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친위대/부대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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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나치당의 사병인 무장친위대의 부대 목록이다. 대전 말로 갈 수록 편성이 확대되어, 1944년 후반에는 거의 2개 야전군 규모로 거대해진다.
아래 부대들 중 부대 명칭에 SS가 특별히 붙지 않는 부대들은 비게르만계 자원으로 구성하여, 엄밀히 말해 정통 무장친위대가 아닌 사단이다. 단 외국에서 병력을 모집한 부대도 순수한 외국인들이 아니라 해외 거주 독일인(폴크스도이체(Volksdeutsche)라고 부른다.)으로 구성된 경우 SS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 종전 시점에서는 무장친위대 사단의 60%가 외국인이었다. 이쪽 관련으로는 독일군/외인부대 항목 참조.
그리고 여기서 사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더라도 실제로는 사단급 부대가 아닌 경우가 압도적이다. 보통은 초기의 3개 사단[1] 과 경찰 장갑척탄병 사단까지가 끝까지 사단급 부대였고, 최대한 범위를 넓혀도 제12 SS기갑사단 히틀러 유겐트까지가 진짜로 사단급 병력을 가지며 그 이후의 부대는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연대나 그 이하의 병력만 실제 병력으로 유지했다.
2. 인종말살부대와 '정예부대'의 구별?[편집]
같은 무장친위대라고 해도 오로지 전투에만 임했던 일선의 전투병들과 주로 후방에서 활동한 인종말살부대를 구별해야 된다는 의견이 일부 있다. 무장친위대 중사였던 헤르베르트 브루네거는 이들 전투병들과 인종말살부대는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투부대와 인종말살부대를 구분하자는 의견은 대세라기보다는 일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정도에 가깝다. 이는 무장친위대 신화에 기반한 역사 세탁이다. 무장친위대 정예부대와 일반 부대 간의 '구별'이란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소위 '정예'부대와 그렇지 않은 부대의 구분이란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무장친위대원들의 심리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기준이 엄격하던 시절 먼저 설립되어 격전에 참여했던 초창기 부대의 친위대원들이 이후 설립된 부대들을 제대로 된 녀석들이 아니라고 비하하는 것으로, 어느 군대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타 부대 무시 현상일 뿐이다. 가령 현 대한민국 국군에서 '메이커 사단'으로 분류되는 사단들과 그 이후 형성된 사단들 간의 차이는 실질적으로는 없는 것과 같다.
실제로는 어느 정도의 경향성이 있을 뿐, 소위 "정예 부대"들과 후방 부대의 업무가 공식적으로 확고하게 나뉘어 구분되지는 않았다. 또한 소위 무장친위대 '정예 부대' 역시 제3기갑사단 토텐코프의 사례처럼 집단학살과 홀로코스트에 깊게 연관되었다. 그렇기에 두 부대를 엄격하게 구별해야 한다는 무장친위대 출신자들과 일부 밀리터리 동호인들의 주장은 의미가 없다. 이는 초대 부대들에서 복무했다는 자부심과, 나치 전쟁범죄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무장친위대 전역자들의 자기변호가 한데 뒤엉킨 결과물일 뿐이다. 때문에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실제로 현대의 많은 사학자들은 당시 독일 내 무장 집단들의 학살 책임을 한 곳에 전가하거나 '순수한 전투부대'만 분리해 낼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가령 해당 주장을 한 헤르베르트 브루네거는 영국군인협회와 함께 르 파라디 학살사건을 밝혀서 신문에 이름까지 난 사람이지만, 그 역시 전쟁전 친위대가 엄격히 인재를 선발하던 시절에 합격된 자원 입대자에 초기 강제수용소 간수였다. 따라서 구데리안의 회고록이나 만슈타인의 《잃어버린 승리》, 되니츠의 《10년 20일》, 슈페어의 《기억》과 같이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브루네거가 아직 홀로코스트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4년전인 1938년에 잠시 수용소 경비로 있었기에 학살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변론하나 이는 부적절한 주장이다. 반제 회의와 독소전쟁 개전 이후처럼 급진화되지만 않았을 뿐, 당시에도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과 정치범에 대한 집단적인 국가폭력이 자행되고 있었기 때문. 또 일각에서는 브루네거의 자서전이 출판되자마자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지에 적잖은 호평을 받았다며, 마치 그가 나치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회에서 국방군과 무장친위대 신화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일 뿐이다.
