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율(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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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김율(金聿)
이명
김율(金律)
본관
경주 김씨#
생몰
1882년 ~ 1908년 4월 25일
출생지
전라남도 나주군 문평면 북동리 갈마지들마을
사망지
전라남도 광주군 어등산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율은 1882년생이며 전라남도 나주군 문평면 북동리 갈마지들마을 출신이다. 그는 1906년 10월 5일 친형 김태원과 함께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기삼연이 주도하는 호남창의맹소(湖南倡義盟所)에 가담하여 주력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형과 함께 무장, 법성포, 고창, 창성 등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으며, 사창을 점령한 뒤 저장되어 있던 양곡을 압수하여 군량미로 충당했다. 또한 1908년 1월 3일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함평 순사주재소를 공격해 점령한 후 무기와 금품을 노획하기도 했다.

1908년 1월 22일, 김율은 기삼연과 함께 400명의 의병을 이끌고 함평 순사주재소를 다시 습격하여 일본인 하타노(波多野) 순사를 사살했다. 2월 2일 기삼연이 체포된 후 처형되자, 그는 형과 함께 기삼연 의병대의 주력부대를 이끌고 광주 일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전개했다. 특히 창평에서 요시다카 츠사부로우(吉田勝三郞)가 지휘하는 기병대와 맞붙어서 요시다카를 전사시키도 했다.

그러나 1908년 3월 30일 일본군에게 체포되었고, 4월 25일 형이 어등산 전투에서 전사한 뒤 일본군에 의해 전투 현장으로 끌려와 형의 시신을 확인한 후 그 자리에서 막걸리 한 잔을 마신 후 총살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율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