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 제1선거구(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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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편집]
울산광역시의회의 선거구로 울산광역시 북구의 농소1동과 송정동 일대를 관할한다. 북울산역과 울산공항이 이 지역구에 위치해 있다.
원래 미개발지로 보수 성향이 아주 강했던[2] 강동동도 이 지역구에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지 공단 지역임에도 대부분 보수정당이 승리하였다. 다만 민주노동당이 공단 지역에서의 위세가 아주 강했던 5회 지선 때와 역대급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이 난 7회 지선 때는 보수정당이 패배하기도 했다. 강동구가 빠져나간 현재는 북구치고 보수세가 있는 농소1동과 송정동이 치고받는 경합지가 되었다.
여담으로 민선 6,8기 박천동 북구청장의 시의원 시절 지역구가 이 곳이였다.
2. 역대 선거 결과[3][편집]
2.1.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편집]
2.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편집]
2.3.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편집]
2.4.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편집]
2.5.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편집]
2.6.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편집]
2.7.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편집]
강동동의 도시 개발로 인해 이 선거구의 인구가 9만명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늘어나자 강동동을 북구 제3선거구로 넘기면서 인구 균형을 맞췄다. 비록 도시 개발이 진행 중이지만 강동동은 얼마 전 대선 기준으로 유일하게 윤석열 후보가 50%를 넘는 북구 최고의 보수세를 자랑하는 곳이므로 비교적 보수정당에게 불리해졌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현역 시의원인 박병석 의장이 북구청장에 도전하는 관계로 새 후보를 찾아야 한다.[10] 구의원을 역임 중인 이주언 전 구의회 의장이 단수공천을 받았다.
국민의힘에서는 2년 전 보궐선거를 통해 구의원에 복직하기도 한[11] 정치락 전 시의원이 다시 단수공천을 받으며 재선에 도전한다.
진보진영에서는 지난 선거에도 출마했고 이 곳에서 재선 구의원을 역임했던 진보당 소속 안승찬 전 구의회 의장이 단일 후보로 출마한다.[12]
개표 결과 국민의힘 정치락 후보가 과반에 살짝 미달하는 득표율로 시의회에 복귀하게 되었다. 2년 전 보궐선거와 마찬가지로 민주당+진보당 후보 합산 득표율이 정치락 후보가 높았으나, 표가 갈리며 당선되는 행운을 맞이했다.[13] 그 선거와 비교해보면 정치락 후보의 득표율이 8% 정도 증가한 반면,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은 5%, 안승찬 후보의 득표율은 3% 정도 감소하였다. 세부적으로 보면 송정동에서 정치락 후보 46.1%, 이주언 후보 36.95%, 안승찬 후보 16.9%로 비교적 접전이였으며, 농소1동에서 정치락 후보 53.85%, 이주언 후보 35.1%, 안승찬 후보 11.1%로 정치락 후보가 단독 과반 득표율을 얻으며 거의 과반에 근접하게 만들었다. 관외사전투표에서도 정치락 후보에게 50.2%로 과반을 줬으며 이주언 후보 39.6%, 안승찬 10.2%로 비교적 야권 표심이 이주언 후보에게 결집된 결과가 나왔다.
[1] 울산광역시가 출범한 것은 1997년 7월 15일로, 1대 시의회의 경우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관계로 경상남도의원 중 울산 지역구 의원들과 경상남도 울산시의원들이 그대로 계승하여 울산광역시의원을 역임했으므로 기술하지 않음.[2] 현재는 개발이 어느정도 되어 보수세가 막강한 편은 아니다.[3] 울산광역시가 출범한 것은 1997년 7월 15일로, 1대 시의회의 경우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관계로 경상남도의원 중 울산 지역구 의원들과 경상남도 울산시의원들이 그대로 계승하여 울산광역시의원을 역임했으므로 기술하지 않음.[4] 북구 제1선거구 (농소1동, 농소2동, 농소3동)[5] 16대 총선 출마를 위해 사직.[6] 북구 제2선거구 (강동동, 진장동, 효문동, 송정동, 양정동, 염포동)[7] 농소1동, 강동동, 송정동[8] 5회 지선 북구청장 선거 출마를 위해 사직.[9] 농소1동, 강동동, 송정동[10] 막상 이동권 구청장이 단수공천받아 컷오프 됐다. 그 이동권 후보도 본선에서 박천동 전 구청장에게 패했다.[11] 미래통합당에서 하도 후보 물색이 되지 않자 시의원 체급인 정치락 후보를 후보등록일 전날에 부랴부랴 소방수로 투입시켰으며,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민중당 후보가 표를 갈라먹으며 단 7표차로 승리하였다.[12] 여담으로 그 2년 전 정치락 후보가 당선되게 해준 민중당 후보였다.[13] 다만 단 7표차로 진땀승한 그때와 달리 지금은 두자릿수차인데다 거의 50%에 가까운 득표율이라 양자구도로 치러졌다해도 안승찬 후보를 찍은 표심이 이탈표 없이 전부 이주언 후보에게 고스란히 간다는 보장이 없어 무작정 어부지리로 보기에는 애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