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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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특징
3. 현대


1. 개요[편집]


Toga. 고대 로마전통의상. 로마 남자들의 정장이었다. 반달 모양으로 재단한 천을 투니카[1]를 입은 위에 두르는 것이다. 여러 매체에서 '고대 로마'하면 떠오르는 상징적 아이콘이 된 지 오래. 다만 로마에서 시작된 의상은 아니고 로마 이전에 로마 문명의 기틀이 된 에트루리아의 토니카에서 시작되었으며 옆동네 고대 그리스의 키톤의 영향도 받았다.

딱 봐도 알겠지만 작업복이나 군복은 절대 아니고 순수 평상복이었다. 그것도 활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어디까지나 남자 전용권위를 세우며 품위를 갖추기 위한 옷이었다는 점에서 현대인들의 남성용 정장을 넘어서는 예복 수준의 옷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여자는 토가 대신 스톨라(Stola)라는 별도의 복장을 입었다는 듯. 만일 여자가 토가를 입었다면 매춘부 아니면 간통으로 이혼한 여성(...)으로 여겼다고 한다.[2]

이 옷은 법적으로 로마 시민과 귀족 이상 등급만 입을 수 있을 뿐 하층민·노예·타민족 등등에게 그딴 건 없었다. 이들은 투니카만 입거나 그냥 너덜너덜한 천쪼가리만 허용되었다.[3]

2. 특징[편집]


토가는 착용 전에 안쪽에 속옷처럼 투니카를 먼저 입었기에 의외로 노출도는 많지 않은 편이다. 아니 의외가 아니라 애초에 둘둘 감는 옷이 노출도가 높을 리가 없다. 제대로 고증을 지키는 로마 관련 영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천을 몸에 몇 번 두르는 복장인지라 위의 그림에 나온 것처럼 천의 넓이가 꽤 크고 아름답다.[4] 그리고 단순하게 천을 감으면 끝이 아니라, 착용법이 따로 있으며 토가에 주름을 주는 방법 등 여러 가지 지켜야 할 에티켓이 있다. 따라서 혼자는 못 입는다고 보면 정상이고, 옷시중을 들 사람이 반드시 필요했다.


위 동영상을 보면 토가에 쓰이는 천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있다. 짧은 쪽인 세로길이도 2야드(1.8m) 정도인데다 가로폭은 거의 6야드(5.4m)에 달하기 때문에, 절대로 혼자서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다. 공화정 시대의 카이사르, 제정 시대의 네로, 루키우스 베루스 같이 멋을 부리는 것을 좋아하는 귀족, 황제들의 경우 멋지게 주름만 잡아주는 노예를 따로 두기도 했다. 주름 잡는 실력이 뛰어난 노예는 꽤 비쌌다고 한다.


해당 동영상은 고대사 전공 교수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토가 입는 법

여기에 더해 천을 고정하는 곳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옷을 고정하기 위해 왼팔에 천의 끝단을 둘러싼 후, 왼팔을 살짝 구부려서 고정한다. 당연히 이렇게 하면 왼팔은 살짝 굽힌 자세를 유지해야 하며, 급하게 움직이면 옷이 저절로 벗겨져 안에 입은 투니카가 드러나버린다. 따라서 토가를 입은 상태에서는 잘 해봐야 오른팔만 사용할 수 있으며, 무거운 짐을 들거나 빠르게 달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물론 토가를 입는 로마 지배층 남성은 평소에 무거운 짐을 들거나 빠르게 달릴 일 자체가 없다.

통상 평민은 장식 없는 토가를, 원로원 의원이나 관료들은 옷 테두리에 버건디색 띠가 들어간 흰색 토가를 착용했다. 보라색은 제정 이래 오직 아우구스투스 직함을 가진 황제 혹은 아우구스타 직함을 가진 로마 여성에게만 허용된 특권이라서 아무나 입을 수 없었다. 공화정 이래 공직자, 공무원은 호분으로 하얗게 만든 토가를 입었고, 장례 참석시에는 오늘날 상복으로 입는 검은색 정장처럼 검정색과 같은 짙은 색 토가를 입는 것이 상식이었다. 일상에서 입을 경우에는 신분에 상관없이 흰색, 황색, 녹색 계열을 많이 입었다.

