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캉드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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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IMF 총재
미셸 캉드쉬
Michel Camdessus


파일:Michel_Camdessus.jpg

출생
1933년 5월 1일 (90세)
프랑스 바욘
재임기간
제7대 국제통화기금 총재
1987년 1월 16일 ~ 2000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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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브리지트 다시
자녀
장녀 크리스틴 캉드쉬
학력
국립행정학교 행정학 석사
파리정치대학
파리 대학교 경제학


1. 개요
2. 상세
3. 비판
4. 대중매체에서



1. 개요[편집]


프랑스의 정치인, 제7대 국제통화기금 총재. 한국에선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의 총재로 유명하다.


2. 상세[편집]


파리 대학교에서 경제학 전공, 프랑스 국립행정학교 행정학 석사, 1960년대에 프랑스 재무부 국장과 유럽경제공동체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1982년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가 되었다. 이후로 1987년 국제통화기금 총재에 취임한 후 1992년, 1997년에 연임하고 2000년에 사임하였다. IMF 최장기 재임 총재이기도 했다.

외환위기 당시 IMF 총재로써 IMF 협상에 나서 고금리, 긴축 정책을 한국 등지에 적용하였다. IMF의 초강력 처방에 대해 많은 비판과 경고가 제기되었으나 IMF한테는 우이독경이었고 캉드쉬의 태도는 마이동풍이었다. 작은 나라들도 IMF 구제금융을 많이 받았지만, 브라질, 러시아, 폴란드,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우크라이나, 아르헨티나 같이 인구로나 영향력으로나 꽤 큰 나라도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욕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는 위치이기도 했다.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DN19970167-00_01082905.jpg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극비 방한하였으며 임창렬 당시 부총리와 구제금융 합의서에 서명했다.

3. 비판[편집]


태국, 대한민국 등 아시아 금융위기 때 구제금융의 대가로 혹독한 경제 긴축과 구조조정을 요구하여 학계와 미국 의회의 비난을 받았다. 그간 구제금융의 혹독한 대가에 전절머리가 난 동유럽 국가에서 구공산당이 재집권하고 일부 국가는 반미성향을 드러내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제금융 이후로 아르헨티나의 경제상황은 외채가 불어나고 평균임금은 지속적으로 삭감되면서 2001년에 디폴트까지 가는 등 오히려 악화되었고, 말레이시아는 IMF의 조치를 거부하고 스스로 경제위기를 극복해냈다는 점에서 욕을 많이 먹었다. 말레이시아는 imf처방을 거부하고 내수시장을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단 이는 말레이시아가 한국과 달리 내수시장의 비중이 높기에 가능했다.

한국에선 가혹한 조치로 인해 깡그리 드슈, '식민지총독', '사채꾼' , '한국판 GHQ 최고사령관'[1], '저승사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본인도 욕을 많이 먹으면서 깨달은 점이 있는지, 훗날 10년가량 지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설 때 즈음 "당시 무리한 경제처방을 강요한 측면이 있었다."라며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실제로 한국은 기업의 부실경영과 관리자인 정부의 책임이 컸고 구조조정과 경제개혁은 반드시 필요했으나 시간적 여유를 두고 처방할 수 있는 감기에 단기간에 항암치료급의 처방을 받도록 한 꼴이라서 더욱 비판을 받았다. 특히 태국에서는 "잘못한 사람한테는 계도를 해야지? 왜 죽도록 매를 때리는가?"라고 비판을 했을 정도로 반감이 심했다.

IMF의 가혹한 조치들이 한국에 미친 여파들이 워낙 컸기에 이후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를 만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작심하고 본인 앞에서 "미셀 캉드쉬"의 이름을 직접 발언하며 IMF가 과거 한국에 대해 잘못된 정책을 강요해 큰 고통을 안겨준 사실을 상기시키고 치열한 반성 없이는 회원국의 신뢰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4. 대중매체에서[편집]


  • 왈순아지매에선 깡그리 드슈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 손노리에서 만든 게임 강철제국에서 최종보스 이름이 캉드쉬...인데 누가 모델인지 알만하다.

  •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선 그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를 뱅상 카셀이 연기했다. 민감한 사안이라서인지 이름 없이 IMF 총재로만 언급된다.

  • 한국의 IMF 외환위기 당시 KBS 뉴스의 앵커가 '캉드쉬 총재가 한국을 방문해서는 볼 것 다 보고, 할 말 다 하고 돌아갔다'고 멘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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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대 농담이 아니라, 1998년~2000년 약 3년 간 대한민국 경제 분야는 물론, 정부의 재정기획까지 간섭이 심했던터라, 당시 경제관련 언론매체에서 빠짐없이 2차대전 패전후 일본을 점령한 GHQ더글러스 맥아더의 한국판 재림이라고 풍자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