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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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왕족
고려 태조의 장인

김억렴 | 金億廉
본관
경주 김씨(慶州 金氏)
이름
억렴(億廉)
생몰연도
연대 미상
아버지
김관유
배우자
미상
자녀
아들 - 김유렴
딸 - 신성왕후[1]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임금이 (태조에게) 대답하였다.

나의 큰아비인 잡간 억렴(億廉)이 지대야군사(知大耶郡事)로 있는데, 그의 딸이 덕이 있고 용모가 아름다우니, 이 사람 외에는 집안일을 책임질 만한 자가 없습니다.”

答曰 我伯父億廉匝干 知大耶郡事 其女子德容雙美 非是 無以備內政

삼국사기 제12권 신라본기 제12, 경순왕 조

신라 후기의 김씨 왕족. 신라 46대 문성왕의 후손이자, 나중에 56대 왕이 되는 경순왕큰아버지다. 김관유의 아들이자 김유렴의 아버지이며, 동생으로는 신라 후기의 이름난 화랑이었던 김효종이 있다.


2. 생애[편집]


관등은 잡간(匝干)이었고, 지대야군사(知大耶郡事) 벼슬을 지냈다. 그가 살았던 후삼국시대의 신라는 서라벌과 주변만을 겨우 통치하는 신세였지만, 어쨌든 그는 왕위에 매우 가까운 고위 귀족이었으니 그럭저럭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901년과 916년 후백제대야성 공격을 막아낸 신라군의 총사령관이었다. 이후 920년에는 후백제에 의해 결국 대야성이 함락되지만, 이 당시에도 김억렴이 대야성주였는지는 기록의 부재로 인해 알 수 없다.[2]

935년 경순왕은 왕건에게 나라를 바치며 항복하자 왕건은 대단히 기뼈하며, 신라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기를 원했다. 왕건은 29명의 부인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듯 전국의 많은 유력 호족들과 정략결혼을 맺어왔고, 그 일환으로 신라 왕실과도 정략결혼을 원한 것이다. 이때 경순왕의 슬하에는 적당한 혼인상대가 없었는지 자신의 큰아버지인 김억렴의 딸이자 자신에게는 사촌이 되는 김씨를 직접 추천했고, 그녀가 이후 신성왕후 김씨가 된다. 그녀의 손자가 고려 제8대 현종이며, 이후 모든 고려 왕들이 현종의 후손이니 김억렴의 후손이기도 한 셈이다.

신성왕후의 또다른 아버지로 기록된 합주의 지도자인 경주태위 이정언(李正言)과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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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 태조의 제5비[2]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아찬 벼슬의 김률이 대야성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