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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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魯宗之
(? ~ 416년)

동진의 장수로 자는 언인(彦仁). 부풍군(扶風郡) 미현(郿縣) 출신. 본인의 열전은 없으나 『송서』와 『남사』에서 손자인 노상의 열전을 통해 그의 행적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2. 생애[편집]


노종지는 효무제 태원(太元) 연간 말엽에 고향에서 양양(襄陽)으로 나와 남군태수(南郡太守)를 역임하였다.

의희(義熙) 원년(405년), 당시는 안제로부터 제위를 찬탈했던 환현이 패망한 뒤였지만 환진을 중심으로 환현의 잔당이 아직 활개를 치고 있었다. 노종지는 이때 거병하여 환현이 임명한 옹주자사(雍州刺史) 환울(桓蔚)을 공격한 뒤 강릉(江陵)으로 추격을 개시했다. 노종지는 다시 작계(柞溪)에서 환진의 장수 온해(溫楷)를 물리치고 기남(紀南)으로 진군했으나 환진의 장수 환겸, 풍해(馮該)에게 패배하였다. 노종지는 뒤에 보국장군(輔國將軍), 옹주자사로 임명되고 소성현후(霄城縣侯)에 봉해져 식읍 1,500호를 받았다.

410년, 유유가 남연 정벌에 나선 사이 노순이 건강 침공을 시작했다. 노종지는 환겸, 구림의 침공을 받자 유도규와 함께 이를 물리치고 평북장군(平北將軍)으로 임명되었다.

412년, 유유가 유의를 토벌할 때 노종지는 강릉에서 유유와 합류하였다. 유의의 형 유모(劉模)가 양양으로 달아나자 노종지는 유모를 붙잡아 참수했다. 이후 노종지는 진북장군(鎭北將軍)으로 임명되고 남양군공(南陽郡公)에 봉해졌다.

그러나 노종지는 자신이 유유의 부하가 아님에도 여러 차례 공적을 세웠기 때문에 언젠가 자신이 유유에게 제거될 것이라는 불안을 품었다. 그리고 415년, 유유가 사마휴지를 토벌하고자 출정하자, 노종지는 두려움이 극에 달해서 아들인 노궤와 함께 사마휴지를 돕기 위해 출정하였다. 노종지와 사마휴지는 유유에게 패배하여 후진요흥에게 달아났고 노종지는 요흥으로부터 관직을 받았다.

416년, 노종지는 요흥의 명을 받아 양양으로 출병했으나 도중에 병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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