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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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안학수 본인, (우)안학수의 삼촌.

1. 개요
2. 생애 및 사후
3. 참고 자료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육군의 前 하사이자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2. 생애 및 사후[편집]


1943년 경, 경상북도 포항에서 5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63년 9월 군입대를 하여, 대구 제5관구사령관 암호병으로 근무하다가 베트남 파병에 차출되었다. 제1이동외과병원에서 근무하던 그는 사이공 공무출장 중 돌연 실종된다. 이후에 납북되어 1966년 9월 16일 평양 대남방송에 출연하게 된다. 북한에서는 그가 남한을 버리고 북한으로 월북했다고 선전했고, 이에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사정을 파악하지 않고 멋대로 월북자로 규정하였다.[1]

그의 납북 이후에 안학수의 가족은 "간첩의 가족"이라는 오명을 달고 평생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2]

이후 1976년에 남한으로 망명한 전 노동당 연락부 365군부대 대좌 김용규의 증언에 따르며, 안학수는 1975년에 순안초대소에서 조사받으면서 고문을 당했으며 북부 국경에서 탈북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사형에 처해져 끝내 살해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와중에 군사정권은 안학수 하사가 이미 숨진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안 하사의 가족을 사찰하고 괴롭혔다. 사찰이 끝난 건 노태우를 끝으로 군사정권이 종식되고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시작된 1993년이 되어서였다. 십수년을 죄가 없는 줄 알면서도 지독하게 괴롭힌 셈.[3]

이후에 묻혀질 뻔한 사실을 어느 전화로 다시 수면위로 드러났는데. 2008년 5월에 동생인 안용수씨 집에 한 통의 전화가 왔고, 자신을 외교부 출입기자로만 말하는 익명의 사람은 베트남 전쟁 당시 외교와 정보기관 문건들이 대거 풀렸는데. 그 문서들 중에서 안학수 하사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다는 문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렸다.출처

그래서 정보공개 청구로 문건들을 입수한 결과. 군부와 외교부, 중정, 청와대 모두 안학수가 월북이 아닌 납북이라는것을 인식했고. 이것을 외부에 알리는 대신 월북이라는 은폐를 선택했다는것도 드러났다. 특히 가족들을 끈질기게 괴롭혀온 보안사에선 이미 1975년경에 평양에서 총살됐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2009년 4월, 통일부 산하의 납북피해자지원단 심사위원회에서 안 하사가 납북자로 정정되어, 마침내 그의 명예가 회복된다.

2009년 9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한 당국에 ‘재북가족 안학수’의 생사 확인을 요청했지만 “확인 불가능”이라는 통지를 받았다.[4]

2011년 7월,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가 안장되었다.

2022년 3월 31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 3 22화에서 그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2022년 8월 21일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도 언급되었다.


3. 참고 자료[편집]


2014년 보도된 한겨례 기사
2014년 보도된 YTN 뉴스
2015년 보도된 시사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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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렇게 한 이유는 당시 베트남 파병이 끝나고 열린 개선식에서 정부가 포로 파악을 안 했던 것인지 한국군 포로는 한 명도 없다고 발표해버렸기 때문. 그러다가 개선식 1주일 뒤 당시 포로였던 유종철 일병이 귀국하면서 정부의 발표는 거짓말이었음이 들통나버렸고 이에 정부는 거짓말을 인정했다간 박정희 정권의 붕괴가 일어날 건 불보듯 뻔했기에 권력 유지를 위해 필사적으로 유종철 일병 외의 포로는 없다고 현실부정을 해왔던 것이다. 안학수 하사의 월북자 건도 이 현실부정의 일환이었던 것.[2] 당시 국군보안사령부는 안학수 하사의 행방을 알면서도 가족들을 고문하며 취조했다.[3] 아마 안학수의 행적을 다 알고 있었기에 더 집요하게 괴롭혔을 것이다. 안학수의 행적이 알려진다면 군사정권의 거짓말이 들통나는 것이니까.[4] 김용규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미 죽은지 30년이 넘었고 사형수이니 만큼 시체도 대충 묻어버렸을 가능성이 크며 결정적으로 월북자로 선전했던 사람이 탈북을 시도했다는게 들킨다면 김일성 정권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으니 관련 기록도 지워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즉, 제대로 확인이 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