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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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 후기의 문신. 는 숙필(叔弼). 는 성재(醒齋). 시호는 정간(貞簡). 본관은 고령(高靈).


2. 생애[편집]


신익상(申翼相)은 1634년(인조 12)에 태어났으며,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신벌(申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승지 신응구(申應榘)이고, 아버지는 정언 신양(申湸)이다. 어머니는 지중추부사 이경(李坰)의 딸이다.

1660년(현종 1)에 진사시(進士試)를 거쳐 1662년(현종 3) 문과에 급제하였다. 검열(檢閱), 봉교를 거쳐 오랫동안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사실을 곧게 기록하여 명성을 얻었다.

숙종이 즉위(1674)한 후 남인이 득세하자, 충청도 아산에 은거했다가 1680년(숙종 6) 경신환국 때 특지(特旨)로 도승지에 올랐다. 이어 이조참판, 전라도관찰사, 부제학, 대사성을 거쳐, 1684년(숙종 10) 평안도관찰사에 제수되었다. 재임기간 주변 읍민을 동원하고 공명첩(空名帖)을 발급하는 방법으로 영변의 철옹외성(鐵甕外城)을 수축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 뒤 대사헌, 이조참판, 대사성을 역임하였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이 일어나고 민비(閔妃)가 폐위되자 그 부당함을 논하고 양주로 퇴거하였다.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 때 다시 기용되어 공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우의정으로 승진하였다.

1697년(숙종 23)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시문에 능하고 필법, 특히 전서(篆書)에 조예가 깊었다. 시문집으로 성재집(醒齋集) 3권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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