3. 종류[편집]
전 부대 일람
무장친위대 군단 일람
무장친위대 사단 일람
3.1. 야전군급 부대[편집]
- 6 SS기갑군: 1945년 2월 육군의 6기갑군이 통째로 SS로 전속되면서 만들어진 부대이다.
- 1 SS기갑사단 LSSAH/3 SS기갑사단 토텐코프/12 SS기갑사단 히틀러 유겐트
- 퓌러척탄병사단/117경보병사단/356보병사단/710보병사단/10공수사단(위 부대들은 1945년 항복 당시의 소속 부대이다.)
- 11 SS기갑군: 명목상의 기갑군, 실제 병력은 군단급을 겨우 채우는 정도였지만 이름만은 야전군이었다. 공식적으로는 SS 소속이 아닌 국방군 소속이었으나 SS Panzer-Armeeoberkommando 11이란 이름으로 불린 덕에 SS 소속 부대로 분류된다. 펠릭스 슈타이너가 지휘관이었다.
3.2. 군단급 부대[편집]
- 1 SS기갑군단 (1941년 4월 ~ 1944년 1월)
- 2 SS기갑군단
- 3 SS기갑군단
- 4 SS기갑군단(7 SS기갑군단을 흡수했다.)
- 5 SS산악군단
- 6 SS군단
- 7 SS기갑군단(4 SS기갑군단에 흡수되었다.)
- 8 SS기갑군단: 서류상 군단이다. 1945년 창설될 예정이었으나 실행되지는 못했다.
- 9 SS산악군단
- 10 SS군단: 북풍 작전 당시 배치되었던 14 SS군단을 바탕으로 창설되었다.
- 11 SS기갑군단
- 12 SS군단
- 13 SS군단
- 14 SS군단
- 15 SS코자크기병군단: 헬무트 폰 판비츠 장군이 지휘했던 코자크인 구성의 기병군단. 1945년에 기존의 육군 제1, 2 코자크 기병사단을 증편, 편입하여 창설되었다.
- 16 SS군단
- 17 무장군단: 대전말기에 헝가리인으로 구성된 제25, 26 무장척탄병사단을 통합지휘하기 위해 편성된 군단
- 18 SS군단
3.3. 사단급 부대[편집]
독일이 점점 수세에 몰린 1943년 무렵부터는 동유럽 점령지 등에서 비독일, 비게르만계 친위대 사단이 마구잡이로 편성되기 시작했다. 전자는 '단대호 친위(SS) 병과명' 으로 사단 명칭이 정해졌다. 반면 비게르만계이거나 의용부대가 아닌 경우 '단대호 무장(Waffen) 병과명'으로 사단 명칭을 불렀다.
사단 마크 오른쪽 귀퉁이가 없으면 기갑사단, 마크 가운데 귀퉁이가 없으면 기병/산악사단, 사단 마크 왼쪽 귀퉁이가 잘려있으면 기갑척탄병사단, 어느 곳도 잘려있지 않으면 있으면 일반 척탄병사단으로 구분한다.
