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복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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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담당 직무
3. 점을 치는 방식



1. 개요[편집]


매복맹인(賣卜盲人)은 조선시대에 돈을 받고 점을 쳐 주거나 경(經)을 읽어 주며 생계를 이어가던 맹인을 말한다.

조선시대에 맹인들은 전통적으로 눈이 멀어 앞을 못 보는 대신 신에게 빌어서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양재기복(禳災祈福)의 능력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었다. 맹인 또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점복(占卜)·주축(呪祝)·독경(讀經) 등의 기술을 습득하였다. 조선시대의 맹인은 천인 신분이었으나 경우에 따라 관직에 나아갈 수 있었다.


2. 담당 직무[편집]


조선 왕조는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명과학(命課學)을 전업으로 삼는 맹인을 뽑아 관상감(觀象監)의 관직을 수여하였다[1]. 또한 조선 초기부터 맹인의 독경·주축을 관할하는 국가 관서인 명통시(明通寺)를 설치하기도 하였다[2]. 그렇지만 유교 성리학적 소양을 지닌 양반 중심의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명과학은 잡학(雜學)으로 천시되었으며 맹인 점복자도 천시되었다. 한편, 맹인을 일반적으로 '참봉' 또는 '봉사'로 부르게 된 연유는 이들이 말직인 참봉[3], 봉사[4] 직을 수여받은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명통시에 소속된 맹인의 직무는 나라에 가뭄이 닥쳤을 때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가 비가 오기를 축원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명통시에 속하지 않은 대다수 맹인들은 민간에서 점복과 독경, 주문 등으로 길흉화복을 점쳐 주고 복채를 받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3. 점을 치는 방식[편집]


경국대전≫에는 관상감의 명과맹(命課盲)과 명과학(命課學)이 나와 있어 자세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의 복술은 당나라 때 원천강(袁天綱)의 육임과[5]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점술법에 의거했던 것으로 전해지며, 고려 이후의 명경수(明鏡數)를 최고로 일컬어 왔다고 여겨지나 실제로는 산통[6]을 차고 다니며 청하는 집에 들어가 산가지[7]로 괘를 만들어 길흉을 말해 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주문과 축원에 수반되는 독경도 종류가 여러 가지였으나 ≪옥추경≫을 읽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옥추경≫은 조선시대 초부터 상·하 계층에서 함께 성행하였고 특히 질병 치유에 많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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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종실록』 5년 11월 27일[2]태종실록』 17년 6월 16일[3] 종9품[4] 종8품[5] 六壬課: 골패 등을 가지고 길흉을 점치는 방법[6] 산가지를 넣는 통[7] 옛날에 수효를 셈할 때 쓰던 물건. 가는 대나 뼈 따위로 젓가락처럼 만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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