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규(독립운동가)

덤프버전 : r20210301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박준규
朴俊圭, 朴駿圭

파일:박준규.jpg
본관
순천 박씨[1]
출생
1863년 3월 6일
충청도 청주목 북강외이면 성재리
(현재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성재리)[2]
사망
1919년 4월 1일
충청북도 청원군 갈전면 아우내 장터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박준규는 1863년 3월 6일 충청도 청주목 북강외이면(현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성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일 김교선, 조인원, 이순구, 유관순 등이 갈전면(葛田面) 아우내(竝川) 장날을 기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 조인원이 태극기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워놓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3천여명의 운집한 아우내 장터는 대한독립만세 소리로 진동하였다. 이후 여세를 몰아 시위군중이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일본 헌병주재소로 접근했다.

이에 시위대의 기세에 놀란 일본 헌병이 기총을 난사하고, 또 천안에서 불러들인 헌병과 수비대까지 가세되어 무자비하게 총검을 휘둘렀다. 이로 인해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 등 19명이 현장에서 피살되었고 30여명이 부상하였다. 이때 박준규도 일본 군경이 쏜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박준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23세 규(圭) 항렬.[2] 인근의 각리와 함께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