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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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박경석
朴敬石 | Park Kyung-suk


파일:8716496925555846.jpg

출생
1960년 (63~64세)
경상북도 대구시
(現 대구광역시)
학력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 / 학사)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 / 석사)
현직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대표
한신대학교 겸임교수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배우자
배복주
병역
대한민국 해병대 제2사단 수색대대 병장[1] 만기전역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범죄 경력
28회

1. 개요
2. 생애
2.1. 장애인 인권 활동
2.2. 정치 활동
2.3. 비판 및 논란
3. 기타
4. 이념적 견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장애인 인권운동가. 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상임대표이며 사단법인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통칭 전권협)의 대표이기도 하다.[2]

잦은 불법시위로 인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일반교통방해, 공동건조물침입, 공동재물손괴), 업무방해 등 28차례 형사처벌을 받은 수많은 범죄이력이 있어 논란이 되고 있으며, # 특히 2021년부터는 장애인 탈시설을 주로 외치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동열차 운행방해 사태를 주도하며 이동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열차 운행을 방해하고 애꿎은 시민들에게 피해를 지속적으로 끼치고 있다며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배우자는 정의당 부대표인 배복주.


2. 생애[편집]


1960년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으며, 1979년 영남대학교에 입학하였다. 해병수색대에서 군복무하였고, 군 전역 후 1983년 8월 7일, 경주시 토함산에서 취미로[3] 행글라이더를 타다 추락 사고를 당했고, 이로 인해 척수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4] # 장애를 얻게 된 이후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1991년 숭실대학교 대학원 사회사업학과에 입학하였다.


2.1. 장애인 인권 활동[편집]


이후 1993년 노들장애인야간학교를 설립하였다.

  •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리프트가 추락하는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본격적으로 장애인 이동권 관련 투쟁을 벌이게 되었다.
  • 2002년 발산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를 계기로 단식 투쟁을 했다.(#)
  • 2010년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등을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 청사를 몇달간 점거농성한 적이 있다. 이로 인해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 이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2.2. 정치 활동[편집]


  • 2004년 3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내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애인 관련 언론 매체인 '에이블뉴스'에 관련 칼럼이 있고(#), 그도 스스로 사양했다는 글을 썼다. #
  • 2004년 4월, 공식적으로 민주노동당을 지지선언했다. #
  • 2008년, 민주노동당심상정 비대위에서 비대위원을 맡았다. #
  • 이외에도 사드 반대 운동이나 각종 반미·종북 운동 등의 극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2.3. 비판 및 논란[편집]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비판 및 논란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동열차 운행방해 사태
  • 이 일로 인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2022년 10월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양환승 부장판사는 박 대표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사건번호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고단5783) 이후 다수의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의 출석 요구가 있었으나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먼저 설치되어야 출석할 것이라며 거부해오다가 3월 17일, 결국 경찰에게 체포되었다가 3월 18일 바로 풀려났다.
  • 2023년 7월 14일, 도로교통법위반과 업무방해 혐의로 현행범체포되었다. # 지하철 역사 내 시위가 아닌 도로 점거 시위였다. #
  • 2023년 11월 23일부터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들을 역구내에서 시위를 차단하기위해 원천봉쇄한다고 밝혔는데 11월 24일 혜화역에서 반대 기자회견을 하다가 퇴거불응죄로 또 체포되었는데 바닥에 누워 땡깡부리다가 녹색병원에 이송되었다.

3. 기타[편집]


