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감비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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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2.1.1. 2000년대
2.1.2. 2010년대
2.1.3. 2020년대
3. 상호 교류
4. 교통 교류
5. 대사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감비아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2. 역사적 관계[편집]


1943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감비아를 방문했는데 이는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방문한 것이다.

2.1. 21세기[편집]



2.1.1. 2000년대[편집]


2003년 1월 10일, 감비아 경찰이 잭슨 맥도널드 감비아 주재 미국 대사를 살해하려했던 감비아인 2명을 체포했다고 린 캐슬 미 국무부 대변인이 밝혔다. #

2005년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자 중에서 감비아에서 체포된 기업인들도 있었다. #

2007년 10월 8일, 감비아는 구금된 국제 엠네스티 관계자 3명을 석방했으며, 미국과 영국 이중 국적자 타니아 버네이스, 나이지리아인 아욜델레 아민, 현지 기자 야야 담파 기자였다. #


2.1.2. 2010년대[편집]


2011년 4월 13일, 테리 존스 미국 목사가 쿠란을 소각하자 감비아 정부는 미국 정부에게 목사를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

2014년 12월 30일, 감비아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으며, 두 명의 미국 시민들이 기소되었다. 또한 감비아 대통령인 야히아 자메는 미국과 영국, 독일이 대통령궁 테러에 관여했다고 주장했으나 미국은 이를 부인했고 반줄의 미국 대사는 쿠데타로 보았다. #, #

2016년 12월 10일, 22년간 독재를 했던 감비아 대통령 야히아 자메가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다시 선거를 하려고 하자 미국과 아프리카 연합 여러 국가들이 비판을 했으며, 주 감비아 미국 대사관 측도 결과와 법치주의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17년 1월 18일, 미국은 감비아 정치 위기에 대해 우려를 발표했다. #

2017년 1월 19일, 러시아, 영국, 미국 대표들도 감비아의 불안정을 막기 위해 평화적 수단을 써야 한다고 동의했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안보리 이사국들은 감비아 군부들이 평화를 유지하고 군사행동, 유혈사태를 막아줄 것을 당부했다. #

2.1.3. 2020년대[편집]


2020년 6월 2일,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 때 유엔 감비아 대사 아들인 모모두 라민 시세이가 경찰에 의해 총을 맞고 사망하자 감비아 정부는 미국 정부에게 사망사건을 조사하라며 요구했다. #


3. 상호 교류[편집]


두 나라들은 영어가 공용어이다 보니 교류가 꽤 있는 편이다.

미국에 정착한 서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를 배경으로 만든 소설 뿌리(소설)의 배경이 지금의 감비아라고 한다. #


4. 교통 교류[편집]


현재까지 두 나라들을 잇는 항공 노선이 없다 보니 세네갈의 블레즈-디아뉴 국제공항 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바르셀로나 엘 프라트 국제공항을 통해 경유한다.


5. 대사관[편집]


반줄에 미국 대사관이, 워싱턴 D.C.에 감비아 대사관이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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