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호 침몰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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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jpg
Sinking of The RMS Empress of Ir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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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
3. 사고 당시
4. 사고 이후


1. 개요[편집]


1914년 5월 29일 캐나다 자치령에서 일어난 해상사고.


2. 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편집]


캐나다 태평양 증기선 회사(Canadian Pacific Steamship Company)는 당시 영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가장 잘 나가는 선박 회사였다. 이곳에서 만든 배는 캐나다와 영국은 물론이고, 중국, 인도, 그리고 이집트 까지도 오고 갔다. 이 회사에서 페어필드 조선(Fairfield Shipbuilding)에 의뢰해, 스코틀랜드 고번에 위치한 조선소에서 건조된 배 2대가 엠프레스 오브 브리튼(Empress of Britain)과 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였다. 1905년에 완공된 이 배는 다음해 1월부터 운항을 시작했다.

배 길이는 174m, 4개 갑판으로 나뉘었다. 배에는 최대 1,542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었는데, 퍼스트 클래스에는 310명이 승선 가능했다. 퍼스트 클래스에는 레스토랑과 유리 돔으로 장식된 음악실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져있었다. 레스토랑에는 은그릇에 과일이 담긴 채 제공됐다. 세컨드 클래스는 객실 468곳이 있었고, 서드 클래스에는 764개의 객실과 아이들을 위한 인공 모래사장이 있었다. 2년 전 있었던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때문에 한동안 구명보트를 나무 재질에서 강철 재질로 바꿨다.

배는 증기로 움직이는 초대형 프로펠러 덕에 최대 18노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배는 한동안 리버풀, 아일랜드, 캐나다 사이를 오고 가며 승객들의 여행을 책임졌었다.


3. 사고 당시[편집]


1914년 5월 28일 4시 30분, 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는 퀘벡에서 출발해 리버풀로 향했다. 당시 선장은 헨리 조지 켄달(Henry George Kendall). 승객 1,057명과 승무원 420명이 탑승했었다. 승객 중에는 구세군 167명도 있었는데, 런던에서 열릴 예정인 구세군 국제 회의에 참여하러 사는 중이었다.

그렇게 리버풀로 향하던 배는 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 올라가던 도중 짙은 안개를 만났다. 안개가 너무 심해 항해가 불가능하다 판단한 선장은 잠시 배를 멈췄다. 이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수밀문을 닫아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몬트리올로 향하던 노르웨이 화물선 SS 스토르스타드(Storstad)가 접근중이었다. 스토스타드의 불빛을 본 헨리 조지 켄달 선장은 배를 눈치 챘으나, 강이 넓었기에 잘 피해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스토스타드도 짙은 안개 때문에 안개가 상대적으로 적은 쪽으로 우회전을 했고, 그러면서 두 배는 서로 가까이 접근했다. 안개가 점차 옅어지자 둘은 서로 충돌 경로에 있단걸 확인했다. 두 배는 서로를 확인하고 경적을 울리며 자신이 있다 알렸으나, 결국 충돌했다.

충돌로 두 배가 엉키고, 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호는 우현 부분의 세컨드 클래스, 서드 클래스 쪽에 큰 구멍이 생기면서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헨리 조지 켄달 선장은 Storstad 측에 엔진을 계속 가동시키라 메가폰으로 말했다. 급한대로 배에 생긴 구멍을 배로 막아 조금이라도 침몰을 늦추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강물의 흐름 때문에 두 배가 서서히 떨어져나가 소용 없게 됐다. 선장은 급히 수밀문을 닫으라 명했으나 물이 빨리 차올라 불가능했다. 배가 기울면서 구명정에 타기도 힘들어졌고, 엔진실에 물이 들어오고, 전기가 끊겨 배 내부는 어두워졌다.

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를 들이받았던 스토스타드와 인근을 지나던 배 유레카(Eureka), 그리고 레이디 에블린(Lady Evelyn)이 구명정을 내리며 사람을 구조했고, 인근 프왕트 오 페흐(Pointe-au-pere)에서도 경비대가 출동해 사람들을 구조했다. 유레카는 150명을 구조했다. 레이디 에블린엔 스토스타드호로 구조된 승객들을 나눠 태우고, 시신을 수습했다. 부상자들은 인근 도시 리무스키(Rimouski)로 이송됐다.

하지만 배에 생긴 큰 구멍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는 14분 만에 우현으로 완전 전복된 뒤 침몰했다. 안타깝게도 너무 빨리 전복되고, 전복되면서 전기도 다 끊겨 탈출이 힘들어 사망자 수가 많이 나왔다.사고로 1,014명이 사망했다. 구세군은 사고 당시 승객들 대피를 돕고 전부 사망했다. 사고는 캐나다 역사상 두번째로 많은 목숨을 앗아간 해상 사고로 기록됐다.[1]

파일:SS_Storstad.jpg
사고로 파손된 SS 스토르스타드의 모습.


4. 사고 이후[편집]


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는 아직도 인양되지 않고 사고 장소에 침몰선으로 남아있다.

프왕트 오 페흐의 해양 박물관에는 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 전시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그곳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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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번째는 핼리팩스 폭발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