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콩-방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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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Cohn-Bendit

1. 개요
2. 논란
3.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프랑스신좌파 운동가, 정치인, 학자이다.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일어난 소요사태 당시 대표적 학생지도자로 활동했다. 그가 남학생의 여학생 기숙사 자유 출입권을 주장한 사건은 68혁명의 시발점이 된 것으로 유명하다.# 트레이드 마크인 붉은 머리로 인해 '빨갱이 대니'(Dany le Rouge)라는 별명으로 불렸다.[1]

프랑스와 독일 이중국적자로 프랑스 녹색당독일 녹색당에 모두 속해있다.

본래는 비마르크스계열 자유지상주의적 극좌파였으나 21세기에 와서는 사회민주주의 내지 온건한 생태주의 성향으로 바뀌었다. 철학적으로는 온건 진보 성향의 철학자인 클로드 르포르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2018년 에마뉘엘 마크롱이 (특히 좌파진영에서) 추락하는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환경장관직을 제안했으나 마크롱을 직접 만나서 거절했다고 한다.[2] 애초에 마크롱이 너무 신자유주의적인데다가 권위주의적 꼰대 이미지도 있어 신좌파를 포함한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선 이미지가 매우 좋지 않다. 그러나 콩방디트 자신은 2017년 대선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을 지지한 전적이 있고 현재도 지지를 철회하지는 않은듯. 일단 2022년 대선에서는 녹색당 후보로 출마한 야니크 자도와 마크롱을 동시에 지지했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독일어 발음을 살려 "콘 벤디트"라고도 읽는다.

2. 논란[편집]


1970년대 유치원에서 근무할 당시 4~6세의 여자아이들과 소아성애적인 관계를 가졌다는 논란이 있다.#1 #2 #3 5세 여아가 옷을 벗으면 환상적이라는 얘기까지 했다고 1975년 출간한 자서전 '그레이트 바자' 에서 직접 밝혔다. 이 발언에 대해서는 프랑스 텔레비전 방송의 녹음도 있다고 한다.

이후 이 이유로 그가 민주주의에 기여한 공로로 수상자로 선정된 테오도르 호이스(독일 초대 대통령)상 시상식에 유력인사들이 참석을 거부하는 일이 일어났다. 논란의 파장이 커지자 그같은 발언은 성생활과 관련해 내숭을 떠는 독일 중산층을 자극하기 위함이었으며, 자신은 결코 소아성애자였던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것은 중산층을 겨냥한 일종의 선언문이었다"며 아이들의 성적취향에 관한 논의는 당시 자신이 속한 좌익 혁명집단 안에서는 만연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는 유치원 내 문제 중 하나가 보수당이 아이들의 성적취향을 창피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라며 "우리는 아이들이 제약 없이 성적취향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당시 그같은 글을 쓴 것은 자신이 실제보다 좀 더 위험한 인물로 비치기를 바랐기 때문이지만 그러한 발언이 "무책임"했다고 인정했다.

이 때문인지 좌파 우파 막론하고 청년층에서 이미지가 매우 안좋으며 그가 출연한 뉴스마다 "아직도 2020년대에 소아성애자가 TV에 나오냐"며 비난하는 댓글이 거의 꾸준글급으로 달린다. 사실 당시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3] 68혁명성 혁명 등으로 성 가치관이 극단적으로 자유로워지다 못해 아동성애나 범죄에 가까운 사례도 종종 나왔고[4] 세대 갈등 요소로도 언급되는데 콩-방디트도 그 중 하나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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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는 보수우익의 비아냥이였는데 학생운동 진영에서도 그냥 빨갱이 대니라고 장난삼아 불렀다고 한다.[2] 마크롱, 68혁명 주역에 환경장관 제안했다가 거절당해 - 연합뉴스[3] 특히 라이시테 문화 때문에 이런 경향이 강했다.[4] 유년의 사랑 같은 영화를 보면 1970년대 영미권/유럽 성적 개방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