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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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 중기의 문신. 는 숙정(叔正). 는 졸재(拙齋). 본관은 고령(高靈).


2. 생애[편집]


신식(申湜)은 1551년(명종 6)에 태어났으며, 영의정을 지낸 보한재 신숙주의 5대손이다. 아버지는 신중엄(申仲淹)이며, 어머니는 유엄(柳渰)의 딸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1576년(선조 9)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 집의(執義)로 있을 때 정여립(鄭汝立)의 일파로 탄핵되어 유배당하였다가 1592년(선조 25) 다시 집의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경상도안무어사(慶尙道按撫御史)[2]로 활약하였다.

그 뒤 동부승지, 좌부승지, 좌승지 등을 역임하고 대사간과 부제학을 거쳐 도승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공조참판 등을 지냈다. 1599년(선조 32)에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호조참판, 대사헌이 되었다.

광해군 즉위 후, 충청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다가 다시 사은사로 명에 가서 왜의 실정을 알렸다. 말년에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623년(인조 1)에 세상을 떠났으며, 청주의 쌍천서원(雙泉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의례고증(疑禮攷證)》, 《가례언해(家禮諺解)》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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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주의 쌍천서원(雙泉書院)에 봉안된 영정이다.[2] 조선왕조실록(http://sillok.history.go.kr/id/kna_12807008_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