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키 무네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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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배우.
2. 생애[편집]
그래픽 디자인 전문학교를 졸업 후 아르바이트 생활 중에 모델을 하고 있던 친구의 추천으로 사무소 오디션 응모. 당초는 모델부문을 지원했지만, 다른 지망자의 얼굴을 보고 그 자리에서 배우 지망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당시는 배우라는 일에 그다지 열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02년 에 영화 「머슬 히트」로 데뷔. 이후 2006년 NHK 토요일 드라마 '연결된 내일'『繋がれた明日』(4부작) 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그동안 마루야마 토모미, 쇼겐, 아이바 켄지 등과 함께 극단 REBOUND GLAMOUR 를 결성하고 무대 공연도 하고 있었지만 2007년에 해산했다.
2007년 NHK TV 소설 '치리토테친'『ちりとてちん』(151부작) 에 출연, 히로인의 든든한 사형에서 남편이 되는 만담가(일본의 1인 무대극) 徒然亭草々(つれづれてい そうそう)역을 맡아 폭넓게 이름을 알리게 됐다.
2009년 드라마 '오늘도 맑음. 이상 없음'『本日も晴れ。異状なし 〜南の島 駐在所物語〜』(9부작) 에서는 사탕수수 농가의 청년을 오키나와 사투리로 연기했다. 함께 연기한 사카구치 겐지 에 따르면, 당초 전원 표준어의 예정이었지만, 아오키는 방언 연기를 고집해 현지의 사람으로부터 열의 있는 지도를 받았으며, 혼자만 완벽에 가까운 오키니와 사투리로 연기했다. 또, 촬영이 없는 휴일에도 촬영장에 동행해 촬영지 섬 주민과 교류하거나 유유히 산책하고 있었다고 한다.
2011년 1월부터 같은 해 6월 사이, 뉴욕에 어학연수를 했다. 그 사이 동일본 대지진(2011. 03. 11)이 발생하자 큰 천에 현지 수백 명의 편지를 모아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자선 라디오 프로그램에 보냈다 .
2011년부터 일본 무용 전수자인 3대 오노에키쿠노죠 에게 사사. (일본무용 오노에류의 습명으로, 3대째 가부키 안무가 등을 지냄)
2011년 5월, 칸 국제 영화제에 출연작의 『一命』이 출품 되었을 때, 뉴욕에서 어학연수중이었으나 미이케 타카시 감독이나 에이타 등 일본 일행과 합류했다. 정식 초대 명단에 없었기 때문에 경비를 자체 부담해야 했고 그 때문에 도중에 노숙까지 경험했다고 한다.
부인 유카와는 2016년 NHK 목요 시대극『ちかえもん』(8부작) 의 출연을 계기로 반년을 교제 후 유카의 36세 생일에 2016년 6월 27일 에 입적(혼인신고서 제출), 1개월 후의 7월 27일에 도쿄 · 메이지 신궁에서 결혼식을 진행했다. 2020년 4월 27일, 장남 탄생을 유카와 각 소속사를 통해 보고 하였다.
특기는 회화로 그림 편지와 같은 블로그에서 독자적인 감성을 발휘하고 있다. 또 취미는 데뷔 전부터 백팩 1개로 전세계를 여행하는 것으로, 2015년에 오대륙을 답파 했다는 것.( 남극을 제하고 모두 방문해봤다고 한다) 여행 경비를 아끼기보단 경험해보고 싶어서 야간 열차와 야간 버스, 여행자를 위한 룸에 묵었다고 한다.
바람의 검심의 사가라 사노스케 역은, 액션 감독의 다니가키 켄지로부터 Donnie Yen(견자단)의 DVD를 건네받아 따로 연구했다. 이누이반진 역의 스도겐키와의 베틀씬은 만 하루를 꼬박 새는 촬영이었지만 전 격투 수인 스도겐키가 힘든 상대였다고 칭하자 기뻤다고 밝혔다. 오사카 출신으로 바람의 검심에 함께 출연한 아오이 유우의 가와치벤 (오사카 동부의 센 방언) 감수를 해줬다고 한다.
바람의 검심: 교토 대화재편/전설의 최후편 『るろうに剣心 京都大火編 / 伝説の最期編』 촬영 중 주먹에 맞아 이가 부러지는 등이 사고가 있었다. 이후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 프리미어에 부상이 언급되자 맞아서 이빨이 빠졌지만 자신은 사노스케이니 상관없다고 대답해 사노스케 역에 대한 몰입과 애정을 과시했다. 또한, 기술에 걸려 몇 번이나 실신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에 인터뷰에서 여전히 배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었다.
3. 출연 작품[편집]
3.1. 영화[편집]
3.2. 드라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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