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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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Lictor

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고대 로마의 고위 행정관들을 경호하는 임무를 맡은 하급 공무원.


2. 상세[편집]


'묶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동사 리게르(ligare)에서 파생된 용어로,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도끼 주변을 다발 형태로 묶은 일련의 막대인 파스케스를 가지고 다닌 데서 유래했다. 일부 학자들은 릭토르가 '왕실'을 의미하는 에트루리아 어근 lauchum에서 파생되었다고 추정한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로마 왕국 초대 국왕 로물루스가 릭토르를 12명으로 정한 것에 대해 두 가지 설을 제기한다. 하나는 로물루스가 중심지로 정한 팔라티움 언덕에 수리 12마리가 나타난 것을 기념하고자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또다른 이야기는 에트루리아의 12개 도시 연합의 각 왕들이 각각 한 명의 릭토르를 임명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리비우스는 두번째 이야기가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지만, 에트루리아 연맹이 12개의 도시와 12명의 왕으로 구성되었다는 증거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으며, 대다수 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로마 왕들이 12명의 릭토르를 두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로마 왕국이 몰락한 후, 릭토르와 파스케스는 임페리움을 장악한 고위 행정관들의 상징이 되었다. 국왕이 가지던 통치권을 1년간 도맡는 2명의 집정관은 각각 12명의 릭토르를 대동했으며, 위기 상황에 임명되는 임시 관직인 독재관은 로마 바깥에서는 24명을 거느리고 로마 안에서는 12명의 릭토르를 거느렸다. 법무관은 로마 시 내부에서는 2명, 로마 바깥에서는 6명을 거느렸고, 수석 조영관은 2명을 거느릴 수 있었다. 지방 총독과 군단장들은 6명의 릭토르를 거느렸다.

또한 민회가 진행되는 동안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소집된 30명의 릭토르 큐리아투스(Lictor curiatus)도 있었다. 이들은 로마의 30개 부족을 대표하여 선발되었으며, 민회의 질서를 확보하는 것 외에도 로마 다신교에서 강력한 권위를 가진 베스타 무녀(Vestal Virgin), 폰티펙스 막시무스, 플라멘을 호위했으며, 희생 동물을 제단으로 옮기거나 인도하는등 희생 제사에 참여했다. 또한 시민들의 존경을 받던 인물의 장례식이 거행될 때 존경의 표시로 릭토르 한 명이 고인의 유해를 호위하기도 했다.

릭토르는 본래 도끼 머리가 달린 자루를 항시 휴대했지만 공화국 수립 후에는 로마 시내에서는 도끼 머리를 떼고 자루만 가지고 다녔고 로마 바깥에서만 도끼 머리를 달았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왕정 폐지에 공헌했던 집정관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는 시민들로부터 왕이 되려 한다는 의심을 받자 릭토르들에게 로마 시내에서는 도끼를 빼라고 명령해, 자신은 시민들 위에 군림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드러냈다고 한다. 다만 독재관 만은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부여된 절대적인 권위를 시민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도끼 머리가 달린 자루를 지닌 릭토르들을 대동한 채 로마 시내를 활보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릭토르들은 자유민 신분에 체격이 건장하고 힘이 세며, 별다른 범죄를 저지른 경력이 없어야 선택될 수 있었다. 보통 행정관이 특정 인물을 지명했지만, 때로는 추첨을 통해 선발되기도 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행정관을 보호해야 했다. 우선 집정관 등이 군중을 향해 연설할 때 옆에 서서 경호해야 했다. 또한 행정관이 집에 있을 때 그 주변을 경호했고, 행정관이 사원, 극장, 심지어 목욕탕을 방문할 때도 따라가야 했다.

릭토르들은 행정관이 이동할 때 그 앞에 질서정연한 대열로 행진했으며, 수석 릭토르(principal lictor, 또는 프록시무스(proximus)나 프리무스( primus)로 일컬어지기도 했다.)가 선두에 섰다. 도로에 군중이 있을 때 사람들을 밀어내고 행정관을 위한 통로를 만들었다. 또한 그들은 행정관의 명령에 따라 통행인을 체포하거나 처벌할 수 있었다. 파스케스에 묶인 막대기는 사람들을 매질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고, 도끼는 처형에 사용될 수 있었다. 이 사형 집행은 로마 공화국 초기에 종종 벌어졌지만, 12표법 제정 후로는 어떤 행정관도 릭토르더러 로마 시민을 즉결 처형하라고 명령할 수 없었다.

하급 행정관이 고위 행정관을 만났을 때, 하급 행정관을 호위하던 릭토르들은 고위 행정관을 향해 파스케스를 낮췄다. 플루타르코스세르토리우스 전쟁에 갓 참전한 젊은 장군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가 히스파니아 총독 메텔루스 피우스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일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폼페이우스는 전투 후 메텔루스를 만나러 갔다. 서로 가까워졌을 때 메텔루스를 상관으로서 존중하기 위해 릭토르들에게 파스케스를 낮추라고 명령했다.


릭토르들은 로마 시내에서는 토가를 입었지만, 도시 바깥에서 활동하거나 개선식이 치러지는 동안에는 붉은 군복을 입었고, 장례식에서는 검은 망토를 착용했다. 파스케스를 왼손으로 잡고 왼쪽 어깨에 기대는 게 원칙이었지만, 장례식에서는 파스케스를 다른쪽 어깨로 옮겼다. 또한 그들은 개선식 때 머리에 월계관을 쓴 채 전차를 탄 장군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행정관을 보호하는 대가로 군복무가 면제되었고, 군단병이 받는 수입의 2/3 가량인 600 세스테르티우스에 달하는 고정 급여를 받았다.

릭토르는 로마 제국이 수립된 후에도 오래도록 존재했다. 로마 황제들은 12명의 릭토르를 항시 동반했다.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 부조에는 개선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13번째 릭토르가 새겨졌다. 도미티아누스 통치 기간에는 릭토르가 24명으로 늘어났다.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로마의 영토로 귀속된 이집트에서도 신성한 황호 아피스가 릭토르 한 명의 보호를 받았으며, 황실의 여인들도 릭토르 1~2명의 호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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