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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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메스키타(스페인어: Mezquita)"는 스페인어로 "모스크(Mosque)"라는 뜻하는 일반명사로, 아랍어 "마스지드"(مسجد)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스페인이 이슬람 국가가 아니고 일반적으로 고유명사로서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코르도바에 있는 가톨릭 교회의 주교좌 성당 "코르도바 산타마리아 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de Córdoba)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이 메스키타의 존재감이 워낙 압도적이고 이베리아 반도 이슬람 문화와 역사에 코르도바의 영향력이 워낙 강력하니 관사를 붙혀 "La Mezquita"라고 하면 보통은 코르도바의 이 건물을 의미한다. 굳이 콕 찝어서 얘기할 때는 "Mezquita de Córdoba"라고 한다. 튀르키예의 아야 소피아가 성당을 모스크로 개조한 것이라면 스페인의 메스키타는 반대로 모스크를 성당으로 개조한 것이다.
2. 관광[편집]
여타 대부분의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교회로서 운영중이므로 종교 휴일에는 문을 닫는다. 이것은 보통 11:00 ~ 15:00 사이로 일요일에도 비슷하다. 또한 영업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른데 11월부터 2월까지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10:00 ~ 18:00까지 관람을 할 수 있으며, 3월부터 10월까진 관람 시간이 한 시간 늘어 19:00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종교 건물이다 보니 특정 스타일의 드레스코드를 요구하는데 어깨, 팔, 다리가 너무 노출되는 의상은 안된다.
또한 내부 입장시 모자 착용과 너무 부피가 큰 짐의 반입을 제한하고 있으며, 관람 중에 사진을 찍거나[6] , 담배를 피우는 것이 금지된다.
메스키타에 가는 것은 아주 간단한데 대중 교통이 도시 주변을 운행하며 3번 또는 12번 버스를 타면 메스키타 근처인 푸에르타 델 푸 엔테 (Puerta del Puente) 정류장까지 갈 수 있다. 아니면 택시를 부를 수도 있으며 워낙 관광지로 유명하다 보니 그저 메스키타만 말해도 운전사도 어딘지 잘 이해한다.
티켓 가격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기본 성인 티켓 비용은 11 유로이며 10세 미만의 어린이는 무료이며 10세에서 최대 14세까지는 성인 티켓 비용의 절반인 6 유로만을 지불하면 된다. 15세부터 28세까지의 학생과 65세 이상의 노인에게는 9 유로까지 할인된다. 종탑 투어의 경우 별도의 티켓을 3 유로에 구입해야 한다.
4 유로를 지불하면 외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할 수 있다만,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없다.
마지막 입장은 마감 시간 30분 전이며 이 시간 이후에는 더 이상 티켓이 판매되지 않으며 입장이 허용되지 않는다.
종교행사가 있는 특별한 날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 월~토 아침 8:30~9:30은 무료 방문이 가능하다. 단, 이 시간에는 단체 방문이 허용되지 않으며, 9시 20분에는 퇴장해야 하므로 사실상 50분만 관람이 가능하다.
홈페이지에서 야간 투어 예매도 가능하다.
3. 역사[편집]
원래는 로마인의 야누스 신전이 있었고, 그 후 서고트인들이 점령하면서 세인트 빈센트 성당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메스키타는 756년 코르도바를 수도로 하는 후우마이야 왕조를 세운 아브드 알 라흐만 1세가 785년에 기존에 그 자리에 있던 서고트족 교회를 개축하고 2백년에 걸쳐 세 번의 공사[7] 를 거듭하면서 987년에 완공되어 남북 180m, 동서 130m로 2만 5천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23,000평방 미터의 거대한 규모로 건립된 것을 시작으로 본다. 당시에는 알자마 모스크로 불렸다. 997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 떼어온 바실리카 문짝과 종들로 장식되었다고 한다.[8]
모스크를 지은 아브드 알 라흐만은 우아한 아랍필체로 모스크 이런 글귀를 새겼다고 한다.
이것은 이미 앞에서 벌이진 일을 구현하고, 뒤에서 오는 것을 밝혀주었다.
그 후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고 있던 코르도바를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3세가 1236년에 정복했고 이슬람 사원이던 것을 1523년부터 대성당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레콩키스타가 완료되면서, 스페인의 가톨릭 왕조는 수많은 이슬람 사원을 헐어버렸지만, 메스키타는 워낙 규모가 크고 화려하여 그대로 보존하면서 사원 중앙 부분을 철거하고 르네상스 양식으로 대성당을 세웠다. 원래는 부수고 새로 지으려 했으나 이곳에 방문한 카를 5세가 아름다운 모습에 감명을 받아 부수지 말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그가 메스키타의 독창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덕분에 이전 서고트족의 세인트 빈센트 성당과는 달리 메스키타는 파괴되진 않았지만 일부는 기독교식으로 교체되었다. [9]
카를 5세는 이 사원 내부를 변경해 성당을 만드는 것을 재가한 왕이기도 한데 후일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고 한다.