직업, 나이, 상황에 따라서도 종류와 사용법이 제각각 달랐다. 만일 해당 로마인이 종교사제라면 머리에 토가 일부를 뒤집어 썼다. 성인이 입는 토가 외에도, 성년식을 치루지 않은 소년들이 입는 토가가 존재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여성들이 입는 토가도 존재했다. 대충 정리해보면, 그 종류는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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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가 비릴리스 : 굳이 번역하면 "남성다움의 토가" 정도인데, 토가 알바 혹은 토가 푸라라고도 부른다. 성년식을 치룬 로마 성인 남성들이 입었다.

  • 토가 프라이텍타 : 테두리에 넓은 버건디색 줄무늬가 있는 흰색 토가로, 두 개의 넓은 수직의 버건디 색 줄무늬가 있는 투니카 위에 입었다. 로마 시대 배경물에서 극중 인물이 원로원 의원일 경우 입는 하얀색에 테두리만 와인색 토가라면 토가 프라이텍타라고 보면 된다. 보통은 원로원 의원, 치안판사, 사제단 회원 등이 입었으나 로마인 중 성년식을 치루지 않은 소년, 소녀들도 이 토가를 착용했다. 다만 소년, 소녀들은 목에 불라로 불리는 복주머니를 착용해 성인과 구분이 가능했다.

  • 토가 풀라 : 오늘날의 검은 정장 상복과 같이 장례식 때 입는 토가다. 검은색이나 어두운 색으로 제작됐다.

  • 토가 픽타 : 로마 시대 배경물에서 황제가 입고 있는 그 토가다. 단색으로 염색 후 그 주변에 금실, 은실 등을 장식했다. 안에는 금실, 은실로 장식한 투니카를 입었다. 공화정 시대에는 개선식을 치룬 장군이나 현직 집정관, 제정 시대에는 황제와 정규집정관이 입었는데 집정관의 경우에는 임기 중에만 허용됐다. 황제는, 보라색으로 염색한 토가를 둘렀으며 금실을 사용해 토가와 안에 입는 투니카를 장식했다.

  • 토가 칸디다 : 공직 입후보자가 두른 토가다. 호분이나 백묵으로 새하얗게 염색해 평상복으로 입는 백색 토가보다 더 하얗다.

  • 토가 물리에브리스 : 번역 그대로 '여성 토가'다. 스톨라가 매춘부에게 허용되지 않아 입게 된 것으로, 왕정 이래 로마 안에서 매춘부를 뜻하는 복장으로 시작됐다. 공화정 시대가 되면서 남편이 바람을 피우지 않았음에도 불륜을 벌여 이혼한 여성은 처벌의 일환으로 이 옷을 입어야 했다. 물론 이 사유를 뒤집어 씌워 이혼당한 여성은 입지 않았고 법정에서 치안판사 혹은 황제에게 명확히 유죄를 인정받고 배심원들까지 인정하는 경우에 입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여성이나 기타 사유로 이혼한 여성들은 이 옷을 입을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공화정 이래 이 옷은 음란한 여성 중 가문과 부모의 이름을 더럽힌 경우에만 입는 낙인과 같아서 사실상 재혼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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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물루스가 처음 입었다는 전설 시대 이래로 항상 양모를 사용해 만든 모직으로 토가를 만들어 입었고, 토가에 사용된 천은 집안에서 여성들이 만들었다. 따라서 로마 남성들은 어릴 때부터 할머니, 어머니, 누이가 만든 천으로 토가를 입었다. 이런 이유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명망가(노빌레스)로 불릴수록 집에서 만든 천으로 제작한 토가를 선호하고 그 투박함 역시 가족의 화합이자 사랑으로 생각해 자랑스러워 했다. 이런 까닭에 아우구스투스는 아내 리비아 드루실라, 누이 옥타비아, 조카딸 소 안토니아 등이 만들어준 투박하고 평범한 재질의 천으로 만든 토가를 자신의 자랑으로 여겼고, 그 양자인 티베리우스 역시 일평생동안 집에서 만든 천으로 제작한 투박한 토가, 투니카 외에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는 제정 시대 중기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이 절제와 소박함이 몸에 벤 황제나, 타고난 귀족들도 비슷해,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다고 수입 면직물이나 부드럽고 좋은 재질로 제작된 토가를 마냥 입는 것은 해당 인물과 가문이 사치스럽다는 기준 중 하나가 됐다. 따라서 왕정 이래, 로마에서 왕, 황제, 귀족이라고해도 평범한 서민들처럼 투박하고 일반 재질의 토가를 선호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일상복으로 널리 사용되지 않는 것을 증명하듯 단점이 많은 복장이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복장이다. 천을 둘둘 감으니 습기가 많고 무더운 로마의 여름에는 지옥이 따로 없게 되고, 겨울에는 의외로 통기구가 많기 때문에 찬 바람이 술술 들어온다. 물론 돈이 많으면 여름용 얇은 천과 겨울용 양모 등으로 토가의 천을 바꾸면 어느 정도 해결되지만, 완전한 해결은 불가능했다. 사실 시대를 막론하고 위엄을 갖추기 위해 입는 복장은 다 그렇다. 고대 로마인만 특이했던 것이 아니다.[5]

