시마의 세트피스를 담당하며 수 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프리킥 마스터였으며 중요한 상황에 프리킥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J리그에서 프리킥으로 13득점을 올렸다. 이는 역대 공동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키는 크지 않지만 점프력이 좋아서 헤딩도 괜찮은 편이었으며 한편 볼탈취도 상당히 잘했고[5] 승부욕이 뛰어났다고 한다.


4. 여담[편집]


  • 어린 시절에 당시 일본에서 유명했던 요코하마의 선수인 기무라 카즈시의 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계속 연습하다가 비디오 테이프가 끊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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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딱 한 번 2년 간 슈투트가르트에 임대를 갔었던 필립 람이 있다.[2] 사사키 로키가 있었던 학교기도 하다.[3] 훗날 나카타 고지, 소가하타 히토시와는 한일 월드컵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팀에 동반 승선하기도 했다.[4] 조별리그 3차전 튀니지전에서 후반 교체 출전했다.[5] 그래서 당시 '인간 청소기'라고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