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봉파르마의 펠릭스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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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룩셈부르크 샤를로트의 부군. 파르마 공국 로베르토 1세의 6남이며,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후 치타의 남동생이다.
2. 생애[편집]
1893년 10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슈바르차우 암 슈타인펠트에서 부르봉파르마의 공작 로베르토 1세와 그의 두번째 아내 포르투갈의 마리아 안토니아[1] 의 6남 6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2]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에서 대위로 복무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자 1918년 11월 전역했다.
1919년 11월 6일 룩셈부르크에서 이종사촌인 샤를로트[3] 와 결혼해서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다. 이 자녀들 중 장남이 아내 샤를로트의 뒤를 이어 룩셈부르크 대공위를 이어받은 장이다.
펠릭스는 1923년부터 1932년까지, 1947년부터 1969년까지 룩셈부르크 적십자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1920년부터 룩셈부르크 자원 봉사단의 대령, 1945년부터 1967년까지 룩셈부르크 육군 감찰관을 역임했다.
1940년 나치 독일이 침공하자 룩셈부르크 대공가와 정부는 프랑스, 포르투갈, 미국을 거쳐 캐나다로 망명하였다. 이후 나치 독일이 패망한 1945년 귀국하였다.
1970년 4월 8일 피쉬바흐 성에서 사망했다. 장례식은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렸다.
3. 기타[편집]
- 이름인 펠릭스는 행운이라는 뜻인데 말 그대로 이름에 걸맞는 인생을 살았다. 여자 계승자 밖에 없는 룩셈부르크 대공가의 공녀와 결혼해서 아내가 룩셈부르크의 여대공이 되면서 룩셈부르크의 국서가 되었고, 펠릭스의 장남이 룩셈부르크 대공이 되었다. 거기다가 아들과 손자들이 아들부자여서 이제는 부르봉파르마 가문의 전체 계승권자 32명 중 20명이 펠릭스의 후손일 정도로 크게 번성했다.[4] 현재 룩셈부르크 대공가는 몇조원의 재산을 가진 부자이다.
4. 가족관계[편집]
4.1. 자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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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겔 1세의 막내딸.[2] 어머니 마리아 안토니아에겐 3남이지만 아버지 로베르토 1세에겐 6남이었다.[3] 막내 이모인 룩셈부르크 대공비 마리아 아나의 차녀.[4] 다만 룩셈부르크 대공가는 부르봉파름(Bourbon-Parme) 가문이라 칭하지 않고 부인 샤를로트 여대공의 나사부바일부르크 가문을 칭하고 있다. 아들 장이 자녀들의 결혼 문제로 보르보네파르마 본가와 대판 싸워 절연까지 했다가 겨우 화해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5] 룩셈부르크의 대공 앙리 등.[6] 호엔베르크 공작 막시밀리안의 장남, 1927~1977. 결혼 후 딸 둘만 태어나서 그의 사후 호엔베르크 공작위는 동생인 게오르크(1929 ~ 2019)에게 갔다.[7] 남편 사후 무시 공작 필리프 드 노아유와 재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