  • 장애인이 된 후에 입학한 숭실대학교 대학원 재학 시절에 당시에는 강의실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동기 남자 학우 여러명이 4년 내내 휠체어를 들어서 계단으로 옮겨주며 수업을 들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노무현 대통령 집권 당시 청와대에 열린 만찬에 초청되어 노무현에게 장애인 인권문제에 대해 지적하다가 경호원들에 의해 강제 퇴장당한 적이 있다. KBS SBS
  • 2023년 기준 전과 28범이다.[5] 단순히 전과의 갯수를 들어 자신을 마틴 루터 킹에 비교하며 찬양하는 발언을 해 빈축을 샀고, 여당 의원들에게서 킹 목사도 장애인 관련 비리를 저질렀냐는 비난을 받았다.#
  • 어린 시절의 꿈이 마도로스(외양선원)이었다고 한다.
  • 고등학생 시절에 해군사관학교영남대학교에 지원했는데, 해군사관학교 필기시험에 합격했다고 한다. 해군사관학교 면접을 보러갔다가 진해 벚꽃 구경을 하면서 술을 마시고 놀다 면접시험을 놓치는 바람에 영남대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6] 그러나 제2해군사관학교는 1972년에 폐교되어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
  • 대학교에 입학했을때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 투쟁으로 문무대 입소를 거부하는 투쟁이 있었는데, 문무대에는 머리를 깎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박경석 자신은 장발을 지키기 위해 머리를 깎지 않고 문무대에 입소했다. 장발 상태에서 입소를 했기 때문에 교관에게 불려가 왜 머리를 안 깎았냐는 말을 들었고 이에 그럴듯한 변명으로 동네 이발소가 놀고 있다고 하다 군홧발로 정강이를 걷어차이는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그것으로 문무대 훈련을 거부했는데 그게 병역거부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당시에는 병역을 거부, 기피하면 곧바로 징집되었기 때문에 징집될 바에 지원해서 가는 게 나아서 1980년에 해병대를 지원해 입대했다고 한다.
  • 해병대 복무기간 때에는 이런저런 일화도 있었다고 한다. #
    • 해병훈련단의 훈병 시절 때 연애편지를 몰래 보내다 걸린 적이 있는데, 식당 밥풀로 붙이던 중에 교관이 후배 기수에게 크게 읽으라고 했다고 한다.
    • 해병대에서 복무했을때 구타로 턱뼈가 두번이나 부러졌다고 한다. 첫번째는 훈병때 교관에게 개기다가 턱뼈가 부러진 것이고, 두번째는 해병수색대에서 고참에게 보트페달로 구타를 당해서 턱뼈가 부러진 것이다.
    • 훈병때 교관에게 구타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자신보다 두 기수가 낮은 후임과 함께 김포 제2해병사단에 배치되었다. 해병대 일반보병 군생활이 지루하기만 해서 좀 더 빡센 경험을 하고 싶었고, 일반병보다 훈련비를 더 받을 수 있어서 해병수색대에 지원하여 해병수색대에서 복무했다고 한다.
    • 영창을 두번이나 갔다왔다고 한다. 힌 번은 바닷가에서 술을 마시다 걸려서 영창에 갔으며, 일병 시절에는 병장이 해병대 부사관을 구타하라고 시켜서 부사관을 구타하는 하극상을 저지르게 되어서 영창에 10일이나 있었다고 한다.
  • 식당에서 깽판을 쳐서 영업을 방해한 동물권리주장 단체 DxE와도 교류를 하는 편이다. #

4. 이념적 견해[편집]


  • 장애인 운동가 중에서도 가장 왼쪽에 있다고 세간의 평가를 받고, 본인도 이를 인정했다.[A]
  • 단순히 장애인 인권 운동을 '이동권'과 같은 기본권적 권리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 효율 중심적 신자유주의 사고방식을 비판하며,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자는 입장이다.[A]
  • 장애인의 권리를 국회의원이나 정부 권력자에게 '위임'하는 방식은 현재 민주주의 체제가 선호하는 방식일 뿐이고, 자신의 방식은 현장에서 직접 투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A] 대의민주주의에도 비판적인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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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95~418기로 추정[2] 전장연은 법인격이 아닌 임의단체이지만, 전권협은 정식 사단법인이라는 차이가 있으며, 전장연의 산하에 전권협이 있다. 전장연 산하의 단체들은 상징적 의미에서 전장연에 월 1만원씩의 회비를, 전장연 산하 기관의 회원들은 대부분 전권협 쪽으로 월 3만원의 회비를 납부하고 있다.#[3] "골방에 있었구나. 나도 25세에 엄마 말 안 듣고 행글라이딩 타다가 떨어져서 똑딱 장애인 되고 5년 동안 집에 있었어요." # "만날 놀러 가서 여자애들하고 노니까 재밌더라고요. 학과 공부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시간이 많으니까 취미로 학교 안에 있던 행글라이딩 동아리에 들었어요. 해병대에서 낙하산을 탔던 적이 있는데 아주 재밌더라고요. 행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을 날고 싶은 욕구가 강했어요." 출처(인터뷰) [4] 같이 간 형이 행글라이더가 고장난 것을 확인했지만 괜찮다며 억지로 타다 추락하여 장애를 얻게 되었다.[5] 출처: # [6] 그런데 당시 사관학교는 1월에 벌써 합격자 발표가 끝났다. 대신 지금은 없어진 해군제2사관학교의 경우 4월에 시험을 치렀다.# 따라서 진해 벚꽃놀이 무렵에 면접 시험이 있었다면 해군사관학교가 아니라 해군제2사관학교일 것이다.[A] A B C 출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