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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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완근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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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51번
최홍석
(1984.7.2.~1984)

신완근
(1988)


이희성
(1989~1996)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19번
김일부
(1988)

신완근
(1989~1994)


김병철
(1995~1997)


신완근
辛完根 | Shin Wan-Geun
출생
1966년 2월 14일 (58세)
전라북도 완주군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전라중 - 전주고 - 원광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8년 2차 1라운드 (태평양)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 (1988~1994)
1. 개요
2. 선수 경력
3. 트리비아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태평양 돌핀스에서 뛰었던 선수. 1988년 혹사로 인해 데뷔 시즌 이후 부상에 시달리느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은퇴했다.


2. 선수 경력[편집]


고등학교 시절 1학년부터 대회에 뛰었을 정도로 기대받던 선수였다. 그의 피칭은 두뇌피칭이라 평가받았으며 즉 구속이 느리다 주 무기는 기사에 따라 다른데 낙차 큰 슬로우커브 or 낙차 큰 슬라이더. 기자가 슬라이더와 커브를 구분 못 했을 가능성이 크다

졸업 후에는 원광대에서 뛰었으며 졸업 후 1988년 태평양 돌핀스에 2차 1라운드로 지명 받아 뛰게 된다. 여태구와 함께 태평양에서 픽한 자원 중 실전 투입이 바로 가능한 선수로 분류됐었다. 이때 한 기자는 양상문, 임호균을 제외하면 적당한 투수가 없으니 감독이 계투작전위주로 게임을 이끌어 갈 것이라 예상했고 불행히도 그 예상은 사실이 되었다.

신완근은 입단한 1988년 기록적인 혹사를 경험하는데 숫자로 보면 37출장, 4선발, 139이닝. 이는 1982~2020 KBO에서 선발 등판 5회 이하인 선수 중 최다이닝 10위이며 144G 환산을 하게 되면 9위까지 뛰어오르게 된다. 출장이 적으니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해 신완근의 완투는 1회이니 이 1회를 9이닝으로 가정하고 나머지 3회를 8이닝을 뛰었다고 가정해도 선발이닝은 33이닝. 불펜으로 뛴 이닝은 106이닝으로 구원 등판은 33회이니 구원으로 등판한 뒤 평균 3이닝 이상을 뛰었다는 소리가 된다. 안 좋은 의미의 중무리로 뛰었던 셈. 데뷔시즌이니 버두치 리스트에 당연히 못 들어가지만 부상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

그 후 부상으로 신음하게 되며 신통찮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 40이닝, 60이닝을 뛰며 ERA+ 100이상을 찍은 시즌도 있긴 있었지만 클래식 성적으로 보면 이후 5년간 3승 0세이브밖에 거두지 못했다. 패 역시 7패에 불과하니 중요한 순간에 안 올렸다는 소리. 결국 1993년을 끝으로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고 1994년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28세의 젊은 나이에 쓸쓸히 은퇴하게 된다.


3. 트리비아[편집]


사회인야구단에서 활동할 때인 2020년에는 제2회 양구자연중심배 전국사회인야구에 참여한 최고령 프로선수 출신으로 이름을 올려 기사까지 나왔다. 그리고 그 기사에서는 쌍방울 레이더스키움 히어로즈의 전신이라 하는 헛소리를 했다

통산 5승을 거뒀는데 이중 3승이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거둔거라 해나쌩이란 소리를 듣기도 했다.

마구마구에서는 신찬근이란 가명으로 등장한다.

4. 관련 문서[편집]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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