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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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외교
4. 역사
5. 계보



1. 개요[편집]


북이스라엘의 네번째 왕조인 예후 왕조에 대한 문서.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졌으며 가장 댓수가 오래 이어졌다.(5대 5명)


2. 상세[편집]


열왕기에서 등장하며 그래도 북이스라엘의 왕조들 중엔 덜 까이는 편. 이유는 이방신인 바알을 숭배하는 오므리 왕조를 박살냈다는 것.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시기로 여로보암 2세 사후 예후 왕조와 북이스라엘 모두 운명을 다해간다.


3. 외교[편집]


  • 유다
오므리 왕조 시절의 북왕국은 유다 왕국과 사이가 좋은 편이었지만 예후가 역성혁명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사이가 나빠졌다. 결국 요아스 시절에 유다의 아마샤 왕과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결과는 북왕국의 승리.

  • 아람
주적. 예후부터 여로보암 2세 시기까지 끊이지 않고 다툰다. 예후와 여호아아즈 시기에는 아람이 우세했고 요아스와 여로보암 2세 시기에는 북이스라엘이 우세했다.


4. 역사[편집]



4.1. 배경[편집]


오므리 왕조를 창건한 오므리는 본디 이스라엘의 군사령관이었으나 시므리가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던 엘라를 시해하고 왕이 되자 군대의 지지를 업고 시므리를 제거하고 왕이 된다. 그러나 디브니라는 또다른 실력자라 왕위에 올라 4년간 이스라엘 왕국은 내전을 벌이고 최종승자가 된 것은 오므리였고 이렇게 오므리 왕조가 시작된다.

이전까지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왕조가 갈아치워지는 혼란기였는데 오므리 시기에 이르러서 드디어 이 혼란기가 종식되고 안정적인 통치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아들인 아합의 대에 들어서서 북이스라엘은 크게 발전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방신 바알 숭배가 들여온 점. 그로 인해 기존 야훼 신앙이 탄압받는 점이 있었고 이는 야훼의 선지자들에게 불만이었다. 그리고 이 때 아합과 맞짱을 뜨던 선지자가 바로 엘리야.

성경에서는 예후가 왕이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엘리야는 가르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들을 도륙했지만 곧 이세벨 때문에 도망쳐야 했고 절망한 엘리야는 야훼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지만 야훼는 엘리야를 위로해준 뒤 세 가지 임무를 받는다. 그리고 이 임무 중 하나가 바로 님시의 손자인 예후에게 기름 부음을 내려 이스라엘의 새 왕으로 새우라는 것.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중략) 님시의 손자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워라"

열왕기 19자 15~16절


다만 실제로 그에게 기름부음을 내리는 것은 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가 하게 된다.


4.2. 예후역성혁명[편집]


  • 여호람 살해
예후는 당시 장군이었으며 기름부음을 받을 적에 부하들로 추정되는 다른 장수들과 있었는데 그들은 예후가 기름부음을 받자 그를 왕으로 받들며 오므리 왕조를 칠 계획을 꾸민다. 그 때에 아합의 아들이자 북이스라엘의 왕인 여호람은 길르앗 라못에서 하자엘과 대치중이었는데 부상을 당해 이즈르엘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러자 예후는 이즈르엘로 갔고 웬 부대가 자기에게 온다는 말을 들은 여호람은 사람을 시켜 평안한지 묻게 했으나 전령들은 모두 예후에게 포섭되어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여호람이 자기가 나서서 예후더러 평안하냐고 물었으나 예후는 이세벨의 죄악을 짚어 평안하긴 뭐가 평안하냐 하였고 눈치를 챈 여호람이 같이 있던 유다 왕 아하시야에게 반역이 일어났다 말하고 도망쳤으나 예후의 활에 맞아 죽었다. 그 후 여호람의 시체는 예후가 주님의 명령했다며 이세벨에게 죽은 나봇의 포도원에 던져진다.

  • 아하시야 살해
남유다 왕인 아하시야는 부상당한 여호람을 보러 와 있었는데 갑작스레 일어난 반란에 도망쳤으나 예후는 부하들에게 그도 죽이라 명했고 결국 구르 오르막길에서 아하시야 또한 활에 맞아 사망한다. 그래도 아하시야의 시신은 건드리지 않아 아하시야의 시신은 자기 나라로 돌아와 무덤에 묻힐 수 있었다.

  • 이세벨 살해
예후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당시까지 살아있던 이세벨은 대담하게도 화장을 하고 머리를 가다듬은 채 창문 밖을 내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예후가 나타나자 "자기 주인을 죽인 시므리여 평안한가?" 라고 말했다. 이에 예후는 "내 편은 없는가? 누구 없는가?" 라고 말했고 이에 내시 두 명이 이세벨을 창문 밖으로 던져 죽인다. 예후는 죽은 이세벨을 짓밟은 뒤 그래도 임금의 딸(시돈의 공주)인데 묻어주긴 하라고 명령했으나 이미 이세벨의 시신은 제대로 뭉그러져 두개골과 발 그리고 손가락을 빼면 남아있지 않았다. 이에 예후는 주님이 엘리야를 통해 예언한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 말했다.

