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피 그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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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피 그라프
Steffi Gr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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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슈테파니 마리아 그라프
Stefanie Maria Graf
출생
1969년 6월 14일 (54세)
서독 만하임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신장
175cm (5 ft 9 in)
체중
64kg
프로데뷔
1982년
은퇴
1999년
사용 손
오른손잡이 (한손 백핸드)
통산 상금 획득
$21,895,277
배우자
안드레 애거시

1. 개요
2. 주요 성적
2.1. 역대 메이저 대회 단식 성적
3. 생애
4. 기타



1. 개요[편집]


독일의 前 테니스 선수이다.

2023년 기준 역대 남녀 테니스 선수들을 통틀어 유일한 캘린더 골든 슬래머이자[1] 마거릿 코트, 세레나 윌리엄스와 더불어 여자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

같은 시기에 남자 선수로서 테니스계의 최강자로 활약했던 안드레 애거시와 2001년 10월 22일 결혼했으며 금슬 좋은 부부사이를 유지 중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2. 주요 성적[편집]


4대 그랜드 슬램 대회 우승 : 총 22회 & 올림픽 금메달[2]

호주 오픈 우승
4회(1988, 1989, 1990, 1994)
프랑스 오픈 우승
6회(1987, 1988, 1993, 1995, 1996, 1999)
윔블던 우승
7회(1988, 1989, 1991, 1992, 1993, 1995, 1996)
US 오픈 우승
5회(1988, 1989, 1993, 1995, 1996)

보다시피 테니스 역사상 여자 선수로서 정상급을 자랑하는 성적을 올렸다. 특히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중반은 가히 그녀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중반을 지배했다는 평이 있는데, 그건 엄연히 틀린 말이다. 1990년대 초부터 1993년 초까지 테니스의 여제는 누가 뭐래도 모니카 셀레스였다. 비록 윔블던에서 우승을 못했지만 그 외 대회는 모니카 셀레스가 휩쓸다시피했고 테니스 역사상 최악의 비극으로 일컬어지는 1993년 나이프 테러가 아니었다면 그라프가 호주, 프랑스, US 오픈에서 거둔 우승 중 몇 개는 셀레스가 차지했을 거라는 게 정설이다.[3]

1988년은 한해동안 4대 메이저대회 & 올림픽 금메달까지 싹쓸이 하며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넘어 '캘린더 골든 슬램'을 달성했다. 코트에 상관 없이 모든 대회에서 골고루 강했기 때문에 무려 쿼드러플 그랜드 슬래머이다. 1988년은 4개 모두 독식, 1989, 1995, 1996 3번이나 그랜드슬램 대회 3회 우승을 차지했다. 첫 우승을 차지한 1987년부터 1996년까지 10년 동안 열린 그랜드슬램 대회의 절반 이상은 그라프의 차지였던 것.

그 외 기록
WTA 챔피언십 우승
5회(1987, 1989, 1993, 1995, 1996)
올림픽 우승
1회(1988)[4][5]
세계 랭킹 1위
377주[6]
통산 상금
US$ 21,895,277[7]
통산 단식 전적
900승 115패(승률 88.7%)
통산 단식 타이틀
107회[8]
복식 통산 전적
173승 72패
통산 복식 타이틀
11회


2.1. 역대 메이저 대회 단식 성적[편집]


연도
호주
프랑스
윔블던
US
1983년
1라운드
2라운드
예선
예선
1984년
3라운드
3라운드
4라운드
1라운드
1985년
불참
4라운드
4라운드
4강
1986년
미개최
8강
불참
4강
1987년
불참
우승
준우승
준우승
1988년
우승
우승
우승
우승
1989년
우승
준우승
우승
우승
1990년
우승
준우승
4강
준우승
1991년
8강
4강
우승
4강
1992년
불참
준우승
우승
8강
1993년
준우승
우승
우승
우승
1994년
우승
4강
1라운드
준우승
1995년
불참
우승
우승
우승
1996년
불참
우승
우승
우승
1997년
4라운드
8강
불참
불참
1998년
불참
불참
3라운드
4라운드
1999년
8강
우승
준우승
불참


3. 생애[편집]


그라프는 어린 시절 자동차 보험 판매원이며 테니스 코치였던 그녀의 아버지인 페터 그라프로부터 처음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조기교육으로 인해 겨우 세 살 때부터 나무 라켓으로 스윙하는 법을 거실에서 배우고 네 살 때부터 코트에 나가 연습을 하기 시작한 그라프는 다섯 살 때에 첫 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실력이 부쩍 늘었다.[9] 오래지 않아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던 그녀는 82년에 유럽 챔피언십 12세부와 18세부에서 우승한 뒤, 만 13세가 된 1982년 10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생애 첫 프로 대회에 출전했지만 US오픈 2회 우승자이자 전 세계 랭킹 1위인 트레이시 오스틴에게 0-2로 패했다.

그라프의 세계 랭킹은 1983년 124위에서 98위, 1984년 22위, 1985년에는 6위까지 상승했고 1984년 8월에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테니스 시범 종목에 서독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아버지인 페터 그라프는 그녀에게 오는 대회 외의 행사나 모임 요청을 거절하고 오로지 그녀가 테니스 훈련에만 매진하도록 하는 혹독한 스케줄 관리를 했다. 아버지와 코치의 사생활 통제 덕에 그녀는 선수 생활 초기에 투어에서 거의 친구를 사귀지 못했으며, 당연히 어린 그라프에게 개인생활은 없었다. 투어에 처음 나선 그녀의 대회 출전 회수를 연 10회 정도로 제한해 그녀의 체력이 과도하게 소진되지 않도록 한 것 정도가 그라프의 장래에 그나마 긍정적인 일일 정도.

