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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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민항(朴敏杭)
생몰
? ~ 1933년 10월
출생지
황해도 안악군
사망지
여순형무소
위패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박민항은 황해도 안악군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출생년도는 알 수 없다. 그는 1928년 베이징에서 손기업·이상일(李相逸) 등과 함께 중국 각처에 흩어져 활동하던 혁명 동지들을 규합해 조선혁명당 총연맹(朝鮮革命黨總聯盟)을 조직하여 일제 밀정과 고관 암살을 꾀했다. 1931년 9월 만주 사변이 발발하면서 중국인들의 반일감정이 강렬해지자, 총연맹 간부들은 비밀 회의를 열어 이 틈을 타 중국과 일본간의 전쟁을 유발시키고 더 나아가 세계 대전이 일어나게 한다면 일제가 패망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그들은 천진에서 일본의 조계를 점령해 세계대전을 유도하기로 하고 우선 만주 전권대사인 무토 노부요시(武藤信義)를 암살하기로 했다.

박민항은 이창용(李昌用)·손사봉(孫四奉)과 함께 폭탄 4개와 권총 3정을 가지고 만주로 가서 노부요시의 뒤를 따라 장춘, 봉천 등지를 전전하며 그를 암살할 기회를 엿봤다. 그러나 장춘 중앙여관에서 일제 경찰에게 탐지되는 바람에 체포되고 말았다. 이후 그와 이창용, 손사봉은 1933년 5월 27일 장춘의 일군법회의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박민항은 심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1933년 10월경 여순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박민항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또한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