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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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보천양(百步穿楊)
양유기
養由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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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직위
궁구윤(宮廐尹)

(嬴)

(養)

유기(由基)

(叔)
생몰 기간
불명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명궁. 성은 영(嬴). 씨는 양(養)이고, 자는 숙(叔).

시대를 대표하는 명궁으로 유명하다. 백발백중이라는 고사의 주인공이자 이후 묘사되는 백보 앞의 버들잎을 맞춰 떨어뜨리는 백보천양(百步穿楊) 고사의 원조격.


2. 생애[편집]


초장왕 대에 영윤 투월초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투월초와 궁술 대결을 이긴 것을 시작으로 명사수로 이름을 드높였다. 서로 화살을 세 대씩 쏘기로 하고 투월초가 먼저 활을 쐈는데, 첫번째는 활로 쳐서 막고 두번째는 피했으며 세번째는 날아오는 화살을 이로 물어서 모두 막아냈다. 양유기의 차례가 되자 그는 활을 쏘는 척하며 살 없이 시위만 당겼고, 소리만 듣고서 몸을 피하는 투월초를 노려 정조준한 화살을 쏴 단 한 발로 숨통을 끊었다고 한다. 투월초 또한 활의 명인으로 이름 높았으나 그를 넘어서는 대단한 활약을 한 셈. 어쨌든 이 일을 계기로 양유기는 활 하나로 잡병에서 대부가 되었다.

이후 기원전 558년에 초 공왕이 그를 마굿간을 관장하는 궁구윤으로 임명했다.


3. 열국지[편집]


열국지에서는 초장왕이 죽고, 초공왕이 재위 할때, 진과의 패권을 다투는 싸움 중 하나인 언릉 전투에서 눈의 화살을 맞은 초공왕이 한쪽 눈까지 잃는 큰 부상을 당하자 화살 한 대만을 가지고 적진으로 가서 공왕에게 상해를 입힌 장수를 순식간에 쏴 죽여 공왕의 복수를 했다. 이때 초공왕이 늑대 이빨로 만든 유니크한 화살 3대를 주며 복수를 명하는것을 단 한대면 충분하다며 거절하고 정말 단 한대만으로 적장을 쏴죽였는데, 초왕은 이를보고 언젠가 활로 흥한자 반드시 활로 화를 입으리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최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는데, 공왕 사후 상중을 타 동쪽의 오나라가 침입하자 이를 토벌하러 출전했는데 적의 계책에 말려 패배하게 된 것을 일기로 분전하다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어 전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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