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랴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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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 시가현 오츠시 히에이산에 위치한 사찰이며, 일본 천태종(天台宗)의 총본산이다.
서기 788년에 작은 사찰로 창건되었으며, 822년부터 정식으로 승려를 배출하는 천태종의 본산이 되었다. 헤이안 시대부터 조금씩 타 종단의 견제를 받기 시작하면서 자경단 목적으로 소헤이(승병)를 양성했는데, 이것 때문에 오히려 엔랴쿠지가 독립화된 무장세력이 되었고, 부정부패가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센고쿠 시대에 엔랴쿠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다이묘처럼 되어 주지육림에 빠지고 민중을 괴롭혔다. 그러나 교토를 장악한 오다 노부나가에 밉보인 것[3] 을 계기로 노부나가가 민중의 여론을 등에 업고 1571년에 엔랴쿠지를 토벌하고 불태워버렸다.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불탄 뒤 재건된 건물이다. 평지가 좁은 가파른 산에 지어졌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절인만큼 전각 하나하나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1994년에 고대 교토의 역사 기념물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 여담[편집]
한국사와도 약간 관련이 있는데, 승려 엔닌이 중국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신라의 장보고가 도왔고 엔닌은 일본으로 귀국해 엔랴쿠지에서 지냈다. 그래서 지금도 장보고 기념비가 있다.
무사시보 벤케이가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를 만나기 전 이곳에서 수행을 했었다고 한다.
2016년에 선배 승려가 후배 승려를 폭행하는 가혹행위 사건이 터졌는데, 조사 과정에서 과거에 야쿠자와 연루된 사실이 덤으로 발각되는 바람에 오다 노부나가한테 박살난 기억을 잊었냐고 비난 받은적이 있다.
2021년 9월 12일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후손[4] 과 아케치 미츠히데의 후손[5] 을 법회에 초청하고 토론회까지 가졌다. 이를 두고 일본 국내에서는 '450년만의 화해'라는 반응이 많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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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3] 스스로가 하나의 다이묘처럼 변해버린 엔랴쿠지는 오우미 지방을 기반으로 하는 군벌이었고, 노부나가가 키나이로 진출하던 시절에는 북쪽의 아사쿠라 요시카게, 동쪽의 아자이 나가마사와 동맹상태였다. 단순히 노부나가에게 밉보인 것이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 적대관계였던 셈.[4] 이름은 오다 시게카즈(織田茂和)로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한다.[5] 역사학자인 아케치 켄자부로(明智憲三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