3년간 WTA 대회 우승은 없었지만 꾸준히 성장하며 랭킹 10위 안에 들게 된 그라프는 1985년 당시 여자 테니스계를 양분하고 있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크리스 에버트에게 도전하게 되지만, 나브라틸로바에게 3번. 에버트에게 6번이나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고 패배하는 등 처음에는 고전했다. 그러나 이후 1986년 4월 패밀리 서클 컵 결승에서 처음으로 크리스 에버트를 꺾고 생애 첫 WTA 대회 우승컵을 안았으며 또한 독일 오픈 결승에서는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를 6–2, 6–3으로 꺾으며 우승했다. 이 이후를 기점으로 크리스 에버트에게는 3년간 7연승을 거두는 등 우위를 챙기고, 나브라틸로바와의 경기에서도 이겨 가며 테니스 여제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공고히 한다.

슈테피 그라프의 최전성기는 1988-1989년이다. 1988년 72승3패 승률 96% 12회결승진출 11회우승 그랜드슬램 싹쓸이 및 올림픽 금메달, 1989년 86승2패 승률 98% 16회결승진출 14회우승 그랜드슬램 3개우승. 특히 슈테피 그라프는 1988년에 테니스의 4대 그랜드 슬램 대회(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윔블던, US 오픈)를 모두 우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울 올림픽에서 첫 정식 종목이 된 올림픽 테니스 여자 단식 금메달까지 획득하여 테니스 역사상 전무후무한 캘린더 골든 슬램을 달성했다. 1989년에도 그녀의 전성기는 계속되어 프랑스 오픈을 제외한 호주 오픈, 윔블던, US오픈을 모두 우승하기에 이른다.

프로로 활동하는 기간 동안 총 377주 동안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여 남녀 선수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세계 1위를 지킨 그라프는, 은퇴하던 해인 1999년에도 6번째 프랑스 오픈 우승을 거머쥐며 은퇴하는 순간까지 세계 랭킹 3위를 기록하는 등 전성기 이후 항상 정상권을 놓지 않았으며, 은퇴 이후엔 2001년에 앤드리 애거시와 결혼하여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4. 기타[편집]


  • 그라프가 출전한 생애 첫 프로 대회에서 0-2의 패배를 안겨준 트레이시 오스틴은 당시 13세인 그라프에 대해 '미국에는 그녀와 같은 여자 선수가 수백 명은 있다'라는 식으로 평가절하했다. 세월이 흘러 12년후 인디언 웰즈 마스터스에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그라프는 오스틴을 2-0(6–0, 6–0)으로 꺾었다.

  • 1996년도 윔블던 4강 경기 도중, 어느 관중이 그녀에게 큰 목소리로 "Steffi, will you marry me?" ("슈테피, 나랑 결혼해 줄래?") 하며 청혼을 했다. 이에 슈테피 그라프는 쿨하게 "How much money do you have?" ("너 돈 많아?")라고 받아치며 현장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해 일곱 번째 윔블던 우승을 거머쥔다.#

  • 애거시의 자서전에 따르면 애거시와 그라프는 연애를 시작하면서 정말 쉽게 가까워졌는데, 그 이유는 두 사람 모두 극성 아버지의 아동학대식 조기교육에 의해 테니스를 시작했고[10] 그로 인한 내면의 상처가 있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아버지들은 만난 직후부터 열을 내면서 서로 "내 자식이 더 테니스 선수로서 뛰어나다" 라고 불같은 논쟁을 벌이다가 주먹다짐까지 벌였는데 주먹다짐을 벌인 후엔 웃기게도 서로 상대를 인정하는 바람에 애거시와 그라프의 결혼 이야기는 그냥 무사통과되었다는 후문이다.


[1] 참고로 통산 골든 슬래머로는 앤드리 애거시, 라파엘 나달, 세레나 윌리엄스가 있다. 역대 최고 선수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로저 페더러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은메달 획득한 게 최고 성적인 상태에서 은퇴해 통산 골든슬램 달성을 못했을 만큼 매우 어려운 기록이다.[2] 남녀 선수를 통틀어 마거릿 코트(24회)와 세레나 윌리엄스(23회)에 이은 세 번째로 많은 그랜드 슬램 우승 수.[3] 하필 모니카 셀레스에게 테러를 저지른 정신병자는 '셀레스가 없어져야 그라프가 다시금 성공할 수 있다.'란 생각으로 테러를 저질렀음을 밝혔고, 그라프가 일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이런 평을 듣게 되면서 테러범의 의도대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슬픈 결과만 남게 됐다.[4] 테니스가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서울 올림픽에서 여자 단식 금메달을 획득했다.[5] 참고로 올림픽 메달은 1988년 단식 금메달 외에는 1988년 복식 동메달과 1992년 단식 은메달이 있다.[6] 남녀 통틀어 역대 2위 기록[7] 역대 4위 기록[8] 역대 3위 기록이다. 1위는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167회), 2위는 크리스 에버트(154회)[9] 말이 조기교육이지 사실 이런 가르침은 거의 아동학대 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경험 때문에 나중에 비슷한 경험을 한 배우자인 앤드리 애거시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10] 이 때문인지 애거시와 그라프의 자택에는 테니스장이 아예 없다고 한다. 애거시와 그라프는 자식들에게는 절대로 테니스를 시킬 생각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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