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도미티우스 도미티아누스

덤프버전 :

파일:루키우스 도미티우스 도미티아누스.jpg
이름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도미티아누스
(Lucius Domitius Domitianus)
출생
미상
사망
297년 12월
직위
미상
반란 대상
디오클레티아누스

1. 개요
2. 행적




1. 개요[편집]


로마 제국 사두정치 시대의 반란자. 이집트 속주에서 반란을 일으켜 황위에 올랐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 진압당했다. 1세기의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 3세기의 비정통 황제 도미티아누스 2세가 있었기에 '도미티아누스 3세'로도 일컬어진다.


2. 행적[편집]


도미티아누스에 대한 문헌 기록은 존재하지 않으나, 20세기에 이집트에서 출토된 동전을 연구한 고고학자들은 그가 297년 7월경에 황제를 칭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97년 3월, 이집트 총독 아리스티우스 옵타투스는 새로운 세금 제도에 대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칙령을 발표했다. 이 칙령은 인두세와 토지세에 대한 획일적인 과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세금에 대한 면책 또는 감세 혜택을 누려온 특권층은 동일한 세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또한 역사가 아우렐리우스 빅토르는 이 시기에 유리, 파피루스, 린넨, 대마 등에 세금을 부과하고 국고를 충당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고 한다. 이 정책으로 상인들은 상당량의 세금을 물어야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이같은 정책에 반발한 주민들은 297년 7월 콥토스에서 도미티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했다. 콥토스는 사막에서 건너온 상인들이 제일 먼저 들리는 이집트의 상업도시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세제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본 이들이 많았다. 이후 반란은 이집트 전역으로 빠르게 퍼졌고, 297년 11월경 알렉산드리아 주조소에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즉위 기념 주화가 발행되었다. 보피스쿠스의 '프로부스의 생애'에 따르면, 사산 왕조의 왕중왕 나르세스 1세가 이집트의 반란에 호응하여 시리아를 침공했다고 한다. 이 기록에 따르면 이집트 반란 세력과 사산 왕조는 모종의 밀약을 맺었던 것으로 보이나, 이것이 사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파견한 진압군은 297년 12월 콥토스를 공략했다. 도미티아누스는 이때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진압군은 알렉산드리아 성채를 포위 공격했다. 반란군은 아우렐리우스 아킬레우스의 지휘 아래 항전했지만, 298년 봄에 알렉산드리아가 함락되면서 진압당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6 03:43:14에 나무위키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도미티아누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