당시 사원의 일부를 훼손시킨 자기의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멋지게 표현한 말로 명언이 되어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을 짓기 위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건물을 파괴했다!
하지만 당시 그가 큰 아쉬움을 느끼고 한탄한 것과는 다르게 현재는 단순 이슬람 사원이 아닌 사원 안에 성당이라는 기묘한 동거 형태로 오히려 전 세계인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사랑받는 곳이 되었다.
정리하면 로마 신전 자리에 서고트족 교회가 세워지고 그 위로 모스크가 세워졌다가 내부에 성당이 들어선 것이다.
이슬람 교도들에게 메스키타가 폐쇄된 이후 1931년 처음으로 알라마 무라마드 이크발 박사(인도의 시인, 철학자)의 예배를 제외하고는 현재 후안 호세 아센호 주교는 이슬람 예배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
1984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4. 건축[편집]
다주식 건축양식의 건물로 특이하게도 여러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래는 무어인들에 의해 모스크로 시작되었던 것을 스페인 사람들이 그들을 몰아낸 후, 모스크를 부수지 않고 그안에 자기들의 양식대로 채워 지었기에 가능했다. 때문에 보면 성당 임에도 외관상 모스크로 보일정도로 이슬람 양식이 섞여있다. 즉 이슬람 사원을 부수고 새로 짓기보다는 내부에 기독교적인 요소들을 추가하여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지금의 코르도바 대성당은 메스키타를 기반으로 기독교 성당으로 세워졌다. 이슬람 건물의 일부가 부서지고 변형되었으나 이슬람 사원을 상징하는 아치형 기둥과 장식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아치의 빈 공간을 벽으로 메우고 기독교 성화가 걸려 있기도 하다. 한 때 코란의 원본 한 부와 예언자 무함마드의 팔뼈 하나를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메스키타는 원래 로마의 성전에서 출발하여 서고트족의 교회였으나 8세기 이슬람 세력이 이곳을 점령하여 모스크를 세웠고, 15세기에 가톨릭 세력이 다시 이곳을 점령하면서 모스크를 그대로 두고 중앙부에 성당을 건축함으로써, 문화의 전이와 통합의 상징적 건물이 되었다. 때문에 메스키타에는 그리스, 로마, 카르타고, 비잔틴, 이슬람, 스페인 카톨릭 문화가 녹아 있고,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아라베스크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사원 중앙에 르네상스 성당 공간을 만들기 위해 1,200여 개의 기둥에서 300여 개의 기둥을 제거 하고 성당 네이브(Nave, 본당 공간)와 트렌셉트(Transept, 성당 십자가 모습의 양쪽 날개) 부분을 만들었다. 트렌셉트는 십자가, 아치형 천장, 대리석, 벽옥, 오닉스, 화강암 안감이있는 수많은 기둥 형태로 만들어져 후기 고딕 양식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메스키타 대성당은 이슬람 사원 기도실은 원형대로 사용하되 중앙에 르네상스 양식의 돔 천정과 왕실 예배당 및 제단을 건축함으로써 이슬람 양식과 기독교 양식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건축물이 되었다.
4.1. 종탑[편집]
본래 무슬림이 사용하던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이슬람 건축물 미나렛(Minaret)을 높이 93m, 3층 구조에 12개의 종이 걸린 바로크 양식의 알미나르 종탑으로 개조한 것이다.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에서는 미나렛 역할을 했다. 9세기에 확장 공사가 이루어져 미나렛도 시리아풍으로 개축되었다. 원래 버전에서는 높이가 23m에 달했는데 나중에 10세기에 재건되어 정사각형 모양을 만들었다.
새로운 타워는 2개의 세그먼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좁은 타워는 넓은 바닥에 놓여 있다. 오르막과 내리 막을 위해 동쪽과 서쪽에 2개의 계단이 있었고, 높이가 47.5m로 증가했다.
1593년에 르네상스 양식의 종루로 고쳐 지었다.
종탑 꼭대기에 코르도바의 수호 성인인 대천사 라파엘의 조각품이 설치된 마지막 재건은 19세기에 수행되었다.
