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제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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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제머슨'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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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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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제임스 제머슨
JAMES JAMERSON

헌액 부문
음악적 우수상 (Award for Musical Excellence)
멤버
(개인자격)
입성 연도
2000년



James Jamerson
제임스 제머슨


파일:James Jamerson.jpg

본명
제임스 리 제머슨
James Lee Jamerson
출생
1936년 1월 29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에디스토 섬
사망
1983년 8월 2일 (향년 47세)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직업
베이시스트, 세션
부모님
아버지: 제임스 제머슨 1세
어머니: 엘리자베스 베이컨
배우자
애니 웰스
자녀
제임스 제머슨 주니어, 조이 제머슨, 데릭 제머슨, 도렌 제머슨
학력
노스 웨스턴 고등학교
활동 기간
1956년1983년
사용 악기
베이스 기타, 더블베이스
장르
R&B, 소울, , 펑크, 재즈
레이블
모타운 레코드

1. 개요
2. 평가
3. 생애
4. 스타일과 영향력



1. 개요[편집]


미국베이시스트.


2. 평가[편집]


주로 소울, R&B 쪽에서 활동한 베이시스트로, 평생을 세션으로 살다 간 사람이라 존 엔트위슬, 자코 파스토리우스, 찰스 밍거스 등과 달리 일반인은커녕 음악 리스너들도 이름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문가들에게는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베이시스트로 자주 선정되는 베이시스트로, 모타운 레코드에서 활동하면서 23개의 빌보드 핫 100 1위 곡과 56개의 R&B 차트 1위 히트곡에서 베이스를 연주하였다.

2017년 베이스 플레이어 잡지에서 선정한 베이시스트들이 고른 100명의 베이시스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2020년 롤링 스톤 선정 가장 위대한 베이시스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3. 생애[편집]


1936년 1월 29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에디스토 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연주했으며, 공연에 서기도 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1954년 디트로이트로 이사하면서 더블베이스로 처음 베이스를 배웠다. 얼마 안 되어 블루스, 재즈 클럽에서 연주를 맡을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하였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도 계속 클럽에서 공연을 하던 제임스 제머슨은 유명 베이스 가수 워시보드 윌리의 밴드에 합류하기도 하였고, 마침내 음악 관계자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근처 스튜디오의 베이스 세션으로 서게 되었다.

1959년, 모타운 레코드의 본거지인 히트빌 U.S.A에서 스모키 로빈슨 등의 세션으로 일하던 그는 자신과 비슷한 녹음 세션들의 그룹인 펑크 브라더스(The Funk Brothers)의 핵심 멤버가 되었다. 제임스 제머슨은 처음에는 더블 베이스를 사용하였지만, 1960년대부터는 베이스 기타로 녹음을 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모타운에서 그가 베이스를 연주한 곡들의 목록은 정말 어마어마한데, 사실상 1960년대~1970년대 R&B - 소울 음악 히트곡들의 계보라고 봐도 될 정도이다. 슈프림즈의 You Can't Hurry Love, 템테이션스의 My Girl[1], 스티비 원더의 For Once in My Life와 I Was Made to Love Her[2], 스모키 로빈슨 & 더 미라클스의 Going to a Go-Go, 마사 앤 더 반델라스의 Dancing in the Street[3], 마빈 게이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4],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5], 그리고 What's Going On[6]의 대부분의 수록곡에서 베이스를 연주하였다. 총 23개의 빌보드 핫 100 1위 곡56개의 R&B 차트 1위 히트곡에서 베이스를 연주하였다.[7]

모타운이 1972년 본사를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로 이전하고도 제임스 제머슨은 가끔 녹음을 하였지만, 모타운과의 관계는 1973년에 공식적으로 끝이 났다.

제임스 제머슨은 이후로도 몇 개의 히트곡들을 더 녹음하였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스타일은 점점 트렌드에 맞지 않게 되었고, 제임스 제머슨 본인도 새로운 스타일을 익히는 데에 회의적으로 반응하였다. 결국 1980년대에 들어서는 그에게 큰 규모의 녹음을 맡기는 프로듀서들이 거의 사라졌다.

이후, 알코올 중독에 걸려 고생하던 제임스 제머슨은 1983년 8월 2일 47세의 나이로 간경변, 심부전, 폐렴 등 여러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


4. 스타일과 영향력[편집]




1972년 마빈 게이What's Going On 라이브. 제임스 제머슨의 몇 안 되는 라이브 영상이다,

베이스 기타가 사용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된 1960년대 초반 베이스 기타의 역할은 1도와 5도 위주의 단순하고 반복적인 근음만 담당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플레이 스타일이 잘 확립되지 않았다.

반면에 제임스 제머슨은 크로메틱, 싱코페이션, 고스트 노트 등 다양한 주법을 사용하였다. 물론 지금은 기본적인 테크닉들로 평가받지만, 당시에 이런 연주법들은 매우 참신한 것이었고, 이러한 주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제임스 제머슨은 베이스의 가능성을 넓힌 연주자로 매우 고평가 받는다.

이러한 제임스 제머슨의 스타일은 1960년대 중반까지 모타운 사운드의 핵심이 되었고, 대중 음악에 큰 영향을 주었다. 비틀즈도 이에 영향을 받아 Rubber Soul 앨범의 수록곡 You Won't See MeNowhere Man에서 이러한 스타일을 보이기도 하였다.

폴 매카트니, 마커스 밀러, 마이크 밀스, 존 엔트위슬, 존 폴 존스, 글렌 휴즈, 플리, 자코 파스토리우스, 잭 브루스, 브라이언 윌슨 등 수 많은 쟁쟁한 베이시스트들도 제임스 제머슨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였다.

보통 베이시스트들은 핑거 피킹을 할 때 검지중지의 두 손가락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제임스 제머슨은 특이하게도 오직 오른손 검지 손가락 만으로 핑거 피킹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보통 검지중지음색과 세기가 약간 달라서 현을 퉁길때 사운드가 살짝 달라지는데, 한 손가락만 쓴 제임스 제머슨의 연주는 사운드가 일정하였다고 한다. 이런 제임스 제머슨의 특이한 연주 스타일을 본 동료들은 그의 검지 손가락에 'The Hook'라는 별명을 붙혔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당시 모타운은 크레딧에 세션들의 이름을 올리지 않는 것이 관례였고, 그로 인하여 제임스 제머슨은 가장 저평가된 베이시스트 중 한 명으로 자주 꼽히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990년대 이후 그의 영향력에 주목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좋은 의미로 크게 재평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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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곡88위[2] 두 곡 모두 빌보드 핫 100에서 2위에 올랐다.[3]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곡40위[4] 빌보드 R&B 차트 3위.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수록곡으로도 유명하다.[5] 어클레임드 뮤직 선정 10,000대 명곡 중 8위[6]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 1위[7] 이 정도의 히트곡을 가진 뮤지션은 폴 매카트니 정도 밖에 없다. 물론 세션 연주자와 뮤지션들을 비교하는 건 뮤지션들에게 꽤나 불합리한 일이긴 하지만, 대단한 기록임에는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