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식(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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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테크노크라트.

2. 생애[편집]


1917년 12월 16일, 평양시 대동강구역 의암동에서 태어났다. 해방 전에는 제철소, 철도, 기계공장, 비료공장에서 노동을 하였으며 해방 이후 흥남비료공장 지배인으로 발탁되었다. 남한 기록에 따르면 1948년 소련 유학을 갔으며 귀국 후 1953년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에 매치되었다고 한다.

1958년 10월, 최재하의 뒤를 이어 건설건재공업상에 임명되었다. 이후 건설건재공업성이 도시건설경영성으로 개편되면서 도시건설경영상에 유임되었으나 1959년 8월 31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도시건설경영상이 폐지되면서 해임, 평양시 건설에 집중하기 위해 내각 부수상 정일룡이 평양시 인민위원장을 겸하게 되면서 그 휘하의 부위원장으로 이임하였다.

1961년 9월, 4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내각에 건설성이 설치되면서 건설상을 맡았으며 1962년 10월,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도시 및 산업건설상에 임명되었다. 평양시 건설사업에서 똥꼬쇼를 했다고 하는데 1963년, 건설성이 건재공업성으로 개편되면서 건재공업상을 맡았다. 1965년에 김응상에게 건재공업상 자리를 물려주었다. 1967년 내각 국가건설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이동했으며 다시 평양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일처리가 시원찮았는지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4,5,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는 재선되었으며 평양시 건설총국장으로 계속 사업하였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재직 중인 1981년 7월 11일에 사망했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평양시건설총국 총국장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3. 참고문헌[편집]


  • 조선대백과사전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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