[1] 이들은 반대로 과도하게 비대해져서 군단급 수준이기도 했다[2] Leibstandarte SS Adolf Hitler. 라이프슈탄다르테 슈츠슈타펠 아돌프 히틀러, 경호대 SS 아돌프 히틀러; 약칭은 LSSAH 혹은 LAH.[3] Das Reich. 제국으로 흔히 번역되지만 독일어에서 Reich는 꼭 제국이라기보다는 국가에 가까운 뜻이다. 라이히 항목 참고. 앞의 Das는 영어 관사 The에 해당.[4] 프랑스 마을 오라두르쉬르글란에서 레지스탕스들이 다스 라이히 장병들을 습격한 것이 발단이 되었으며 이 때 독일군 장교가 레지스탕스에게 생포당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장교 구출 및 보복으로 벌어진 학살.[5] Totenkopf. 해골.[6] 육군 기갑병과의 해골 마크는 구 프로이센 육군의 창기병 연대원들이 쓰던 것을 그대로 따온 것으로, 토텐코프 사단의 해골과는 사용 시작 시기도, 유래도, 디자인도 다르다. 의외로 국방군 기갑사단이 토텐코프의 마크가 멋있다는 이유로 군법을 어기고 몰래 슈츠슈타펠의 마크를 자신의 커프스에 다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7] Wiking. 바이킹.[8] Nord. 즉 북쪽이라는 뜻이다.[9] Prinz Eugene. 사부아 공자 외젠을 말한다.[10]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헝가리 왕국의 영역 내에는 약 200만이나 되는 독일계 주민이 거주했다. 트리아농 조약으로 인해 헝가리 왕국이 이웃국가인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에 보이보디나와 트란실바니아 등의 영토를 할양하면서 그곳에 거주하던 독일계 주민들도 함께 넘어가게 되었다.[11] Florian Geyer. 16세기 독일 농민전쟁당시 농민측과 함께하여 싸운 기사.[12] 일부는 포위망에서 마리아 테레지아 사단 일부와 함께 탈출[13] Hohenstaufen. 12세기와 13세기에 왕과 황제를 배출한 독일 왕조. 프리드리히 2세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음.[14] Frundsberg. 16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장군 게오르그 폰 프룬츠베르크. 일명 란츠크네히트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다.[15] Nordland. 즉 북국(北國)이란 뜻이다.[16] 전쟁 말기에 이른 독일군 부대 대부분이 비슷한 꼴이었지만 노르트란트는 좀 더 심했다. 전쟁 말기에 이르른 노르트란트 사단에는 덴마크/헝가리/네덜란드/노르웨이/핀란드/프랑스/루마니아/스페인/스웨덴/스위스/영국/에스토니아 등에서 모여든 병력들이 득실거렸다. 베를린 공방전에 소련군과 가장 격렬하게 저항하였던 부대이며 이 곳에서 부대가 소멸한다. 라이히스탁 방어전에 참가했던 소대는 노르트 사단이 아닌 이쪽이다.[17] Hitlerjugend. 히틀러 소년단.[18] Handschar. 나이프[19] 일명 갈리치엔(Galizien)으로 불리기도 했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있던 소왕국 갈리시아를 가리킨다.[20] Reichsführer-SS. 말 그대로 Reich와 Führer를 합친 표현이다. 약칭은 SS장관. 하인리히 힘러의 계급이다.[21] 잘린 오른팔 대신 철제 의수를 끼고 다녀서 일명 "강철의 손 괴츠"로 알려진 16세기의 기사. 이 사람도 독일 농민 반란에 종군했다.[22] 참고로 뮐하우젠과 알슈테트의 독일 농민 전쟁을 이끈 사제 토마스 뮌처는 (천년왕국 도래의)"때가 되었을 때,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하고 필요한 자에게 분배되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으며 마르크스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스스로를 반공투사로 간주한 나치당과 여러 민족들의 범유럽 반볼셰비키 십자군으로 선포한 친위대답지 않은 부대명이다.[23] Skanderbeg. 15세기 알바니아의 귀족 제르지 카스트리오티를 일컫는 말이다.[24] 합스부르크의 여왕[25] 벨기에 왈롱 지방[26] 보헤미아-모라비아
3.4. 사단 번호를 받지 못했거나 선전용으로만 존재한 부대[편집]
- 영국 자유군단 - 포로가 된 영국 육군 장병들 중 나치즘에 찬동하는 지원자를 받아 편성한 부대로, 이름은 군단이지만 이들은 부대가 최대 규모였을 때 그 수가 꼴랑 27명이었다(...).
- 미국 자유군단(조지 워싱턴 여단) - 위에서 영국을 미국으로 바꾸면 끝이다. 그런데 아예 이런 부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으니 참고. 다만 독일군/외인부대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인 무장친위대원이라는 존재가 있기는 있었던 건 사실이다.
- 자유 인도 군단 - 역시 군단이라는 이름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여단급은 되었다. 무장친위대 아래 편제된 것은 1944년 경이다. 상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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