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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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미국의 재즈 베이시스트.
베이시스트 모든 테크닉의 시초를 구성한 사람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테크닉'하면 가장 먼저 거론되던 연주자였다. 동시대의 자코와 퓨전 재즈계의 쌍벽을 이루던 베이시스트이다.
칙 코리아가 리더였던 퓨전재즈 그룹 리턴 투 포에버의 첫 번째 베이시스트였다.
2. 생애 및 활동 내역[편집]
필라델피아 태생이며, 그가 잡은 첫 번째 악기는 다름아닌 '바이올린'이었다. 어릴 때 가족들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던 그는 고등학교 때 일렉트릭 베이스로 전공을 바꾸고, 그 지역의 록 밴드와 R&B 밴드에서 활동하며 청년 시절을 보냈다. 그가 퓨전 재즈 연주자로서 수면위로 떠오른 시기는, 한창 퓨전붐이 일던 1970년대가 지나서였다. 그 당시 호레이스 실버 밴드와 함께 뉴욕에서 몇 달간 무대에 섰고, 그 뒤에는 파로아 샌더스와 조 헨더슨(Joe Henderson)이 리드하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그의 경이로운 테크닉과 음악성은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전해졌으나, 당시의 재즈사회에서 그리 환영받지는 못했다. 그는 스탄 게츠, 길 에반스, 아트 블래키, 돔 움 로마오(Dom Um Romao)와 많은 유명 연주자들과 합주를 하였고, 조 헨더슨 밴드에서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를 만났다. 그와의 만남은 그의 퓨전 재즈&라틴 그룹 리턴 투 포에버가 결성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리턴 투 포에버는 지금도 웨더 리포트,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와 함께 70년대의 대표적인 3대 퓨전 재즈 밴드로 회자된다. 어쨌든 리턴 투 포에버에서의 활동은 클락이 일렉트릭 베이스 주자로써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웨더 리포트의 자코 파스토리우스와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스탠리 클라크는 1974년 자신의 이름을 건 첫번째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당시만 해도 (일렉트릭 베이스가 나온지 반세기도 지나지 않았을 때이니)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테크닉과 파워풀한 리듬은 충격에 가까웠다. 그 후1977년 리턴 투 포에버를 떠나 클라크는 2장의 싱글을 차트에 올렸고. 최근에 리턴 투 포에버의 재결합투어에 참여하였다. 이후에도 그의 솔로경력은 계속되고 있고(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고 떠난 S.M.V.[2] 등) 세계의 여러 재즈 아티스트의 연주에 참여하며 그만의 플레이를 계속하고 있다. 그의 일렉트릭 베이스에 대한 기여는 과소평가 될 수 없고, 그가 남긴 업적은 현대의 재즈 현장에 분명히 남아있다.
3. 기타[편집]
- 콘트라베이스 연주도 수준급이다.
- 잘 보면 뒤에 베이스가 한 명 더 있다. 아르망 사발레코(Armand Sabal-Lecco)라는 베이시스트인데, 스탠리 클라크 밴드에서 많이 보인다. 친한 듯 하다.
- 스탠리가 무대 앞에서 베이스를 기타 치듯이 연주하고, 아르망은 뒤에서 받혀주는 '진짜 베이스' 역할을 한다.
4. 앨범 목록[편집]
- 1974: Stanley Clarke
- 1975: Journey To Love
- 1976: School Days
- 1978: Modern Man
- 1979: I Wanna Play For You
- 1982: Let Me Know You
- 1984: Time Exposure
- 1986: Hideaway
- 1988: If This Bass Could Only Talk
- 1993: East River Drive
- 1995: At the Movies
- 2003: 1, 2, to the Bass
- 2010: The Stanley Clarke Band; featuring Hiromi (일본의 재즈 피아니스트 우에하라 히로미와 합작한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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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ew Europe Newsroom, "INTERVIEW with bass legend, Stanley Clarke", 「New Europe」, 2019.7.18.[2] 클라크와 마커스 밀러, 빅터 우튼 이 세 거장이 모여서 결합한 밴드. 무려 베이스가 세 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