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다 마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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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야마다 마나부
(山田(やまだ (まなぶ)
출생
1972년 6월 22일 (51세)
도치기현 나스시오바라시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입식 전적
9전 2승 6패 1무 (2KO)
종합격투기 전적
45전 23승 16패 6무

3KO, 19SUB, 1판정

5KO, 8SUB, 3판정
체격
175cm / 102kg
링네임
Oyabun
기타
1994 King of Pancrase 토너먼트 준우승

1. 개요
2. 전적
3. 커리어
4. 파이팅 스타일
5. 여담



1. 개요[편집]


전 프로레슬링, 종합격투기 선수.


2. 전적[편집]






3. 커리어[편집]


경식가라테[1]를 수련했으며 직장생활[2][3]을 하면서 꾸준히 홈 트레이닝을 병행했고 초대 타이거마스크로 유명한 사야마 사토루의 영향을 받아 Shooto에 입문했다. 1990년 프로로 데뷔해 슈토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했다.

1994년 슈토를 떠나 판크라스로 이적했다. 여러 강자들과 맞붙었고 1994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었다. 1995년 모리스 스미스와의 킥복싱룰 경기에서 팔골절으로 장기간 결장했고 2000년 콘도 유키전 이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후 아이치현에서 척추치료와 지압에 관련된 교육을 받았고 도쿄도 도시마구에 지압원을 경영하고 있으며 종종 고향인 도치기현에서 종합격투기를 가르치기도 한다.


4. 파이팅 스타일[편집]


가라테베이스지만 종합격투기에선 그래플링으로 경기를 치르는 편이였다. 당시 일본 종합격투기의 경기 성향이 실전 프로레슬링의 영향으로 맨손 타격후 서브미션 캐치위주의 그라운드 싸움을 강조하는 편이였다. 그 당시 선수들의 성향인 하체관절기에 능했다.


5. 여담[편집]


Shooto에 입문하기 전까지해도 실전 프로레슬링이나 격투쪽에는 관심이 없었다. 가라테역시 건강상 목적으로 즉 생활체육으로 했다고 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해발 1500m가 넘는 곳에 있는 여관, 온천, 주유소를 올라가 청소나 물품배달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판크라스로 이적후 파이트머니가 올라가 격투기하면서 밥을 먹을수 있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슈토시절엔 도치기에 있었다가 판크라스에 이적한 후에 상경했다.

마나부의 은퇴전이후 판크라스는 기존의 팜 스트라이크 룰을 폐지하고 오픈핑거 글러브를 도입해 본격적인 종합격투기 단체 형태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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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림사 권법에서 주관해서 만든 보호구 착용 후 쿠미테하는 가라테[2] 방위성과 연관된 회사였다. 전투기와 레이더쪽담당이였다고 한다. 인터뷰에선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항공자위대일 가능성이 높다.[3] 직장은 20세때 그만뒀다. 부업인 격투기를 허락하지 않아서 그만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