  • 오므리 왕조의 멸망
여호람과 이세벨이 죽었지만 아직 사마리아에는 아합의 아들들이 남아 있었고 그 숫자도 70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고관들, 원로들, 교육관들에 의해 살해당하는데 예후가 이들에게 전갈을 보냈고 이들이 맞서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후는 이들의 머리를 아침까지 성문 어귀에 쌓아둘 것을 명했고 아침이 되자 예후는 백성들 앞에 나아가 주님이 자신에게 아합 집안을 멸할 것을 명하셨다 연설하였고 이후 아합 집안에 남아있던 남은 사람들도 모두 말살해버렸다. 이로서 오므리 왕조는 멸망했다.

  • 아하시야 형제들 살해
이 때에 아하시야는 이세벨 등이 무사한지 형제들을 보내었는데 이들과 마주친 예후는 이들 또한 모두 도륙했다. 이 때 죽은 이가 42명이었다.

  • 바알 신앙 근절
예후는 백성들에게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지만 자신은 더욱 섬기고자 자신이 바알에 대한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하니 바알의 예언자, 숭배자, 사제들은 모두 모여야 하며 모이지 않는다면 죽이겠다고 공표하였다. 그러나 이는 바알 신앙을 뿌리뽑고자 하는 예후의 계략으로 아무 의심없이 바알 숭배자들이 바알 신전에 모여들자 예후는 그들에게 혹시 야훼 숭배자들이 없는지 점검해보게 한 후 밖으로 나와 여든 명의 병사들에게 이들을 모두 죽일 것이며 한 사람이라도 빠져나온다면 너희가 죽을 것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번제물을 다 바치고 나서 호위병과 무관들을 불러 바알 숭배자들을 모두 살해했고 뒤이어 바알 신전을 완전히 때려부수고 화장실로 바꿨는데 그게 열왕기 작성 시기까지도 남아있었다고 한다.

4.3. 예후 시기[편집]


이렇게 예후가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예후는 정통 야훼 신앙을 회복시키지 않고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숭배로 회귀했다. 그러나 야훼의 눈에는 아합 집안을 몰살시키고 바알 신앙을 때려부순 것만으로도 만족했던지 그에게 그 다음으로 4대에 걸쳐 존속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다만 그와는 별개로 예후 치세는 이스라엘이 큰 위기에 처했는데 아람의 하자엘이 이스라엘 전역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타국의 기록에서도 하사엘이 세운 텔 단 비문에는 자신이 여호람과 아하시야를 죽였다고 주장하고 아시리아의 블랙 오밸리스크에는 살마누아사리두 3세에게 조공을 바치는 예후의 모습이 나와 있어 예후 치세의 이스라엘이 그리 평안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무튼 예후는 28년간 통치하고 죽었다.


4.4. 여호아하즈 시기[편집]


여호아아즈 시기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는데 아람의 침공으로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크게 악화되었다. 어찌나 약해졌는지 남은 보병이 고작 만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여호아하즈는 17년간 재위했다.


4.5. 여호아스 시기[편집]


하락세를 걷던 이스라엘은 여호아스 시기에 부흥하기 시작한다. 열왕기에는 엘리사가 죽을 때 여호아스[1]에게 땅바닥을 내리치라고 말했고 이에 여호아스가 생각없이 세 번을 내리치자 엘리사는 당신이 여섯 번을 쳤다면 아람을 멸할 수 있었겠지만 세 번을 쳤으니 그리는 못하겠다고 안타까워하며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세 번을 이긴 만큼 그만큼 아람에게 잃은 땅을 되찾을 수 있었다.[2]


4.6. 여로보암 2세 시기[편집]


이스라엘의 중흥기다. 40년간 이어진 여로보암의 치세 속에서 이스라엘은 초기 시절의 영토를 거의 되찾았다. 또한 요나가 활동한 시기 또한 이 때다. 아무튼 여로보암 2세의 치세에서 이스라엘은 중흥을 이룰 수 있었으나 이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4.7. 멸망[편집]


여로보암 2세가 죽고 그 아들인 즈가리야가 반년만에 살룸에게 살해당하고 찬탈당하여 예후 왕조는 멸망한다. 그리고 그 이후 이스라엘은 초기 시절보다 더한 대혼란을 겪으며 여로보암 2세가 죽은지 겨우 30년 정도만에 멸망한다.


5. 계보[편집]


[1] 이 때 여호아스는 엘리사를 직저 찾아와 울부짖었다고 한다. 하기사 그가 할아버지에게 기름부음을 내려 왕이 되게 해 주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실제로 기름부음을 주거나 한 사람과 관계가 꽤 있어서 사울은 사무엘을 두려워했고 여로보암은 자신의 아들이 병들자 자신에게 왕이 될 것이라 한 선지자 아히야에게 아내가 찾아가게 했다.[2]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람의 정치적 변동일 것이다. 열왕기에는 이 시기에 하사엘이 죽고 다른 사람이 왕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하사엘의 뒤를 이은 군주가 그만한 능력이 없어서 이스라엘이 땅을 회수해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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