종탑이 작기 때문에 30분마다 투어가 진행되며 시간대별로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최대 20명으로 한정적이다. 때문에 종탑에 들어가 보고 싶다면 미리 표를 구해야 한다.
4.2. 석주와 아치[편집]
메스키타는 785년 건설을 시작한 이후로 200년에 걸쳐 증축을 통해 25,000명의 신자가 동시에 기도할 수 있는 규모의 이슬람 사원이 되었는데 초기에는 1,200여 개의 석주가 있었으나 사원 중앙에 성당을 만들 때 300개 이상의 석주가 일부 철거되어 현재 856개의 석주가 남아있다.
메스키타 내부는 856개의 원주와 아치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흰 돌(사암)과 붉은 돌(홍예석)을 번갈아 쓴 도벨라스 양식의 아름다운 아치가 있는데 이는 이슬람 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은 아니다. 이는 모스크를 짓기 전에 원래 로마 사원과 서고트족 교회가 있던 곳이라 앞서 이곳을 지배했던 서고트족이 로마 건축양식을 응용한 말발굽형 이중 아치를 도입하고 아치에 로마 신전의 돌이 쓰였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기둥과 기둥머리를 살펴보면 이오니아, 도리아, 코린트 등 다양한 그리스 양식이 섞여 있고 기둥 석재도 대리석, 화강암, 마노 등 다양한데 이는 이슬람 사원을 건립하면서 주변에 있는 그리스 양식의 건물에서 기둥을 뽑아내어 사용했기 때문이다.
4.3. 주제단과 미흐랍[편집]
주제단은 1523년 원주 기둥 네 줄을 걷어 내고 그 자리에 성당의 중앙제단을 고딕 양식으로 건립했다.
미흐랍(Mihrab)은 이슬람 성지 메카를 향해 기도드리는 방향[10] 이 표시된 곳으로 무슬림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모스크의 중심 공간이다. 넓직한 7각형의 미흐랍은 전형적인 무데하르 양식의 열쇠구멍 모양을 하고 있으며 대리석과 황금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는 화려한 벽이다. 당시 아브드 알 라흐만 1세는 비잔틴 제국에 모자이크 장인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여 비잔틴 제국에서 모자이크 장인들이 가지고 온 16톤의 유리와 금 모자이크 조각으로 높이 7.85m의 미흐랍을 만들었다고 한다.
메스키타를 성당으로 개조하면서도 미흐랍을 원형으로 보존하여 메스키타에서는 모스크의 핵심 공간인 미흐랍과 대성당의 핵심 공간인 주제단을 하나의 지붕 아래서 동시에 볼 수 있다.
4.4. 오렌지 정원[편집]
원래 이슬람 지배시절에서는 예배 전 몸을 씻는 수반이 자리했던 중정이 있던 곳으로 레콩키스타 이후 수반이 있던 중정에는 오렌지 나무를 심고, 중정을 둘러싸고 있던 아치들도 모두 벽으로 막아 버렸다. 즉, 본래 회교도들이 몸을 씻던 연못이 있었으나 기독교의 손에 들어가면서 회교의 모습을 지우기 위해 오렌지 나무를 심고 연못을 메운 것이다. 지금은 10세기에 만든 우물(알만솔의 우물)만 남아 있다. 그리하여 안뜰은 거기에 심어진 오렌지 나무 때문에 "오렌지" 정원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것들은 아브드 알 라흐만 1세의 통치 기간 동안 있었던 야자수를 부분적으로 대체했다. 나중에 노송 나무와 올리브가 오렌지 정원에 추가되었다. 현재의 오렌지 나무는 18세기 이후에 심어졌다. 산타 마리아 분수가 있으며 메스키타 내부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오렌지 중정까지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이곳은 특히 이 명소를 관람하기 위한 티켓을 위해 긴 줄을 서며 걷고 휴식을 취하기에 매우 좋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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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4년 등록확장[2]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3]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4]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5]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6] 플레시, 삼각대를 쓰지 않는다면 사진촬영 허용[7] 각각 아브드 알 라흐만 2세 때인 848년, 알 하캄 2세 때인 961년, 알 하지브 알 만수르 때인 987년[8] 그러나 이후 1236년 카스티야가 코르도바에 입성한 후 카스티야 국왕 페르난도 3세는 원래 대성당의 대문과 종이었던 대모스크의 대문과 종을 다시 뜯어가 톨레도 대성당을 장식하는 데 썼다.[9] 비슷한 사례로 메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했을때 하기아 소피아를 훼손시키지 말라고 지시했고 모스크로 개조할때 대부분을 남겼다.[10] 다만 모스크별로 약간의 오차가 있었는데 메스키타의 경우에는 남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