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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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가사
3. 그 외



1. 소개[편집]




1984년 제 2회 MBC 창작동요제 당시 영상
당시 풀버전

1984년 제2회 MBC 창작동요제 최우수상곡인 동요. 작사는 이동진, 작곡은 안호철 최현규. 발표 당시엔 안호철(당시 경기 평택 성동국민학교 교사) 작곡으로 되어있었고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가 작곡한 노래인 줄 알고 있으나, 진짜 작곡가는 최현규(당시 서울음대 학생)이다.출처 : 이동진 작사가 블로그 그런데 당시에 알려졌다면 이 노래는 실격되었을 것이다. 현직 초등교사가 작곡한 노래만 자격이 있었으므로. 자세한 것은 MBC 창작동요제 참고. 조성은 가장조(A Major)이다.

노래는 권진숙이 불렀다. 근황은 아래에.

2. 가사[편집]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허수아비 팔 벌려 웃음짓고
초가 지붕 둥근 박 꿈꿀 때
고개숙인 논밭의 열매
노랗게 익어만 가는
가을 바람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붉게 물들어 타는 저녁놀

3. 그 외[편집]


'물들어 타는 저녁놀' 부분의 타는가는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2003년 9월 18일 쟁반노래방에서 홍록기, 조은숙, 표인봉이 이 동요에 도전했는데, 여기서 이효리가 이 부분을 꽤 헷갈려 했으나, 다행히 표인봉이 확실하게 알고 있었는데다 '전화 찬스'로 확인사살을 했다. 조은숙이 첫 찬스로 '꽝! 다음 기회에'를 뽑고 홍록기의 트롤링으로 초반 고전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9번 도전하고 성공.

1박 2일에서도 가을노래를 부르는 미션을 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거였다. 원래 가사는 물들어 타는 저녁놀인데, 멤버들은 하도 헷갈려한 나머지 처음에는 물들어 가는 저녁놀이라 불렀었다. 이승기는 노래부르는 애가 발음이 부정확하다고 디스(?)를 당했고, 은지원은 아예 '물드는 가을 저녁놀'이라고 불렀었다. 나중에야 이승기가 잘 맞혔지만. 그 와중에 이수근은 이걸로 논란이 있었다고 적절하게 드립을 쳐준다.

작사가 이동진은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서 노을을 보며 가사를 지었다고 한다.[1] 이 노을은 평택시 군문동[2]에서 팽성읍으로 넘어가는 안성천 '군문교' 위에서 바라 본 '대추리 들판의 노을'이다. 전년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새싹들이다처럼 원곡자의 출신지역의 특색을 담은 곡이다.[3] 평택의 자연을 담은 노래이고 대상을 받았다는 높은 인지도로 평택 지역방송국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창작동요제의 제목[4]이 되기도 했다.

노래를 부른 권진숙 씨(1972년생)는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했다. 2022년 이대학보에서 인터뷰를 했으며 제약 영업 컨설팅 회사의 대표로 있다고 한다. # 그리고1985년(조용필과 함께), 1986년, 1988년, 2001년 MBC 창작동요제에 출연하여 이 곡을 불렀다.

2004년 MBC가 우리 동요 80주년을 맞아 실시한 '가장 좋아하는 동요'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

2006년에는 헌법 제1조를 불렀던 것으로 유명한 한의사 가수인 오지총이 록 버전으로 리메이크했다. 나름 뮤직비디오도 있는데, 미군기지가 대추리로 이전 중이던 당시의 이슈에 따라 반미 분위기도 느껴진다.



SBS 순풍산부인과 92편에서 노래자랑대회 유치원 대표로 뽑힌 미달이가 대회에서 이 노래를 부른다.

가수 박정현도 이 노래를 특유의 알앤비창법(!)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2007년 라이브 정확히는 컴필레이션 앨범인 스타가 부른 동요 베스트 수록곡.

응답하라 1988 15화에서 성진주가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펄펄 눈이 옵니다에 이어 군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동요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에서 저녁 연기가 전역 연기 처럼 들리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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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추리 사태로 유명한 그 대추리이며 현재 대추리는 전체 지역이 캠프 험프리스가 들어섰다. 당시 행정구역은 경기도 평택군 팽성읍(1979년 승격)이었다. 현재의 평택시 전역은 송탄시(1981년 승격), 평택시(1986년 승격), 평택군이 1995년에 통합된 것이다.[2] 1984년 당시에는 경기도 평택군 평택읍 군문리. 2년 뒤 평택읍이 평택시로 승격되면서 평택시 군문동이 되었다.[3] 새싹들이다제주도의 음악교사가 제주도의 새싹을 보며 만든 곡이라고 한다.[4] 노을창작동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