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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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룡 기마상과 장판파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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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양의 한대 고찰인 옥천사 전경
1. 개요[편집]
当阳
영어 Dangyang
후베이성 이창시의 현급시. 이창 ~ 징먼시 사이, 진령산맥과 형주 평야가 만나는 지점에 장강의 지류인 쥐하 (沮河) 서안에 위치한다. 관할 인구는 약 43만으로, 현급시 치고는 적은 편이다.[1] 도시 자체에는 20만 가량이 거주한다. 농업 및 식품 & 직물 가공업, 전자 & 화학공업 등이 발달하였다. 징먼과 장제제시를 잇는 쟈오류 철도가 지나는 당양역이 있다. 도시 안팎으로 볼거리가 많은 편이다.
우선 시가지 중서부에 적벽대전 직전 조조군과 장비가 격돌한 장판파 관광지가 있는데, 한대의 당양은 현 징먼시 쪽이었으므로 정확한 위치는 아니지만 삼국지 팬들이 즐겨 찾는다. 동남쪽 5km 지점 량허진의 맥성 (마이청)은 서기 220년, 촉한의 관우가 손오에 맞서 최후의 저항을 펼친 곳으로 유명하다.[2] 남서쪽 15km 지점의 옥천사 (玉泉寺)는 불교 북종선 및 천태종의 주요 사찰 중 하나이고, 녹림산 (绿林山)은 신나라 말엽 녹림군이 봉기한 장소이다.
2. 역사[편집]
파일:当阳玉泉寺.jpg
옥천사 산문
진나라 때부터 남군 (南郡) 영현 (郢縣)에 속했고, 전한 들어 영현은 강릉현 (江陵縣)으로 개칭되었다. 기원전 148년, 강릉현의 남부가 당양현 (當陽縣)으로 분리되었다. 다만 그 치소는 현 징먼시에 있었다가, 유송 시기인 420년에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후한 말엽에 세워진 옥천사 (玉泉寺)는 무주 시기에 번성했다. 옥천사는 선종이 6조 대에 분열했을 때에[3] 북종을 이끈 신수대사의 수행처였고, 천태종의 창시자인 지자대사 역시 이곳에서 수행한 바 있다.
국공내전 시기인 1948년, 징당현 (荆当县)이 설치되었다가 이듬해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후 당양현으로 환원되었다. 1988년 당양현은 현급시인 당양시로 승격되었다. 2016년 8월, 화학 공장에서의 폭발 사고로 2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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