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오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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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오언
Richard Owen

출생
1804년 7월 20일
잉글랜드 랭커셔주 랭커스터
사망
1892년 12월 18일
잉글랜드 런던 리치먼드파크
국적
[[영국|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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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직업
생물학자
학력
에든버러 대학교

1. 개요



1. 개요[편집]


영국의 생물학자.공룡(恐龍, Dinosaur)이란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 쓴 생물학자로 엄청난 능력을 가짐에도 사람됨됨이가 엉망이라 비참하게 몰락한 인재이다. 찰스 다윈과 반목하기로 유명했지만 오언이 가진 재능은 확실히 당대에도 천재라고 인정받아 명성높은 프랑스의 해부학자인 조르주 퀴비에가 제자로 받아들였고, 고생물학자 및 온갖 생물 연구, 화석 연구, 논문 저술 등등으로 경 작위와 훈장도 받았을 정도로 안티들, 다윈이나 다윈의 추종자들 모두가 그 재능을 인정하던 유능한 먼치킨 학자로 나이 서른 초반에 영국 왕립대학교 교수가 될 정도였다. 스웨덴,네덜란드 왕립연구소와 미국 국립연구소에서 드물게 외국인 회원으로 임명될 정도로 해외에서 인정받았다.

그러나, 됨됨이는 그야말로 최악이라 오만방자하고 심지어, 기디언 만텔(Gideon Mantell,1790~1852)이 오랜 세월동안 연구하며 이룩한 이구아노돈에 대한 연구 공로를 빼앗으려는 짓도 벌이다가 이게 들켜서 학계에서 온갖 비난을 받으며 만장일치로 갓 나이 마흔이란 한창 나이로 대학교수에서 쫓겨나는 온갖 추한 모습을 보였다. 공룡에 대하여 세계 최초로 연구하여 이름을 알린 선구자로 유명한 만텔은 후배의 이런 짓에 분노하여 오언을 욕했지만 그런 그조차도 오언을 이렇게 평하며 재능을 안타깝게 여겼을 정도이다.

"그렇게 재능 있는 사람이 그렇게 비열한 짓을 하던 것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언은 만텔에 대하여 여전히 열폭하여 그가 죽은 다음에도 1860년 4월 Edinburgh Review 란 잡지에서 익명으로 쓴 기사로 만텔의 업적을 비하하고 오언, 즉 자신을 변호하는 짓을 하여 당대에도 이게 드러나서 여전히 소인배라는 온갖 비난을 받아야 했다.

재능이나 업적은 온갖 인정을 받은지라 온갖 동물 연구라든지 화석 연구에 엄청난 업적을 남겨 죽을 때까지 왕실에서 하사하는 두둑한 연금도 받고, 늘그막에서 살던 큼직한 별장까지도 빅토리아 여왕이 하사했을 정도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막가파 성격과 온갖 추태로 학계에서 철저하게 버려져 늘그막을 쓸쓸하게 살다가 죽었다.1856년 대영박물관 자연관장이나마 임명되어 일하는 것은 열심히 성실하게 일했고 대영박물관 한 코너에 가려진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새롭게 1881년에 별도로 세워진 영국 자연박물관 설립에도 오언이 20년 넘게 노력하며 크게 이바지했음에도 그에 대한 초대 박물관장 임명안 투표에서도 여전히 반대가 많았을 정도이다. 그나마, 여왕이 중재하여 가까스로 권력으로 인해 초대 박물관장에 올랐으나 박물관 관계자들과 크고 작은 다툼을 계속 벌였고 이미 70대 후반에 당시로도 엄청 나이가 든 오언이었기에 빅토리아 여왕이 명예적 보상으로 초대관장으로 앉힌 셈이었다. 결국 3년만에 80살 고령으로 관장에서 물러나야 했다.

남을 음해하던 비열한 성격으로 제자들도 그를 싫어하여 오죽하면 찰스 다윈부터가

"그렇게 재능을 가진 오언이건만 그에게 후계자같은 제자들조차 하나도 없다는 게 신기하다. 그만큼 그의 성격이 엉망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이라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그 다윈에게는 그를 존경하던 제자들이 많았던 걸 생각하면 오언의 개차반 성격을 이해할 증거라고 봐야겠다.실제로 그가 죽을때조차 제자는 하나도 참석하지 않았다. 다윈에겐 수천이 넘는 제자들이 장례식에 참가하던 거랑 대조적.

이렇게 다윈과 반목한 점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신론자로서 창조설을 지지하는 동료 학자들에게도 제자들까지도 그랑 반목했고 그런 끝에 잊혀져 많은 사람들 축복과 장례식 참가, 온갖 언론의 미사여구를 듣으며 많은 식구들을 두고 편히 눈감은 다윈과 달리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고 달갑지 않은 88살 장수를 누려야 했고, 죽을때도 언론에게 작게 다뤄지며 친척과 유족이나 일부 참여한 장례식이 치러져 잊힌 이름이 된 지 오래였다.

영국 동물학자인 리처드 브로크 프리먼 (Richard Broke Freeman, 1915년 4월 1일 ~ 1986년 9월 1일)은 다윈과 오언에 대하여 오랫동안 연구하고 책도 냈는데 그조차도 오언을 이렇게 평했다.

"그는 가장 뛰어난 척추동물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이지만...가장 기만적이고 혐오스러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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