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리카(백야극광)

조종사, 카메라를 내 쪽으로 향해 줘. 응, 바로 그렇게. 자전 영화 찍는 거 도와줘서 고마워. 헤헤, [엄청난 성공] 을 거둔 사람만이 자전 영화를 찍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도 꿈을 향해 움브라톤의 [알리우드] 에서 3년 동안 머물면서 노력해 왔다구. 그러니까 이쯤에서 내 삶을 한 번 되돌아봐야 할 거 같아. 열심히 지난 3년을 달려온 내게 주는 포상이랄까?
내가 [알리우드] 에 와서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든 건 딱 3년이 됐지만, 나랑 영화의 인연은 사실 13년 전부터 시작됐어. 아직도 기억나.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학교에 간 날이었는데, 바보같이 엄마랑 아빠가 날 버리려는 줄 알고 엉엉 울었거든. 그 무렵 내 고향 팔미라 타운에 마침 이동식 극장이 하나 문을 열었는데, 엄마랑 아빠가 날 달래 주려고 내가 학교에 잘 갔다 오면, 그날 저녁엔 영화관에 데려가서 영화를 보여 주시곤 했었어. 그땐 [영화] 라는 게 뭔지 잘 알지도 못했지만... 영화라는 얘기만 들으면 울음을 뚝 그치고 얌전히 학교에 갔다고 하더라구. 헤헤,
[영화] 라는 단어 자체가 나한텐 참 매력적이었나 봐.
　

솔직히 내가 맨 처음에 본 영화가 뭐였는지는 이미 진작에 잊어버렸어. 기억 나는 건 검은색 상자에서 나온 검은색이랑 흰색 빛을 2층 높이 정도 되는 스크린에 비추니까, 그 빛들이 신기하게도 막 움직이고, 말도 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던 거야. 그때는 어렸으니까, 엄마랑 아빠한테 저 사람들을 천 안에서 꺼내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봤었어. 그랬더니 두 분이 내 머릴 쓰다듬어 주시면서, 저 사람들도 우리처럼 현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알려주셨어. 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필름에 저 사람들의 과거 모습을 기록해 둔 게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영화] 라고 하셨지. 사실 있잖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은 [해산물] 요리를 먹는 거였거든? 근데 그때 이후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자연스레 [영화] 보기로 바뀌었어. 해산물 요리를 먹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우리 집 형편으론 어려운 일이였지만, 그때는 아직 그걸 몰랐어.
　

엄마랑 아빤 언제나 나한테 가장 좋은 걸 해 주려고 하셨어. [안 돼] 라는 얘기도 거의 하신 적이 없었지. 근데 철이 좀 드니까, 나도 알게 된 거야. 우리 집이 그렇게 잘 사는 건 아니란 걸. 그래서 더는 엄마랑 아빠한테 영화관에 데려가 달라고 조르지 않았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영화란 취미를 포기한 건 아니구. 헤헤, 뭐든 방법이 있기 마련이잖아.
이동식 극장이 우리 마을에 올 때면, 난 미리 나무 위에 몰래 올라가 있었어. 그러면 하룻밤 동안 무료로 영화를 볼 수 있었거든! 크흠, 물론 어린이들은 이런 어려운 동작을 하면 안 돼~ 왜냐면 나도 영화를 보는 게 너무 좋아서 흥분하다가 나무에서 떨어져서 다리를 다친 적이 있거든... 다 낫고 나서도 영화를 보는 걸 포기할 수가 없어서, 무작정 돈이 많은 사람 집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랬어. 그러면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영사기를 구경이라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매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걱정스러웠는지, 아빠랑 엄마가 어디서인진 모르겠지만 중고 카메라를 하나 구해다 주셨어. 난 그때 처음으로, 영화는 볼 수도 있지만, 내가 영상들을 하나씩 찍어서 만들 수 있단 사실을 깨달았던 거야.
　

난 매일 카메라를 들고 어떻게 하면 주변 사람들을, 마을의 분주한 모습을 잘 찍을 수 있을지 고민했어. 음... 셀카를 더 찍는 방법도 아니었어. 내 마음속엔 진짜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더 큰 꿈이 있었거든. 16살이 된 난 단호하게 꿈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어. 하지만 날 기다리고 있던 건 [알리우드] 의 차가운 거리, 냉담한 사람들, 낮은 급여, 치열한 경쟁이었어... 그래도 클레이튼 씨를 만나서 다행이었어. 클레이튼 씨는 언제나 열정적으로 나한테 여러 오디션을 소개해 줬거든. 다 별 볼 일 없는 작은 배역에, 급여도 거의 없는 수준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한텐 모든 엑스트라 역할도 생명이 넘쳤거든. 생명을 불태워 열심히 연기를 한다면, 언젠간 사람들도 내 연기를 봐 줄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컷!
이제 카메라 내려놔도 돼, 조종사. 요즘 내가 깊이 깨달은 게 하나 있어. 기회가 없잖아? 그럼 내가 스스로 기회를 만들면 되는 거야! 드디어 나도 유일한 여주인공이 된 거야. 바로 이 자전적 영화에서!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