이렇게 불편한 복장을 하게 된 이유는, 토가를 입으면 자연스럽게 똑바른 자세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걸어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위엄있게 보인다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명예와 위엄을 중시한다는 로마 귀족들도 토가의 불편함에는 진저리를 치던 상태였는지라, 토가는 공식행사용·대외업무용·손님접대용 정도로만 사용하고, 집에 돌아오면 토가를 벗고 편하게 지내는 것을 선호했다. 그러나 기억해야 될 점은 고대 로마는 현대처럼 바깥에서의 공적 생활과 집안에서의 사생활이 엄격히 분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로마 엘리트들의 주택은 집 안에도 공적 영역을 위한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으며, 이들은 집안에서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자신의 가문에 속한 클리엔테스들을 접견하고, 수시로 가내 종교의례를 거행해야 했다. 그외에도 정치활동의 상당부분은 집안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집안에서도 토가를 입고 지내는 시간이 상당히 많았다.

이렇게 해서 토가는 점점 일상용의 지위에서 천천히 벗어나기 시작했고, 고대 로마의 멸망과 함께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로마를 상징하는 옷이라서 샤를마뉴처럼 자신이 로마의 권위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예식용으로 잠깐 토가를 착용하는 사례가 있긴 했다.

3. 현대[편집]


서양의 대학가에서는 토가를 입고 술마시며 노는 일명 '토가 파티'가 있다. 로마인 코스프레 하지만 이들이 입는 토가는 정식 오리지널 버전 토가가 아니라, 그냥 '천 쪼가리를 대충 몸에다가 붙여놓은 듯한 형태를 하고 있다. 요는 한복과 개량한복 정도의 차이...라면 비유 치곤 부족하려나? 사실 말만 토가 파티일 뿐, 광란의 파티를 벌여 온통 더러워져도 괜찮도록 옷 대신 침대보 따위의 1회용(?) 복장을 입고 즐기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옷에 이것저것 흘리거나 술을 쏟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듯. 재미있는 것은 고대 로마 시절에도 만찬용 토가는 식사 시간에 양팔을 모두 써야 하므로 정장용 토가와는 달리 약간 입기 쉽고 움직이기 편하게 구성되었으며, 토가가 없는 사람을 위해서 간이형 토가를 빌려주기도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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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로마의 남성용 속옷(?)인데, 팬티가 아니라 소매가 달려 있는 원피스이며 여기에 허리띠를 매어 조였다. 투니카만 입고 다니는 남성은 신분이 낮은 하인이나 노예 등이었다. 이 문단 아래쪽에 후술하듯 토가는 귀족용 복장이기 때문. 서양에서 흔히 군복 상의를 일컫는 '튜닉'이 이 말에서 유래했는데 사실 투니카가 중세로 넘어가면 그대로 튜닉이란 이름으로 불리었다. 군복 상의인 튜닉도 투니카도 둘 다 소매가 달린 허리라인에 착 달라붙는 민짜 옷이다.[2] 로마 공화정 시대부터 남편이 바람을 피우지 않음에도 남자 애인과 불륜을 맺다가 이혼한 여성은 이혼 후 토가를 입었다.[3] 켈트족이 로마인과 구별되는 가장 큰 부분이 바지를 입었다는 점이다. 로마인은 바지를 야만족의 상징이라며 폄하했다.[4] 비슷한 컨셉의 옷으로 인도의 전통의상인 사리가 있는데, 이는 여성용 옷이고 천이 직사각형 형태이다.[5] 비근한 예로, 교복을 입으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