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군/역대 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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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아일랜드군의 제복군인 최고 선임인 참모총장(Chief of Staff of the Irish Defence Forces)을 정리한 항목이다. 1922년 아일랜드군이 독립한 이래로 중장 계급이 아일랜드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28대 마크 멀렛 제독을 제외한 1대부터 27대까지의 27명 전원이 육군이며 멀렛 제독만이 유일하게 해군 출신이다. 섬나라임에도 육군이 초강세를 누려온 케이스이다.
2. 역대 참모총장[편집]
3. 기타[편집]
아일랜드군 자체가 영국에 저항하던 아일랜드 독립군에서 출발하다 보니 시작이 미약했고 젊은이들 중심의 군대였다. 건군기 때의 대한민국 국군 못지 않게 젊은 장군들이 주축이었다. 전체주의에 끌리던 국수주의자와 반공주의자, 좌익 등이 섞여 있던 한국군과 마찬가지로 아일랜드군의 초기 인원들도 다양한 이념이 섞여 있었고 이는 아일랜드 내전의 한 원인이기도 했다.
첫 참모총장을 지낸 오언 오더피(Eoin O'Duffy, 1892-1944)는 1921년 3월에 28세 11개월의 나이로 1사단장이 되었고 이듬해인 1922년에 아일랜드군의 최선임이 되었다. 비록 4개월뿐이긴 했지만. 오더피는 반공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로 유명했고 스페인 내전 당시에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돕기 위해 700명 규모의 아이리시 여단의 지휘관으로 참전했다. 당시 오더피는 민간인이었다.[1] 심지어 나치 독일이 바르바로사 작전을 시행할 때 아일랜드군 병력 일부를 파견하는 제안도 했지만 실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파시즘에 반대하여 영국군에 입대하여 싸우는 아일랜드인도 많았던 걸 생각하고, 그가 이런 파시즘적인 행동을 보일 땐 이미 현역 군인이 아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런 행동이 아일랜드군 전체의 입장이라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더피의 뒤를 이어 참모총장을 지낸 리처드 멀케이히(Richard Mulcahy, 1886-1971) 역시 취임 당시 36세의 젊은 장군이었다. 한 달을 재임하고 물러났으며 같은 해(1922년)에 3대 참모총장이 된 숀 맥마흔(Seán Mac Mahon, 1893-1955) 역시 취임 당시 28세 11개월에 불과했다. 5대 참모총장 대니얼 호건(Daniel Hogan, 1895-?) 역시 1927년 취임 당시 32세였고 6대 숀 매코언(Seán Mac Eoin, 1893-1973) 장군 역시 36세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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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페인 내전은 2차 대전 직전이다 보니 전운이 감돌던 시절이라 여러 나라에서 부담을 느껴 직접적으로 병력을 파견하진 않고 의용병 중심으로 민병대가 참전하는 형태를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