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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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薛懷義, ?~695
무주 시기의 승려이자 무측천남총. 본래 이름은 풍소보(馮小寶).

2. 생애[편집]


생년 미상으로, 그의 이름은 풍소보였으며, 본래는 낙양에서 가짜약을 팔았다. 고종 이치 사후, 태평공주의 추천을 받았다.[1] 그 뒤 출가하여 이름을 설회의로 개명한다.

그 이후 조정에서 날뛰게 되었는데, 무측천의 일족인 무승사, 무삼사도 그에게는 종복처럼 예의를 다했고, 그의 마차를 끌어주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는 시정의 무뢰배들을 끌어모아서, 이들 무뢰배들의 머리를 깍아 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온갖 나쁜 짓을 하도록 방치했는데도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우대어사 풍사훈이 이를 지적하고, 국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고, 그는 이에 앙심을 품고 길에서 풍사훈을 만나자, 바로 구타하게 하여 풍사훈이 맞아죽을 뻔했을 정도였다.

이후 천당을 지었는데, 백성들의 고통이 심각하였고 국고 낭비가 심했다고 한다.

그 뒤 좌위위대장군에 이어 양국공의 작위를 하사받고, 689년 무측천으로부터 돌궐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으나 돌궐군은 아예 만나지도 못했다. 그러나 자신이 돌궐군을 몰아냈다는 허풍을 늘어놓고, 제2품 보국대장군으로 승진했다. 이후 694년에도 돌궐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소덕, 소미도, 왕효걸, 사타충의, 조인사 등 18명의 장수들[2]을 이끌고 출전하나, 출발 이전에 돌궐군이 물러났다. 여기서도 설회의는 돌궐군이 자기만 보면 도망친다는 허풍을 떨었다.

그러나 천당과 명당에 불을 지른 뒤 무측천의 신임을 잃고 결국 주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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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평공주가 설회의의 약을 복용한 뒤 효과가 있자, 그를 무측천에게 추천했다고 한다.[2] 여기서 왕효걸과 사타충의, 조인사는 이진충의 난 때 활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